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노동자들의 일하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 한다. 그것이 노동자에게도 좋고(수입이 늘어), 고용주에게도 좋다(이윤을 더 남길 수 있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중대 재해를 야기한 사업주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을 유예하자고 한다. 50인 미만의 중소규모 사업장은 아직 이 제도를 시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든다.

2024년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은 지금 수준에서도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그 밑바닥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발전주의 국가를 통해 성취한 결과에 대한 맹신과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온존·강화하려는 탐욕이 존재한다. 거기에 노동자들의 ‘산노동’이 갈아 넣어졌고, 지금도 대한민국 자본주의라는 맷돌에 갈려 나가는 현실은 애써 외면한다.

이 책은 오늘의 성장중독, 과로사회를 만들어 낸 핵심적 요소의 하나로 한국 사회의 기술에 대한 숭배와 그 기술의 배신을 다룬다. 우리 사회는 기술은 숭배하나, 그에 반비례하여 노동 인권은 배제되거나 실종된다. 배달노동자, 긱 경제(Gig Economy)로 대표되는 플랫폼 노동의 현실은 단적인 예이다. 

저자는 기술 자체가 사회 혁신과 진보로 등치되거나, 취약 노동이 기술로 매개되어 편리와 효율의 시장 논리로 둔갑하거나, 반(反) 생태적 기술을 흡사 청정(淸淨)의 것으로 위장하거나 기술이 뭇 우리의 취향을 주조하는데도 이를 풍요의 자유 문화처럼 보는 허구를 뒤집는다.

첨단의 신생 테크놀로지가 선사한 성장의 달콤한 열매만큼이나 기술 숭배가 가져온 부메랑 효과를 경고한다. 인류가 도구적 이성에 기대어 테크놀로지를 욕망할수록 지구와 인간 삶의 생태 순환계에 균열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생태 균열은 일상, 사회, 노동, 미디어, 생명에 걸쳐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의 창궐은 인간 욕망의 무한한 추구의 결과다. 

이 책은 당대 테크놀로지가 야기하는 논쟁점을 크게 다섯 분야로 나누어 살핀다. 일상 사회와 문화에 틈입한 신기술 알고리즘 기술 질서의 탄생과 강화, 플랫폼 기술이 구성하는 위태로운 노동과 무인 자동화의 미래, 과학기술의 반생태적 조건과 ‘인류세’라 불리는 지구 위기 상황, 코로나19 국면 속 비대면(untact) 기술 확산과 노동·정보 인권 침해의 문제, 이 모든 ‘디지털의 배신’에서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자율의 대안 가능성 여부를 따진다.  

제1장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지배하는 플랫폼 세계’는 주로 비물질계 디지털 질서와 기술 규칙이 현실계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피지컬)과 디지털이 교직하는 ‘피지털’이라는 새로운 혼종계의 도래를 언급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가상의 디지털 논리로 물질계의 질서를 통제하고자 ‘피지털’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문화 취향까지도 알고리즘 기계에 의해 ‘납작하게’ 만드는 의식 관리 능력까지 지니고 있다.

제2장 ‘플랫폼 자본주의와 알고리즘의 야만성’은 알고리즘 자동화와 플랫폼 기술 시대에 인간 노동의 질적 문제를 다룬다. 기술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의 ‘산노동’이 일종의 여타 물질 자원처럼 취급·배치되면서 발생하는 고용 노동의 해체와 약자의 사회 배제 논리를 경고한다. 동시에 플랫폼 노동 관련 법·제도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자들의 협력과 공생이 가능한 사회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제3장 ‘그린 뉴딜과 불타는 지구’는 동시대 지구온난화와 생명종 절멸 위기에 책임을 가져야 할 인간들이 그것에 무심한 채 과학기술 발전에 기대어 끝없이 추구하는 성장주의적 욕망과 기술 숭배의 병폐를 짚는다. 지구 위기 탈출과 완전한 생태 순환적 전환을 이루자면 이제까지 인류의 과학기술 성장과 발전 패러다임을 근원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과학기술이 갖는 반생태 효과로 인해 코로나19와 같은 지구 위기 상황과 유사 재앙을 계속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제4장 ‘코로나19 팬데믹과 인포데믹’은 코로나19 재난으로 불거졌던 정보 인권과 노동 인권 침해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방역 모범국가’의 이름값을 위해 좀 더 강한 감시 장치 도입으로 인한 시민 정보 인권의 위기 상황을 살핀다. 그리고 물리적 접촉의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비대면’ 지능 자동화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국가 진흥의 방향 속에서, 외려 유통과 물류에서 잦은 대면 접촉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일용직 노동자·특수고용직 노동자·플랫폼 노동자의 소멸하는 인권을 지적한다.

