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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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 관련 뉴스를 보다가 11월 8일 김대중 도서관에서 문정인 교수와 조선 핵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조선 정보분석가 로버트 칼린이 함께 의견을 나눈 ‘코리아에서 핵 재앙 예방하기’ 대담 취재기사에 주목하게 되었다. 1974년부터 조선을 연구하였고, CIA 정보분석관으로 종사하다가 1989년부터 2002년까지 국무부 정보분석국 동북아 팀장으로 30여 차례 방북하면서 당시 모든 조미 회담에 관여했다는 로버트 칼린은 대담에서 “조선이 여전히 원하고 있는 한 가지는 완전한 주권 국가로 대우받는 것이다. … 바로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중의 하나다. 워싱턴에 있는 이들은 이를 악물고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원치 않더라도 조선을 국가로서 승인, 국제질서 속에서 책임과 편익의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런 다음, 조선을 상대로 (비핵화로) "세계에 입증해야 할 게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일종의 선 국가인정, 후 비핵화 주장이다.

10월 5일 출판된 김계동 교수의 『남북한 국가관계 구상: 대북정책의 뉴 패러다임』도 유사한 문제 인식을 지니고 있다. 김계동 교수는 40년 전 유학 시절 스승인 옥스퍼드대 국제정치학 석학 헤들리 불 교수에게서 남북관계가 불안한 이유 중의 하나는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밝혔다.  

대북정책의 목표: 국가 차원의 관계개선과 공존의 제도화

김계동 교수는 단기적인 대북정책의 목표는 남북 주민들의 안전과 번영을 가져오는 평화적인 “국가 차원의 관계 개선”이며, 중장기적인 대북정책의 목표는 남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공존의 제도화”라고 주장한다. 평화는 “대체로 국제법에 준거하고 국제사회의 인정과 지원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특수한 관계로 설정하는 등 국가적 수준에 미흡한 합의서나 공동선언보다는 조약과 협정 등과 같이 국가 간의 제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문제는 냉전시대 남북 간 “상호 국격 부정과 적대적 공존”을 가져왔으며, 탈냉전시대에는 평화애호국이라는 전제에서만 가입할 수 있는 유엔에 남과 북이 동시에 가입했음에도 “주적과 평화공존의 이중구조”를 가져와 결국 평화적인 대북정책의 지속성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과거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1972년 서로 주권국가로 인정하면서 서로 정식 국호로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여 지속적인 동방정책을 추진한 것처럼 남과 북도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의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 평화를 지속시키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국제적으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핵무기를 개발한 조선의 의도는 개발과 협상을 반복한 이례적인 역사에서 나타나듯이 “체제 안전을 위한 협상용 카드”라고 해석한다. 이에 근거하여 조급하거나 무리한 방식의 조선 비핵화를 추구하지 말고, 조선을 체제 안전을 요구하는 국가로 인정하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교환하는 해법을 제시하며, 이를 위한 남북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제안한다. 

이러한 점에서 김계동 교수는 평화공동체를 경제공동체보다 먼저 실현해야 한다며 민족공동체 3단계 통일방안의 1단계 화해협력단계와 2단계 연합단계의 중간에 평화공동체 건설이 위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과 북의 경제적 수준 차이가 크고, 경제 제도가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남북교류협력 초기 단계에서 더 나아가는 경제공동체를 어렵게 건설하기보다는,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성실 이행 등 기존의 남북 간 군사적 합의를 이행하는 군사적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공동체를 충분히 구축하면서, 이를 통해 경제협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미국과 중국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를 건설하여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의 구조화와 제도화를 확실하게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북의 국가 관계는 시대정신의 합리적 선택

그는 냉전시대에 남과 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이적행위로, 통일에 방해되는 생각으로 취급했지만, 현재는 2022년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서 바람직한 남북 관계에 대해 질문했을 때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를 52%가 지지한 것처럼 남과 북이 두 개의 국가로서 관계발전을 시키는 것을 시대적으로 원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적 여론의 흐름과 더불어 유엔에서 남북을 두 개의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상황 등을 헌법의 영토조항 변경에 반영해야 하고, 이를 통해 조선을 국내외 법적으로 주권국가로 인정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미 남과 북은 이러한 흐름을 어느 정도 자신들의 통일방안에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족공동체 3단계 통일방안’은 교류와 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제도적인 평화 구축, 국가연합단계를 거쳐 하나의 국가로 통일을 하는 것으로서 국가적인 평화공동체 구상이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전시키려면 남과 북의 평화적인 공존 상생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특수관계’보다 ‘국가 간의 관계’임을 명확히 하면서 국가연합을 유럽연합과 같이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이 필요하며, 분단국가의 목표인 통일을 국가연합 이후의 과제로 놓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도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서 벗어나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표방하면서 남측의 연합제안과 공통점이 있다고 하여 사실상 남과 북의 정부가 정치, 외교, 군사권을 그대로 지니는 국가연합을 수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 모두 이적행위, 두 개의 조선 반대 등의 냉전적 여론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국제법상의 국가연합 건설 상황이 조성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2024년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30주년으로 발전적 계승방안 모색 필요

1989년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에서 채택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1994년 민족공동체 3단계 통일방안으로 발전하면서 한국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이 되어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조선의 경제난, 그리고 1차 북핵 위기 등과 맞물려 흡수통일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교과서에 명기되었을 뿐,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통일방안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개략적인 시간표와 로드맵도 제시되지 않았다. 

현재 통일부는 ‘통일미래기획위원회’를 신설하여 202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에 이를 수정할 ‘신통일미래구상’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신통일미래구상’에서 ‘자유통일비전’으로의 명칭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도 보도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김계동 교수의 『남북한 국가관계 구상: 대북정책의 뉴 패러다임』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흐름에 커다란 자극제가 될 것이다. 

※ 이 서평은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웹진  《正道精進》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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