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사진=교보문고
표지사진=교보문고

저장촌은 1980년대 후반 중국 동남부 저장성의 농촌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베이징의 집거지다.

초창기에는 베이징의 여러 정부 부처가 강제 퇴거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10년이 채 되지 않아 6가구에 불과했던 저장촌은 10만명이 거주하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가족공방과 소규모 무역에 의존하던 저장촌은 중국 북부와 동북부 전역에 중저가 의류를 공급하는 중심지가 됐다.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 저장촌 사람들은 주로 번화가 노점에서 옷을 판매했다. 당시 불법이었다. 그들은 옷을 팔기 쉬운 곳을 알아가야 했고, 공중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도시 경찰을 피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그들은 차츰 동네에 있는 국영상점 직원들과 친해지고 심지어 친구가 됐다. 이를 통해 나중에 이 상점들과 협력하고 상점 매대를 임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경계를 넘는 공동체'(글항아리)는 베이징 저장촌 생활사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샹뱌오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은 베이징 한복판에 형성된 원저우 상인 집거지 저장촌에서 6년간 생활하고 20년을 추적 관찰했다.

저자는 현장 연구 및 생활사 연구 방법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저장촌의 형성, 확장, 굴절 재도약의 과정을 설명한다. 저자는 의류 산업으로 연결된 사람 간 관계가 이 산업 분업과 어떻게 재설정을 거듭하면서 지역 공동체로 발전했는지에 대해 답한다.

이 책에 중국 정부 정책, 개혁 개방의 이론, 공산당 이념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1980~1990년대 개인의 삶의 경험을 포함해 사회생활 수준의 변화를 설명한다. 저자가 이 책에 묘사한 사소한 것들, 즉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이해하는 방식, 대인 관계를 다룬다.

[출판사 서평]  2022년 대담집 『주변의 상실』로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된 샹뱌오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의 주저 『경계를 넘는 공동체: 베이징 저장촌 생활사跨越邊界的社區:北京“浙江村”的生活史』가 번역·출간되었다. 이 책은 원저우 출신 농민들의 동향촌이 1990년대 베이징에서 가장 큰 저가 의류 생산·판매 기지로 변모하는 과정에 관한 문화기술지ethnography로, 이후 출간돼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국가와 사회,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통치와 저항의 역동적 관계를 살피는 고전이 됐다. 애초에 베이징대학 석사논문이었던 이 논고로 그는 옥스퍼드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할 수 있었으며 나중엔 이 대학 인류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 책은 1998년 단행본을 위한 원고로 완성되어 2000년 중국어판이 나왔고, 2005년 영문판이 나왔으며, 2017년 중국어 개정판이 출간되었는데 번역에는 2017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사용했다.

저장촌의 형성, 확장, 굴절, 재도약

베이징 저장촌은 저장성 원저우 출신 농민들이 구성한 국내 이주민 집거지다. 이 책은 현장 연구 및 생활사 연구 방법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저장촌의 형성, 확장, 굴절 그리고 재도약의 과정을 설명한다. 의류 산업이 책을 관통하는 실마리다. 저자는 의류 산업으로 연결된 사람 간의 관계가 이 산업의 분업과 함께 어떻게 재설정을 거듭하면서 지역 공동체로 발전했는지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일종의 경제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탐구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국내 독자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중국 정부의 정책, 개혁 개방의 이론, 공산당의 이념 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한다고 해도 저장촌 사람들의 생활에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사회의 힘들이 구조 변동의 추동력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중국 사회의 사소한 내용을 토대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저자는 중국 사회의 가장 근저의 문화에 근거하여 남부 중국의 전통적이고 뿌리 깊은 농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베이징이라는 체제 전환의 대도시에서 또 다른 뿌리를 내리는 이 과정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의 말투, 대화의 구조, 삶의 관습 등은 심지어 중국 내에서도 보편화된 익숙한 내용이 아니다.

평범한 이들의 대인관계, 삶의 철학으로 개혁개방 시기를 이해하다

『경계를 넘는 공동체』는 많은 사소한 내용을 통해 1980~1990년대 개인의 삶의 경험을 포함하여 사회생활 수준의 변화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1980~1990년대의 중국, 특히 중국에 대한 국내외의 서술은 주로 국가 정책과 주요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소한 일들은 종종 간과되었다.

