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비=신화통신) "철도를 만드는 나라는 드물지 않지만 철도가 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드문 일이다." 당시 영국 동아프리카 판무관이었던 찰스 엘리엇 경은 1903년에 이처럼 대담한 말을 남겼다.

인사이클로피디아 브리태니커 웹사이트에 따르면 '영국 동아프리카 보호지구(현 케냐)에서 백인 우월주의 정책을 시작한 인물'로 꼽히는 엘리엇의 이 발언은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1896~1901년 동아프리카에서 건설한 미터 게이지 철도를 지칭한다.

서구 문명의 영향력 확장을 상징하는 이 철도는 모험과 식민지 정복을 위해 백인 정착민을 아프리카 대륙으로 끌어들였으며 케냐의 각성 과정과 독립 투쟁을 목도했다.

데니스 무네네 케냐아프리카정책연구소 중국-아프리카센터 전무이사는 최근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각에서는 그것(철도)을 케냐 탄생 또는 한 국가의 탄생이라 부르는 것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높이 평가했지만 케냐 식민지화에 한몫했다는 의견이 더 많다"고 밝혔다. 이어 "독립 60주년을 축하하는 지금, 지난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늘 과거를 돌아보게 될 것"이라며 "상처를 딛고 일어서 케냐가 더 발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난해 9월 20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드론으로 포착한 몸바사-나이로비 표준궤철도(SGR) 나이로비역. (사진/신화통신)

지난해 9월 20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드론으로 포착한 몸바사-나이로비 표준궤철도(SGR) 나이로비역. (사진/신화통신)
지난해 9월 20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드론으로 포착한 몸바사-나이로비 표준궤철도(SGR) 나이로비역. (사진/신화통신)

◇유럽의 아프리카 분할

나이로비 철도박물관 입구에는 초기 목적지 이름을 따서 우간다 철도로 알려진 100년 된 철도가 동아프리카 지도 위에 전시돼 있다.

1896~1901년 건설된 이 철도는 인도양 연안의 항구도시 몸바사에서 시작해 북서쪽으로 빅토리아 호수 연안의 플로렌스항, 지금의 키수무까지 연결된다.

이 철도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84~1885년 개최된 베를린 회의를 반드시 다뤄야 한다. 영국과 기타 서양 강대국들은 이 회의에서 아프리카 식민지 분할을 논의했으며 이때 나온 법 중 하나가 '실효적 지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 중요한 회의에 아프리카 대표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 종료를 일주일 앞두고 옵서버인 라고스(나이지리아의 옛 수도) 관계자는 "세계는 이렇게 대규모의 도적 행위를 목격한 적이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프리카 인사이클로피디아에선 "유럽 강대국들이 회의 종료 후 1900년까지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키워가 아프리카 영토의 90% 이상 차지했다"고 기록돼 있다.

'영국 동아프리카' 통제를 강화하고자 영국 정부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되는 나일강 유역 전체를 통제하기 위해 철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예상 비용이 500만 파운드에 달했던 이 프로젝트는 과도하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져 영국 의회와 언론으로부터 많은 반감을 일으켰다. 심지어 영국의 정치인 헨리 라부셰르는 이 철도를 '루나틱 라인(미친 노선)'이라고 조롱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식민지배자의 시각에서는 모두 가치 있는 일이었다. 철도 건설로 아프리카 분할에 한 걸음 더 나아갈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식 식민지 지배 체계를 구축하는 일의 일환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찰스 밀러는 1971년 철도의 유명한 별명을 따 '루나틱 익스프레스: 제국주의의 오락(The Lunatic Express: An Entertainment in Imperialism)'이라고 제목을 지은 자신의 책에서 "우간다를 통치하는 강국이 나일을 지배하고 나일을 지배하는 자가 이집트를 다스리며 이집트를 다스리는 자가 수에즈운하를 소유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7일 케냐 나이로비 철도박물관을 관람하는 사람들. (사진/신화통신)
지난해 11월 27일 케냐 나이로비 철도박물관을 관람하는 사람들. (사진/신화통신)

◇피로 얼룩진 '철뱀'

현지 부족민들은 루나틱 익스프레스를 '철뱀'이라고 불렀다. 고대 부족 예언에 따르면 철뱀은 그들의 땅을 가로지르며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불길한 징조라고 한다.

박물관의 메인 전시관에는 '철뱀'의 탄생을 재현한 사진들이 나무 액자에 담겨 일렬로 전시돼 있다. 헬멧과 승마 부츠를 착용하고 군복을 입은 영국의 엔지니어와 장교들이 기관차 지붕 위에 서있고 헐벗은 맨발의 노동자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는지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철도 건설은 영국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공사였다.

기계의 도움 없이 간단한 도구만 가지고 931㎞ 길이의 철도가 건설됐다. 건설 자재와 깨끗한 물 같은 공급품은 다른 곳에서 운반됐다. 사바나를 배회하며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 말라리아와 같은 열대 질병, 그리고 '철뱀'의 침략에 저항하는 현지 주민들의 공격은 모두 철도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인도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철도 완공까지 총 2천49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철로 1마일(mile)당 4명이 죽은 셈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내디딘 정착민들은 말을 타고 완만한 푸른 초원이나 울창한 숲속을 누비고 사냥을 즐기면서 케냐의 넓고 비옥한 땅을 '백인의 낙원'으로 만들기를 염원했다.

