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이로운넷과 (사)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 공동체의 문제를 직시하고, 묵묵히 그러나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월 1곳씩 해당 단체의 책임자나 운영자의 입을 빌어 사업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기획입니다. 

2002년 시작한 아시아의친구들(이하 아친) 소명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 문구가 있다. “먼 길을 찾아온 이웃들에게 참된 이웃이 되겠습니다” “각국 민중들과 교류하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걷겠습니다”. 참된 이웃을 지향하려는 철학적 바탕은 타자를 향한 환대의 정신이고. 각국 민중들과의 교류와 연대는 공통적 고통으로부터 길을 찾는 과정을 의미한다. 

의식과 뿌리의 동질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국적, 종교, 인종, 나이를 뛰어넘는 운동을 지속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물며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지 않으니 물적 토대는 더욱 그렇다,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지난 22년의 활동을 A4 두장으로 요약하여 전달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오래된 후원회원이 “이제 할 일 충분히 했고 문 닫아도 된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 행정부처의 위탁사업으로 이주민을 돕는 사회복지, 교육사업, 종교단체, 공익단체 변호사들의 법적 지원도 늘었으니 이제 고생하지 말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언젠가 우리도 소멸할 것이다. 

아친은 2002년 단체 설립 후 다양한 사건과 상황을 경험하거나 인식할 때, 증거가치의 도구로 기록을 남겼다. 정부가 외국인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는 대부분 민간단체가 노동상담을 했는데 이 업무는 예산을 받아 위탁사업을 추진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일상을 보여준다. 80년대 야학이나 노동상담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글을 배우러 왔다가 일상을 공유할 기회가 늘면 자연스레 이야기가 늘고 상담 건도 늘어난다. 지금도 소장 중인 상담 일지에는 타지에서 겪는 어려움, 일터와 숙소에서 벌어진 온갖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온전한 개인’의 삶과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와 정보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록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한국 지자체와 외국 지자체가 MOU체결을 통해 농촌 내 외국인노동자 고용을 증진하고 있는데, 정작 국가가 불러왔어도 의료보험 제도가 없다. 국가가 불렀는데 보건복지부 역할은 비어 있다. 

아친은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을 위한 의료공제회 활동을 지원했다. 이주민도 회비를 내기 때문에 상호부조 방식이다. 정부가 이민청을 만들겠다고 공언하지만, 국가정책이 미흡할 때 노동자의 희망과 절망을 마주하며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민간인들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기록되기 전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은 노동상담이나 한글교육을 과거처럼 하진 않는다. 노동자 회원들이 있어서 틈틈이 일하는 일터, 숙소 등을 방문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애로사항도 파악한다. 정부가 발표하는 숫자에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 사건들은 그림자이다. 

농촌 노동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증가하는 외국인 노동자 정책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노동자 정책 안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실태는 대개 증가하는 숫자로 존재한다. 숫자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개인 간의 차이와 한 사람의 복합적 층위를 설명하려면 한계가 있다. 농촌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산업과 달리, 좋은 사례가 만들어지면 다른 면이나 군으로 확산될 수 있는 지역공동체의 연결성이 아직 살아 있어서, 완주군에서 농민들과 공론화를 하며 외국인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모두 도움이 될 방안들을 제안했다. 

환대에서 상생을 모색하는 활동 기록은 목소리를 가진 개인,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그들이 불쌍해서 그래서 정책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접근이나 사소화 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존재를 드러내는 일상아카이브를 준비하고 있다. 아카이브에서 당사자 스스로의 기록은 사회적 존재로서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도구이며 활동의 결과이다.

이주민이 사회적 통합 대상이라고 규정하는 정치와 제도적 장치는 개별적으로 경험한 구체적 사례들을 보편적 상황으로 환원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개인은 사라지고, 개인들의 특정 단면들이 모인, 집단만이 남는다. 그래서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기록은 부재하고, 개인 인식도 어려워진다. 

아래의 사진들은 공동체 기반 민간단체 활동이 한 사회의 좋은 유산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필리핀 미등록노동자, 게리의 공장 이야기(2003)
필리핀 미등록노동자, 게리의 공장 이야기(2003)
김포 거주 이주노동자 무료 건강검진 순회활동(2016)
김포 거주 이주노동자 무료 건강검진 순회활동(2016)
금촌역 앞 지진 참사 모금 활동(2008)
금촌역 앞 지진 참사 모금 활동(2008)

2022년부터는 기록 보존 운동을 시작하다 

민주주의를 연구한 프란시스 무어 라페는 시민 중심의 상호연대가 전개되는 시공간을 ‘제4세계’라 하였다. 그곳은 고난에 처한 사람들과 그 손을 잡아준 마음이 연결된 공간이며, 의식적 연대의 장소다. 무어는 그곳에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는 뿌리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지난 10월 7일 이후 한국 내 이주민들과 단체들이 이끌어가는 <팔레스타인인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활동도 그런 예에 속한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피해 지역 당사자들과 공동체 회복을 꾀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활동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전쟁, 학살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응답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인권 평화적 감수성을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운동이다. 타자를 대상화하기보다, 자신을 긍정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연대와 기록 운동에서 해방 가능성을 찾는다. 문화와 언어의 토대를 공유할 때 친밀감이 강화된다는 속성은 더 이상 정설이 아니다. 

파주 한국어교실 풍경(2007)
파주 한국어교실 풍경(2007)

20년 넘게 수행해온 역할들-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 대상 한국어교실, 노동상담, 체류개선 관련 캠페인, 보호소 모니터링, 상호문화이해– 은 다양한 주체들을 만난 시공간의 구체적인 역할들이며 사건이었다. 

팔레스타인과 함께 하는 시민활동과 농촌 내 외국인노동자들의 문제에 머리를 맞대는 시공간속 구체적 목표는 다를 수 있지만 철학적 지향은 같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스스로의 이야기가 대신 말해진 기록만큼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존엄한 삶을 살아야 할 존재의 목소리를 지켜내는 것, 인간됨에 기여하는 기록들을 계속 생산하는 것 또한 작은 자리에서 해야 할 몫이다.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에 나온 아랍계 여성들 / 출처: 아친]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에 나온 아랍계 여성들 / 출처: 아친]

1월 13일은 팔레스타인 국제행동의 날을 맞아 전 세계에서 가자지구 학살중단을 위한 캠페인이 시작된다. 신년부터 팔레스타인 학살 중단에 온 힘을 다하는 이집트 난민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문화의 날’을 만들어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팔레스타인들은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의 상징이다. 기록은 자신들의 언어로 만들어도 타향살이 친구들 옆에서 일이 되도록 도모하는 것은 단체의 몫이다. 다양한 참여를 기다린다,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각자의 능력과 이해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꼭 강조하고 싶다. 

아친대표 차미경 박사

※ 이 기사는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웹진 [正道精進]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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