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사진=교보문고
표지사진=교보문고

이 책은 우리 헌법에 담긴 근본정신을 현대적 의미로 되살려낸 《헌법의 풍경》, 법조계를 둘러싼 모순과 병폐를 정면으로 제기했던 《불멸의 신성가족》 등 전공 분야를 넘나들며 우리나라 법조계를 날카롭게 분석해온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두식 교수가 3년 넘는 치밀한 조사 끝에 우리 법조계의 초창기 풍경임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해방 전후 법조계의 형성 과정을 치밀하게 복원한 역작이다. 

해방 전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사람 이야기로 풀어가는 이 책에서 저자는 해방 직후 법조계에 자리 잡은 이들을 고등시험 사법과, 조선변호사시험, 서기 경력을 통해 특별 임용된 사례로 구분해 소개하며 개개인의 이력에 숨은 맥락을 고찰한다. 총 7부로 구성되어 있고 초창기 대한민국 법률가들을 네 가지 유형으로 묶어 설명한다.

당시 법조계의 풍경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사법부의 구조와 현상 등을 상당 부분 설명해주는 길이 될 뿐 아니라, 친일문제를 비롯해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통상 일제 강점기 판사, 검사라 하면 다 아는 것처럼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 순응하여, 식민체제를 옹호하였던 사람들이다. 그 협력의 과정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친일 경찰들이 독립운동가를 잡아오면 그들을 재 판하여 형량을 정하는 소위 ‘재판’ 업무를 하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 다.

그러나 이런 친일 판검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아끼지 않았던 변호사들도 존재했다. 우리가 익히 알 고 있는 허헌, 김병로, 이인 같은 분들이다.

이 책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당시 법조인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배출되었고, 그들의 성장과정과 인맥관계, 출세를 위한 그들만의 몸부림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뇌, 한국전쟁 전후 오도 가도 못했던 그들의 신세, 마지막으로 그 들의 인생 부침(浮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어린 시절 성장기부터 법률 가 하나하나를 고찰하고 있다.

저자의 분류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일본 도쿄에서 치러진 고등시험 사 법과에 합격한 조선인들을 해방이후 대한민국 법조계의 ‘제1법률가군’ 이라 칭한다. 이 시험은 1923-1943년까지 시행되었고, 조선인은 매해 평균 14명 내외로 합격하였다고 하니 정말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보 다 더 어려웠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당시 인구수를 고려하더라도 매년 1,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배출되는 지금과 비교하면 이 숫자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인지 알 수 있다.

‘제2법률가군’이라고 칭하는 그룹은 1922-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한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들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1군과 달리 판검사 임용은 할 수 없었고 오로지 변호사 업무만 종사할 수 있었 던 이들이지만 매해 평균 7명 내외의 합격자만 나왔다고 하니 이 시험 역시 얼마나 어려운 시험인지 말해준다.

저자는 계속하여 일제 강점기 법원이나 검찰의 서기 경력을 바탕으로 해방 후 판검사에 임용된 그룹이 ‘제3법률가군’, 미군정시기 잠깐 시행된 사법요원양성소 출신을 ‘제4법률가군’이라 칭하며, 이들 중에서 법률가 자격 취득 근거가 가장 빈약한 제3법률가군에 속해 있던 오제도 검사가 위 1, 2, 4법률가군 출신들을 일망타진한 점에 주목한다.

이들 법률가들의 흥망성쇠, 부침의 역사를 보려면 해방정국 한 복판에 서 벌어졌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국회프락치 사건, 제1, 2차 법조 프락치 사건, 한국전쟁 중에 일어났던 보도연맹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해방정국에서 변호사로 사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 리자면 변호사가 피고인의 무죄석방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데, 그게 범죄가 되는 시대였던 것이다. 저자는 이들 재판 기록과 관련 신문기사 등을 샅샅이 뒤지며 이들 재판이 온갖 고문으로 점철된 조작이었으며, 소위 ‘관제 빨갱이’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파 헤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법 과잉의 시대이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지만 법률가들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이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 마련이다. 이 책은 법률가들의 과거 역사를 말하고 있 지만 그들이 겪은 고뇌와 번민을 오롯이 떠안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 우 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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