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자 김우철(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미국 예일대학교 경제학 박사) /세상의 변화를 읽는 100권의 책 /국회도서관

세금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결코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과연 사실일까? 그 대답이 궁금하다면, 전직 국세공무원 경력의 대중교양 저술가 ‘오무라 오지오’의 ‘탈세의 세계사’를 읽어보길 권한다.

세금이 시작된 이래 한편에서는 세금을 걷기 위해,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역사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와 중세는 물론, 근현대사에 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번득이는 통찰은 세금을 둘러싼 창(과세)과 방패(탈세)의 전쟁을 누구보다 쉽고 재미있게 들려줄 것으로 확신한다. 

세금징수를 위한 정보와 기반이 충분치 못한 고대국가에서 징세업무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산가들 간의 탈세밀고를 유인하기 위해 ‘교환소송 제도(안디도시스)’를 고안한 것은 초기단계의 국가가 겪었던 과세정보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상징적 사례이다. 이와 달리, 고대 이집트에서 전문적인 징세행정 관료체제를 성공적으로 구축하여 장기간의 재정적 안정과 풍요를 이룬 사례는 지금의 시각에서도 놀라움을 준다.

과세 인프라의 결여로 개인으로부터 직접 세금을 거두는 것이 어려울 때는 간접적인 재정조달 방법을 선호한 경우도 많다. 화폐주조나 소금의 전매를 이용한 고대 중국이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도 위조화폐나 밀염 거래의 형태로 불법행위는 어김없이 나타났으며, 이를 근절하는 것은 탈세 방지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였다.

세금을 둘러싼 숨바꼭질은 이처럼 인류역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중요한 기여는 탈세의 역사로부터 국가의 흥망과 성쇠를 좌우하는 요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수많은 강대국들이 소멸해가는 과정에는 항상 과세체계의 문
란과 탈세의 만연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가 일관되게 보이고자 노력했던 명제이다.

현재의 누진세제를 부분적으로 응용할 만큼 한때는 합리적으로 세제를 운영했던 로마제국이 나중에 징세청부인 제도의 남용으로 속주에 가혹한 세금을 매긴 결과 결국 붕괴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면세특권을 누리는 귀족의 발호와 궁핍화된 서민의 급증이 국가 소멸의 강력한 전조라는 점 역시 우리 민족이 고려말이나 조선후기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미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이 점에서 바람직한 세금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의 조세정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세금은 어디까지나 여분의 것에서 취하도록 하라’는 중세 이슬람 국가의 징세업무 지침은 역사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혜안과 명쾌함을 오롯이 담고 있다. 납세자의 경제생활을 심각히 훼손하는 세부담은 굳이 현대 경제학의 조세이론에 의하지 않더라도 합리화될 수 없다는 점을 역사는 일찍이 인식하였던 것이다.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이상적인 조세정책 요건을 이보다 더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납세자의 수용성이라는 관점에서도 이 경구는 유용한 가이드라인이 된다.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에는 거의 항상 탈세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근대적 조세제도 발전과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교회와 국왕의 과세권을 둘러싼 알력이 종교개혁의 경제적 배경이 되었다는 점은 세속적인 세금이 신앙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식민지와 종주국 간 세금 갈등이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임에도 근대사 전개과정에서 세금이 얼마나 핵심적인 문제였는가를 잘 보여준다.

근대 시민국가를 거치면서 국민의 동의에 의한 과세가 현대 민주국가 체제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역사발전이라는 관점에서 필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과거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던 의무로서의 세금이 오늘날에는 사회공동의 이익 실현을 위해 국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권리로 바뀌는 과정에서 인
류는 큰 희생을 치루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제도가 성숙하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 국제사회에서도 탈세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 식민지령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한 조세피난처들은 낮은 세부담이나 비자금 세탁을 필요로 하는 다국적 기업 또는 특권층의 탐욕이 은밀히 활동하는 공간이다.

국제적 협력을 위한 강력한 요구와 지속적 노력에도 조세피난처를 연결고리로 글로벌 자본의 조세회피가 고도화되는 것은 현대판 탈세사의 적나라한 현장을 보여준다. 유럽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디지털세 부과에 대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으로 맞서는 지금의 대결국면은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ITC 기업의 탈세행위가 국제 세금전쟁으로 비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탈세의 역사가 증언하듯, 21세기 국제사회가 공동의 안녕과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모순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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