신한금융그룹 회장 진 옥 동/사진출처=신한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회장 진 옥 동/사진출처=신한금융그룹

이로운넷 = 이화종 기자

만성화 된 청년실업에 최근 카이스트 졸업생의 입틀막 사건까지 유례없이 암울한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MZ세대에게 지난해 3월 23일 신한 금융 지주 회장으로 취임한 진옥동 회장을 소개하려 한다.

1961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진옥동 회장은 고교 시절부터 서울에 상경해 유학생활을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진행되기 전이었고 서민들 대다수가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공부는 잘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계 고교로 진학해 빠르게 취업을 하려는 일은 일상사였다.

◆ 만학도 진옥동···직장생활 6년차에 시작된 주경야독

진 회장은 고교를 졸업한 1980년에 기업은행의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기업은행에서 6년을 몸담은 그는 신한은행으로 옮긴 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학업을 병행했다.

대부분 매체들이 진 회장을 ‘온화하고 소탈한 성품’과 수평적 소통을 한다고 소개하는데 학맥도 지연도 없는 고졸출신 은행원이 튀거나 자기주장이 강하기는 어려웠을 테니 온화한 성품이 몸에 베는 것도 후배 직원들에게도 겸허한 모습을 보였을 것은 자연스럽다.

진 회장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만학을 통해 자기 계발을 했다는 점이다. 진회장은 33살이 된 1993년에야 방송 통신대에서 학사를 취득했고 36살이 된 1996년에 석사에 도전해 중앙대경영학 인사(HR)관련 석사를 받았다. 

고졸 은행원으로서 학력에 대한 열등감에 공부를 했다기 보단 경영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러한 만학의 결실은 신한은행장으로 취임한 뒤 은행의 핵심성과지표(KPI)개편과 디지털전환(DT), 글로벌 전략의 안정적 확장을 수행하는데 밑거름이 돼줬다.

목적이 확실하면 힘든 고학에 대한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회장이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피해자 지원 및 예방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05.02./자료사진=뉴시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회장이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피해자 지원 및 예방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05.02./자료사진=뉴시스

◆ 인맥에서 인연으로 재일교포들의 신망을 받은 진옥동

진 회장은 석사취득 이듬해인 1997년 일본 오사카 지점에 대리로 발령받아 주재원 생활을 시작해 2002년 귀국할 때까지 교민사회와 재일교포 주주들과 관계를 가졌다.

귀국 후 일본의 기업재생 전문 법인 SBJ캐피탈을 세우면서 진 회장과 재일교포들과의 관계는 단순히 신한은행의 은행원과 주주라는 인맥관계를 넘어선 깊은 인연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후 2007년에는 신한은행의 일본법인 SBJ은행 설립을 추진해서 SBJ은행의 법인장을 맡았다. 

이 은행은 재일교포들이 100% 출자해 만든 은행이다. 해방이후 교포들은 귀향을 희망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자영업에 종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일본은행들은 이들에게 너무나 문턱이 높았다.

그래서 재일교포들끼리 신용조합을 만들었으며 은행인가를 받기 위해 故이희건 신한은행 회장을 중심으로 1977년 제일투자금융설립, 1982년 한미은행·신한은행 설립이란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신한은행은 특히 대기업이나 외국계기업의 출자 없이 100% 교포들의 출자금으로 이뤄진 순수 민간 자본 은행이라는 의미가 있다.

교포들의 오랜 염원이던 일본 내 은행설립의 시발점인 SBJ은행을 진 회장에게 맡겼다는 점에서 재일교포 주주들의 진회장에 대한 신임가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SBJ은행은 시작점이 다른 은행의 해외법인과 다르다. 처음에는 지점으로 시작했지만 일본금융시장에 도전해보자는 취지로 현지법인 설립을 준비했다.

2년뒤인 2009년 7월 일본 금융청으로부터 은행면허를 취득해 같은해 9월 14일부터 일본 현지법인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SBJ은행은 '銀行は金利だ’와 ‘銀行が面白くなる'라는 광고문구를 내세워 정기 예금금리가 0.3%~0.4%일 때 1%대 금리를 제공하며 공격적인 예금 영업을 전개했다. 0.5%의 금리 차이에 불과하지만 현지의 재일교포는 물론 현지인들도 새 계좌를 개설해가며 찾아들었다.

그리고 당시 일본에서는 까다로운 투자목적 주택 구매에 대한 대출 상품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은 점도 SBJ가 빠르게 일본 금융시장에서 자리잡은 이유다. 

업계에서는 보수적인 일본 은행들과 달리 빠른 의사결정과 고객위주의 친절한 응대로 일본 주택론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고 분석한다.

진옥동 신임 신한은행장이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9.03.26./자료사진=뉴시스
진옥동 신임 신한은행장이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9.03.26./자료사진=뉴시스

◆ 고졸 셀러리맨에서 대한민국 4대 금융지주 회장까지

진옥동 회장이 신한금융지주의 차기 회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에는 놀라워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드디어 인정 받을 사람이 인정을 받았다는 평가도 많았다.

조용병 전회장이 신한금융을 탄탄하게 경영해왔고 사법리스크도 덜어낸 만큼 연임하지 앟겠냐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결정은 진 회장 내정이었다.

회추위 위원장을 맡은 성재호 사외이사는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함께 그룹 내부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결집시키는 리더십을 갖춘 후보가 신한금융그룹의 차기 회장 후보가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면서 "진옥동 내정자는 SBJ법인장, 신한 지주 부사장과 신한 은행장 등 금융업계에 대한 이해와 오랜 업무 경험을 통해 감각을 쌓아왔다"고 설명했다.

진옥동 회장은 신한은행장으로 있으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둬 KB국민은행을 제치고 리딩뱅크의 자리를 차지한데다 서울시금고 운영권까지 따내는 등 활약이 컸다.

실적뿐 아니라 주주들의 신뢰, 내부 구성원과의 팀웍을 고려할 때 진옥동만한 사람도 없었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고졸 출신 은행원의 주경야독 고군분투도 진회장의 남다른 성장 과정이지만 한번 맺은 인연을 신뢰와 실적으로 이어나간 긴 노력의 결과가 오늘의 진 회장을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청년들이 진 회장처럼 주어진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고객과 동료들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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