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심볼
서울문화재단 심볼

서울문화재단이 올해 신설한 ‘서울희곡상’ 수상작에 극작가 이실론의 희곡 베를리너가 선정됐다. 제1회 ‘서울희곡상’은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응모자격 및 소재와 분량 제한 없이 연극장르 미발표 창작 희곡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했으며, 총 178편이 응모됐다. 

‘서울희곡상’ 수상작 <베를리너>는 내전으로 인해 봉쇄된 공항 안에서 캐리어를 기다리는 우희와 태조, 그리고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는 난민 잉그리드와 클라우스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작가는 작의에서 “지구에 인류가 나타난 이후로 계속 해왔던, 아마 인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될 이야기들이 있다. 이번 작품 <베를리너>를 통해 우리가 말하고 앞으로도 계속 말해야 할 주제를, 완벽하지 않더라도 늘 추구해야 할 자유와 평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이실론 작가는 “의미 있는 글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계속 고민한다.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불안해지지만 그런 불안에서도 우러나는 무언가 있으리라 믿으며 내내 쓰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심의위원회는 이번 수상작 선정 이유로 “경계에 대한 다각적 탐색을 정교하게 세팅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 수작으로, 세상 도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고통을 성찰하게 해주었다”, “간결한 대사와 구조로 우회적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성찰하게 해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작품 속에 마련한 여러 연출적 기호 역시 대학로극장 쿼드에서의 공연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등을 밝혔다. 

‘서울희곡상’은 새롭고 우수한 창작 희곡을 발굴함으로써 연극 생태계 활성화를 도모하고 희곡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창작 활동을 독려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실론 작가에게는 상금 2천만 원과 상장이 수여되며, 작품 <베를리너>는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QUAD) 프로덕션 과정을 거친 후 2024년 하반기 공연으로 작품화될 예정이다. 

다음은 심의위원 김명화(극작가), 김은성(극작가), 남명렬(배우), 박근형(연출), 박정희(연출)의 심의평 전문이다. 

[심의평]

창작극의 교두보가 또 하나 마련되었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희곡상 제정. 대학로에 위치한 쿼드 극장에서 공연까지 제작해주는 조건이다. 희곡은 공연을 전제한 글쓰기이기에, 이 경사에 먼저 재단 측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올해 첫 해를 마련한 서울희곡상의 지원작 수는 총 178편. 최근의 관련 희곡상이나 기타 지원제도와 비교할 때 월등히 많은 숫자다. 심사는 남명렬 배우, 박정희 연출가, 박근형 극작/연출가, 김명화 극작/연출가, 김은성 극작가 이렇게 다양한 세대와 장르를 대표하는 5명의 심사위원이 일 개 월에 걸쳐 진행하였다.

작품 수도 많았지만 작품 경향이 다채로워 심사과정은 지난하였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나름의 완성도와 참신함, 독특한 형식미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경향을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심사과정은 가장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작품과 기준으로 모아졌고, 후보작들의 장단점에 대한 긴 토론이 이어졌다.

후보작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또 하나의 특징은 한국 희곡의 장소성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이라는 특정장소에 국한되었던 희곡의 지평은 이제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으며, 등장인물 역시 동물과 AI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변화무쌍한 세상의 흐름에 대해, 한국희곡이 역동적으로 반응하고 발언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수상작은 이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는 <베를리너>다. 가상의 국가에서 벌어진 내전이 매개가 되어 외국의 공항에 묶인 한국인들의 짧은 체류기를 담았다. 작가는 이 여정에 해설자를 매개로 통독 이전의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는 난민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였다. 경계에 대한 다각적 탐색을 정교하게 세팅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 수작으로, 세상 도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고통을 성찰하게 해주었다.

너무 이성에 의지한 작품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으나, 감상과 직설적 발언을 걷어내고 우회적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성찰하게 해주는 작품도 필요한 법이다. <베를리너>는 그 가능성을 간결한 대사와 구조로 보여준 수작이며, 또 작품 속에 마련한 여러 연출적 기호 역시 쿼드 극장에서의 공연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그 외 최종심에서 중요한 후보작으로 거론하였던 작품들이다. 편의점 공간에서 최저소득층인 20대의 자폐적 고립과 공격성을 서늘하게 보여주었던 일인극 <어서오세요, AQ마트입니다>, 노동자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일상과 투쟁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눈물겹게 그려낸 <타워>, 오랜 리서치의 흔적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쇼스타코비치를 매개로 예술과 정치권력의 갈등과 부침을 보여준 <나머지는 침묵이다>, 소소한 일상의 무감각이 우연하게 중첩되어 대형참사를 만들어내며 그 결과가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있다는 <풍등>이 최종심에서 치열하게 거론되었다.

후보작들은 저마다 훌륭했고, 다른 기준 속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 희곡의 발전을 기꺼이 믿는다.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이번 공모에 178편에 이르는 작품이 접수된 만큼 희곡 창작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라며, “제1회 ‘서울희곡상’이 서울을 대표하는 최초의 희곡상으로 서울 연극창작 활성화의 주춧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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