이 책에 묘사된 사소한 것들, 즉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이해하는 방식, 대인 관계를 다루는 방식 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말한 대로, 사람들은 종종 밤의 장막에서 꺼져가는 불빛밖에 보지 못하지만 진정한 역사는 바로 그 장막 안에서 벌어진다고 했다. 사소한 것들의 기본 논리는 사회적 삶을 영속케 하는 핏줄이자 지속적인 사회 변혁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이 층위를 봐야만 우리는 ‘중국’과 그 14억 인구를 단순히 최고 지도자의 틀에 갇힌 존재로 상상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삶이 바다에 띄워져 있는 작은 배에 불과해서 불어오는 바람과 밀려오는 파도에 즉시적이고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의 자율성과 삶의 본질적인 동기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만에 6가구에서 10만 명 거주 공동체로 성장

저장촌은 1980년대 후반 중국 동남부 저장성의 농촌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베이징의 한 집거지다. 초창기에는 베이징의 여러 정부 부처에서 강제 퇴거 조치를 취했지만 10년이 채 되지 않아 6가구에 불과했던 저장촌이 10만 명이 거주하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가족공방과 소규모 무역에 의존하던 저장촌은 중국 북부와 동북부 전역에 중저가 의류를 공급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저장촌은 어떻게 이런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 그들은 주로 번화가의 노점에서 옷을 판매했다. 당시에는 불법이었다. 주변이 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그들은 옷을 팔기 쉬운 곳을 알아가야 했고, 공중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해야 했으며(당시에는 공중화장실을 찾기 매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도시 경찰을 피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그들은 차츰 동네에 있는 국영상점 직원들과 친해지고 심지어 친구가 되었다. 이를 통해 나중에 이 상점들과 협력하고 나아가 상점의 매대를 임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도시를 변화시킨 평범한 사람들의 힘

동시에 저장촌의 유동인구도 저장촌 주변의 복잡성을 의도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베이징 남쪽에 위치한 저장촌의 토지와 주택은 중앙정부 부처, 베이징의 시, 구, 가도, 향진, 주민위원

회, 군부 등 여러 기관에 속해 있었다. 이러한 기관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있었고, 서로 다른 지침을 따랐다. 예를 들어, 저장촌이 위치한 구정부가 이주민을 추방하고자 할 때 구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부처(예를 들어 베이징시의 회사들)는 이주민에게 건물을 계속 임대해줬다. 수도의 특히 복잡한 행정 관계는 유동인구가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유동인구는 주변의 다양한 빈틈을 발견하고 촌민위원회와 성공적으로 합작하여 주택 단지와 간이 공장을 건설했으며, 파산한 국유기업과 의류 및 직물시장을 건설하는 데 합의했다. 행위자들이 자신을 주변의 깊숙한 곳까지 들이밀수록 새로운 활동 공간이 더 크게 열렸다. 『경계를 넘는 공동체』에서 묘사한 것처럼 저장촌이 베이징성 바로 남쪽이라는 이 주변에 자리하여 전국적인 의류 생산 및 무역 연결망을 구축한 것이다. 『경계를 넘는 공동체』는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주변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켰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보잘것없는 작은 인물도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보기 위해, 그리고 역사를 만들기 위해 의지하는 것이 바로 주변이다.

‘계’를 모르고 중국 사회를 논하지 말라

이런 문제의식 아래 저자는 지역 공동체 연구의 이론들을 차용했다. 저자가 비중 있게 다룬 두 연구는 남부 중국의 농촌 공동체를 다룬 페이샤오퉁의 연구와 내가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이탈리아 이주민 공동체에 대한 화이트의 연구다. 저자는 자신이 관찰한 저장촌이 기존 연구에서 보여준 것과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 차이가 공동체를 구성한 사람들의 연결망적 특징에서 비롯되었다면서 ‘계’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저자가 사람간의 복잡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 정부 기관의 인턴, 사회 사업자, 기업 고문이라는 네 가지 역할을 수행한 덕분이었다. 다양한 역할은 일반적인 사회 조사자보다 더 깊고 넓게 사람들의 관계를 관찰할 수 있게 했고 직접 찾아다니지 않아도 누군가 먼저 이야기해줌으로써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해줬다.

