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새들의 무덤>, <육쌍둥이> 등을 선보여 온 극단 즉각반응이 오는 12월 23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떠돔 3부작>을 공연한다. 

<떠돔 3부작>은 즉각반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 <Good day today>부터 <무라>, <찰칵> 등 즉각반응이 선보여 온 ‘떠돔 시리즈’를 한데 엮은 패키지 공연으로 각 작품마다 완결이 있는 작품이면서도 하나의 완결을 만들어 낸다. 

‘떠돔’과 ‘마주함’을 주제로 동시대의 개인과 가족, 사회, 세계를 살펴보는 <떠돔 3부작>은 총 3개의 2인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시에 남기는 떠도는 인간과 사물의 흔적들을 말과 설치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표현하는 <Good day today>, 아버지와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담은 <무라>, 독일로 입양되었다가 30년 만에 재회한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찰칵>이며, 회차에 따라 각기 다른 공연이 펼쳐진다. 

'찰칵'
'찰칵'

<떠돔 3부작>의 3개 작품은 ‘가족’, ‘2인극’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공통점은 결국 마주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1인 가족 시대에 ‘가족’이란 어떤 의미이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의 ‘마주함’이 아닐까 라는 질문을 제시한다. 

“바람이 불면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어색한 웃음, 어색한 발길
이제는 나도 쉬고 싶어. 그 어디든.”
-  <Good day Today> 中에서 - 

<떠돔 3부작>속의 인물들은 어딘가를 떠돌거나 떠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작품의 인물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면서도 어딘가에 자리 잡지 못 한다.  

'오늘은 좋은날'
'오늘은 좋은날'

<Good day Today> 속의 여인은 서울에서 정착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사내는 돈을 벌기 위해 유랑하며 살았다. 개기월식을 보러 온 이벤트 홀에서 와인을 서빙하던 여인은 사람들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그 거짓말 중에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도 일부 있는 것 같다. 새빨간 거짓말? 1초 만에 사람이 죽는 새빨간 거짓말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 속에서 딱히 듣지 않을 이유도 없다. 목수였던 사내는 그저 묵묵히, 열심히, 성실히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았지만 끝내 돈은 벌지 못했다. 이 작품 속에서 떠도는 것은 사람 뿐 만이 아니다. 떠도는 사물, 떠도는 우리의 시간과 감각을 목격할 수 있다. 

 <무라>에 등장하는 아들 수동이 평생 밖으로만 떠돌며 살던 아버지 동수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절대 닮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의 삶을 답습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어쩌면 그들 각자에게 ‘떠돎’이란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라'
'무라'

<찰칵>의 봉구는 30년 전 독일로 입양된 후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떠나보낸 곳으로 다시 떠나온 것이다. 극적인 만남 속에서도 엄마인 말심과 봉구는 서로 부둥켜 안고 울지 않는다. 세월의 간극만큼이나 어색한 만남이었지만 이 짧은 만남을 끝으로 다시 서로를 떠난다. 일회용 카메라의 눈부신 후레쉬 빛처럼 인생의 단 한 번, 짧지만 가장 빛나는 순간을 남겨둔채 말이다.  

‘떠도는 우리의 감각, 
‘마주함’으로써 나와 타인의 삶을 살펴보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오늘 날을 일컬어 ‘각자 존재하고 홀로 소멸하는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라고 비유했다. 또한 현대사회의 특성을 ‘고체 현대’와 ‘액체 현대’로 구분하였는데, 전자가 계획적이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말한다면 후자는 우연적이고 불확실하며 지속해서 변화하는 예측이 불가능한 사회를 말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한 가지 장소, 하나의 정체성,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 어딘가에 정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거나, 사랑도 인간관계도 너무 견고한 관계보다 흐르는 것을 선호한다. 10년 내 인구의 절반이 프리랜서와 파트 타임 일자리로 대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듯 오늘날 일자리와 살 곳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떠돔 3부작>의 작품들은 관객에게 무언가를 제시하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살면서 느끼는 상황과 상태의 감각을 대변하는데 보다 집중하고 있다. 다만 작품 속 인물들을 만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기를 권하며, 우리의 떠돎은 서로를 마주함으로써 미래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화두를 던진다. 

본 작품은 쓰고 연출한 하수민 연출은 “‘떠돔 시리즈’ 속의 ‘떠돔’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도시에서, 세계에서, 어딘 가에서 어딘가로, 살기 위해 움직이는 인간들의 상태이죠. 그 상태에 주목하고 그것을 온전히 무대에서 드러내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10년에 걸쳐 각기 공연 되어왔던 <떠돔 3부작>에는 연기력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극단 목화 출신으로 드라마 ‘법쩐’, 영화 ‘내부자들’, ‘암살’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사랑받았던 배우 김홍파를 비롯 손성호, 김시영, 서동갑, 조은아, 이진경 등이 밀도 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압도할 예정이다. 

한편, 즉각반응의 대표이자 연출인 하수민은 독창적 소재와 심도 있는 작품 해석으로 평단의 관심을 받고, 치열한 예술 활동의 업적을 인정받아 2023년 제25회 김상열 연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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