그래서 대감염병 이후를 준비하는 정부의 ‘한국형 뉴딜’의 진행 방향은 기술 숭배와 성장 중독의 또 다른 반복이나 변형이어서는 곤란하다. 재난 상황에서 긴급한 시민권 보호와 기술민주주의적 가치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비대면 기술의 활성화가 아니라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로 지치고 다친 시민들을 이제 사회적으로 어떻게 새롭게 결속할 수 있도록 연대의 기술을 마련하느냐에 있다.

제5장 ‘데이터 인권과 디지털 민주주의’는 지배적 테크놀러지에 대항하여 시민사회 주도 아래 기술 대안의 기획과 구상이 가능한지를 확인한다. 주류 기술의 퇴행과 정보 인권 침해를 억제할 다른 대안의 구상은 쉽지 않다. 그래서 기술 예속 상태의 무기력증 대신 우리 각자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기술 사물들에 대한 비판적 통찰 감각을 터득하는 새로운 ‘문식력(literacy)’을 갖자고 제안한다. 더불어 각자의 비판적 기술 감각을 갖추는 것과 함께 시민 자율의 공동 연대체이자 공생공락의 결사체, 이른바 ‘커먼즈(공유)’를 통한 기술민주주의적 가능성도 모색한다.

인간의 자연과 사회 지배 효과는 자연 생태종의 축소는 물론이고 종 변화까지도 이끌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공지능 기계종과 생태학적 돌연변이 생물종이라는 비예측적 비인간의 확산도 거대한 흐름이다. 대한민국은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후발주자지만, 동아시아 경제개발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생태 균열과 생명 파괴를 이끈 발전주의의 상징적 국가다. 

지구 생태 교란은 애초 인간 약자뿐만 아니라 ‘인간 아닌(in-/no-human)’ 비인간종의 고통과도 맞물린다. 지구 생태 위기는 인간 외의 것을 열등한 생명체나 사물로 보고, 그의 관리와 지배를 인간의 것으로만 여겼던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적’ 오만의 결과로서, 다른 생명종들에 대한 종 차별주의, 동식물 학대, 생명 실험과 재생산 기술 사유화, 생명종의 기계 수탈 체제 등과 깊숙이 연계되어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첨단 과학기술 중심의 성장과 발전주의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다. 인간 생태발자국이 만든 폐허에서 재기 가능한 수준의 지구 회복력과 노동하는 삶의 존엄을 고려한 과학기술의 새로운 대안적 전망이 필요하다. 이는 생태(생명) 지구의 물질대사와 인간 사회의 과학기술을 합목적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중심주의와 기술 패권의 복속적 관계를 해체하고, 생태(생명)주의적 관점을 주축으로 새로이 인간 기술의 위상을 재구축해야 한다. ‘생태기술(ecological technology)’과 ‘공생기술(convivial technology)’이라는 두 가지 미래 대안 기술적 전망을 구현하려면 이제와는 다른 대안적 삶을 디자인하는 사회 체제의 기획 없이는 무망하다. 

시장이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기술이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함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한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대안사회는 기술 숭배와 성장중독에서 벗어나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우선하고, 민주주의를 통해 이를 구현하는 사회다. 디지털 시대, 파괴되는 생태계와 인간의 산노동의 소외에 천착하는 저자의 노력이 생명평화민주주의 구상을 풍부하게 한다. 
※ 이 서평은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웹진 《正道精進》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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