마사이족과 같은 현지 목축민들은 식민지 확장의 직격탄을 받았으며 그들의 저항은 잔인하게 진압됐다. 영국 작가 로테 휴즈는 '마사이족의 이동: 식민지 시대의 불행(Moving the Maasai: A Colonial Misadventure)'이라는 저서에서 많은 마사이족 주민이 가장 좋은 땅을 빼앗기고 두 곳의 보호구역으로 강제로 이주됐다고 기술했다. 이 지역의 다른 주요 부족인 키쿠유족 역시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됐다.

백인들은 커피나 차 등 돈 되는 작물(환금작물)을 키워 유럽에 팔기 위해 플랜테이션을 설립했다.

이 같은 식민지 경제는 케냐에 오래도록 영향을 주었고 그 고통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22년 일부 케냐인들이 영국 정부를 대상으로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식민지 시대 토지 강탈, 고문, 학대에 관한 것으로, 케리초 카운티 현지 부족들이 20세기 초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서 강제로 추방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지역은 다국적 기업들의 주요 차 생산지가 됐다. 케냐인을 대표하는 조엘 키무타이 보섹 변호사는 "영국 정부가 몸을 숙이고 잠수했으며 슬프게도 가능한 모든 구제 수단을 피했다"고 말했다.     

◇반식민지 운동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프리카 식민지에 정착하는 유럽인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원주민의 땅은 거의 남지 않게 됐다. 카렌 블릭센의 유명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원주민들에게 땅을 빼앗는 건 단순히 땅만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과거와 뿌리, 정체성까지 빼앗는 것이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땅을 빼앗긴 지역사회에서 저항의 폭풍이 몰아쳤다. 이들의 불만은 다양한 케냐 민족주의 운동으로 번져 결국 마우마우 운동으로 이어졌다.

주로 키쿠유족으로 구성된 반식민지 무장단체 마우마우는 '땅과 자유'라는 슬로건 아래 결성돼 지역사회에서 빠르게 지지를 얻었다.

민족주의자들은 철도를 이용해 케냐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이동하며 케냐인들의 독립 투쟁을 독려하는 정치 집회에 참여했다. 철도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총을 운반하는 데 이용됐다고도 전해진다.

대규모 저항 운동은 식민지 당국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됐다.

1956년 반군 지도자 데단 키마티가 체포되면서 마우마우 운동은 실패했지만 저항 운동은 1960년대 초까지 이어졌고 수많은 케냐인이 살해 당했다.

1963년 12월 12일, 케냐는 식민 지배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1950~1960년대에 아프리카 전역을 휩쓴 탈식민지화의 물결은 약 30개 아프리카 국가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케냐 SGR 나이로비역을 찾은 승객들이 지난해 9월 20일 몸바사로 향하는 여객 열차 안에 앉아 있다. (사진/신화통신)
케냐 SGR 나이로비역을 찾은 승객들이 지난해 9월 20일 몸바사로 향하는 여객 열차 안에 앉아 있다. (사진/신화통신)

◇루나틱 익스프레스에서 마다라카 익스프레스까지

케냐는 60년 전 식민 지배의 굴레를 벗어났지만 식민지 경제의 유산은 수십 년간 국가의 발전을 계속 가로막았다.

이제는 관광객들이 오래된 철도의 차창 밖으로 케냐의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야생동물을 감상하며 차 농장을 구경할 수 있게 됐지만, 그중 일부는 여전히 서구의 다국적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케냐 SGR 나이로비역에서 아이들이 지난해 10월 8일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케냐 SGR 나이로비역에서 아이들이 지난해 10월 8일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한편 중국이 건설한 새로운 몸바사-나이로비 표준궤철도(SGR)가 기존 철도와 거의 평행하게 운행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마다라카 익스프레스라고도 불리는 SGR은 2017년 5월 31일에 개통됐다. 1963년 6월 1일 케냐의 자치를 기념하는 '마다라카의 날' 하루 전이다.

지난 6년 동안 SGR은 지역 교통운송을 업그레이드했으며 철도 노선 인근 도시의 경제 발전을 효과적으로 견인했다. 케냐 철도당국은 이 철도가 케냐의 국내총생산(GDP)에 2% 이상 기여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철도 박물관에는 SGR의 열차 미니어처가 전시돼 있고 그 옆면에는 '국가 연결, 민족 번영'이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무네네 전무이사는 "옛 케냐-우간다 철도는 식민지 지배자들이 자국으로 운송하기 위해 내륙에서 인도양으로 원자재를 운반하던 수탈용 철도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중국과 케냐의 파트너십인 SGR은 개발 지향적입니다. 이는 케냐와 다른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통합에 도움이 됩니다. 케냐의 경제 확장 측면에서도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또 상품과 승객을 위한 빠르고 효율적인 운송 수단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무네네의 말이다.

새 철도는 2천300일 넘게 순조롭게 운행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승객과 수많은 화물을 운송하며 케냐의 사회·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에게 전문 교육을 받은 현지 운전사·기술자·승무원들이 철도의 원활한 운행을 보장하고 있다.

마다라카 익스프레스는 중국과 케냐의 '일대일로' 협력을 잘 보여준다. 지난 수년간 나이로비 고속도로와 50㎿(메가와트) 규모의 가리사 태양광발전소 등 협력 프로젝트는 아프리카 대륙의 인프라 연결성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아프리카 내 무역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됐다.

루나틱 익스프레스에서 마다라카 익스프레스에 이르기까지, 낡은 철도로 대표되는 식민지 시대의 과거는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철도가 가져올 밝은 미래가 떠오르고 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