두 번째 부분은 제3장으로서, 저자는 저장촌을 관찰하기 위한 첫 관문 또는 연구의 시작으로서 ‘저우가周家’의 하루를 설명한다. 저우가 구성원의 일상생활, 가족 구성원 관계의 변화가 주요 내용이다. 저우가는 두 자매의 가족과 그들이 공동으로 고용한 노동자를 포함한 ‘가족’이다. 두 가족은 처음에는 함께 살았지만 이후 분가했다. 분가한 뒤 두 가족은 각자 자신의 새로운 연결망을 형성하여 사업을 이어나갔다. 저우가에는 동네의 다양한 사람이 드나들면서 정보를 교환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련의 절차들이 또한 저우가의 일과에 녹아 있다. 저우가는 저장촌 경제 활동의 압축판이기도 했다.

세 번째 부분은 제4장부터 제8장까지다. 책의 부제에 언급된 생활사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저자는 시기별 개인의 연보를 중심으로 이들의 종적이고 횡적인 삶의 관계들을 그림으로써 저

장촌의 발생과 변화의 연결성 및 그 논리를 드러내고자 했다. 저자는 1984년을 시점으로, 누가 처음 베이징 저장촌에 왔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농민들의 이동은 문화대혁명 후반과 직후, 그리고 개혁 개방 초기에 모두 있었다. 사람마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저장촌 초기의 흔적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누가 먼저 왔는가보다 어떤 사람들(가족 또는 집단)이 먼저 저장촌에서 의류 산업을 시작했는지에 더 주목했다.

다툼을 중재하는 ‘거물’이라는 존재

1986~1988년으로 이어지는 설명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베이징에서 자리를 잡았는지에 대해 답했다. 구체적으로 저장촌에서 만든 옷이 어떻게 베이징의 주류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는지, 옷을 만드는 사람과 옷을 파는 사람 간에는 어떤 사업적 관계가 형성되었는지, 이곳에서 발을 붙이려면 어떤 사람과 많이 어울려야 하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다. 이 시기에 저장촌에서 만든 제품들이 베이징의 상가에 진출했다면, 1988~1992년 저장촌의 확장 과정에 대한 설명은 저장촌의 상품이 중국의 다른 지역 그리고 해외까지 수출됨으로써 생산과 판매의 연결망이 더욱 길고 복잡하게 변화한 양상을 다룬다. 이 시기 저장촌에는 의류 생산과 관련된 부대 산업이 확장되고 인구도 더욱 많이 유입되면서 급격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은 저장촌 내부의 상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람 간의 분쟁이 증가하고 가족 내의 갈등도 증가했다. 저장촌과 출신지 사이의 관계도 재편되었다. 1992~1995년에 대한 설명에서 저자는 저장촌이 극도로 혼잡한 공동체가 되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저장촌 내부, 저장촌과 베이징의 시장, 저장촌과 전국 시장, 저장촌과 외국 시장의 관계가 고도로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저장촌 내부의 주택 단지 건설이라는 부동산업까지 추가되면서 저장촌 사람들의 관계는 더욱 복잡한 수준으로 교착되었다.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치안 문제도 심각해졌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과 근절하려는 사람 사이의 경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5년, 저장촌은 중앙 정부 및 베이징시 당국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 하지만 이 공동체는 잠깐 위축되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동시에 새로운 모습을 창출했다. 그 비결은 역시 저장촌 사람들이 형성한 연결망의 특징에 있었다.

네 번째 부분은 제9장과 제10장이다. 저자는 계와 계의 중첩, 또는 관계의 관계로서 관계총 개념을 제안한다. 중국 사회의 복잡한 관계망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부각되는 부분이다. 관계총은 개인과 집단의 발전을 촉진하는 매개로 작용하는 동시에 관계를 통한 개인의 행위를 제약하는 제도로 작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관계총이 일종의 신사회공간으로서 체제 전환기의 사회 문제의 완충지대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개혁의 심화는 신사회공간의 출현을 동반할 것이고 이러한 신사회공간은 개혁의 성패를 평가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과 저장촌 사람 간, 자신과 독자 간 이중 대화라고 말한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 독자의 앞에 놓이는 순간 한국 독자와의 대화까지 중첩된 삼중 대화가 된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