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엔사 재활성화 동향

지난달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이튿날(11.14) 한·유엔사회원국 국방장관회의(이하 ‘한·유엔사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한국과 미국의 국방장관이 참석했고 나머지 16개 회원국은 주로 주한대사들이 대리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한국전쟁 후 정전체제 유지에 대한 유엔사의 기여를 평가하고 앞으로 역할과 기능을 더 강화할 것을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로써 근년에 본격화된 유엔사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 움직임에 주최국(host nation)인 한국이 참여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일반대중에게 ‘유엔사(United Nations Command)’는 ‘막연히 당연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애초부터 유엔이라는 명칭이 ‘도용’(또는 오용)된 것이고, 유엔과 아무런 공식적 관계가 없는 미국의 군사조직이며, 국제법적으로 존속의 근거가 희박하며, 이미 유엔총회에서 해체를 결의하여 미국도 동의했으며, 유엔의 규정에 따라 유엔기의 사용도 더 이상 합법적이지 않다는 ‘사실’들이 점차 많이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 유엔사를 ‘유령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진=가짜'유엔사'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사진=가짜'유엔사'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유엔사는 1950년 7월 7일 유엔안보리 결의안 84호에 따라 미군장성이 지휘하는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로 불러야 하지만 미군이 자의적으로 유엔의 이름을 붙여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유엔사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휘하에 둔 작전사령부이면서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최고 군사기구였다. 더욱이 정전협정을 체결한 그날 한국전쟁에 참가한 16개국이 워싱턴에 별도로 모여 한국에 또다시 전쟁상황이 발생하면 재참전하겠다는 결의를 ‘워싱턴선언’으로 발표했으며, 이 선언이 오늘날 유엔사 회원국들의 모임에 근거가 되고 있다.

유엔사는 지금까지 두 번의 ‘존폐의 위기’를 겪었다. 첫 번째는 1975년 11월 18일 유엔총회에서 두 개의 결의안(3390A/B)이 채택되었을 때다. 서방측과 공산측이 각각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외국군을 철수할 것 등을 포함하여 유엔사의 해체(dissolution)를 촉구(urge)했다.

당시 국무장관 키신저는 총회 연설에서 1976년 1월 1일까지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대신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여 작전 기능을 전담토록 하고 유엔사는 존치하되 그 기능을 정전협정의 관리와 유사시 전력제공으로 축소했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하 작통권)은 형식적으로 유엔사령관으로부터 연합사령관에게 이양되었으나 두 직책을 동일인이 겸하므로 내용적인 변화는 없었다.

두 번째 위기는 한국군의 작통권 환수 이후 유엔사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논란으로서 현재 진행 중이다. 한국군이 작통권을 행사하게 되면 유엔사령관의 권한은 주한미군과 전시 증원 다국적군에 대한 것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전시에 한국군과 미군 최고사령관들 사이의 권한 관계가 모호해진다.

불행히도 노태우 정부부터 현재까지 작통권 환수 논의에서 이 중대한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작통권 ‘전환’을 현 연합사 체제를 유지한 채로 사령관만 한국군 장성으로 바꾸는 것으로 ‘재정의’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그렇게 되면 연합사 부사령관인 미군 4성장군이 유엔사령관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때 지휘권의 ‘충돌’이 일어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미국(군)은 이 문제를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엔사 재활성화다. 그 시작은 20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추진은 2014년부터다. 한국군의 작통권 환수 시한이 한 차례 연기되어 2015년으로 정해진 만큼 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목적은 유엔사를 존속시키는 것이고 핵심 내용은 참모조직을 독립화하고 확대하면서 그에 따라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겸직하던 유엔사 부사령관을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의 장군급으로 임명하고 참모부 역시 다국적 인원을 늘려 현재 100명 가까이 된다.

가짜 '유엔사'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주최 토론회
가짜 '유엔사'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주최 토론회

2. 유엔사 재활성화의 문제점과 위험성

유엔사 재활성화는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과 한국이 적극 협력하면서 추진되고 있다. 유엔사는 군사적 측면에서 문제가 많지만 비무장지대(DMZ) 출입 통제 등 정전체제의 관리 주체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남북관계를 ‘통제’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는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

유엔사의 ‘존재 이유’는 정전체제의 관리와 전시 증원전력 제공이기에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의 군사주권을 ‘희생’함으로써 유지된다.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 통과에 대한 자의적 통제로 남북 교류협력에 제동을 걸고 일국의 대통령후보(윤석열, 2021.12.20. 육군3사단 관측소 방문)까지 정전협정 위반으로 조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유엔사다.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은 군사 조직과 체계가 어떻게 변하든 거의 영구적으로 보유하겠다는 유엔사다.

유엔사가 전투사령부로 거듭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단시일 내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다. 한미 양국이 공식적으로 부인할뿐 아니라 현행 작통권과 연합사 체계가 유지되는 한 그럴 필요성도 없다. 그러나 평택으로 ‘확장 개업’한 유엔사령부가 일본에 위치하고 있는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들을 더 긴밀히 통합하고 유엔사 회원국의 더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한반도에 견고한 지역 통합사령부를 구성할 가능성은 우려할 만하다. 더욱이 유엔사 회원국에 일본이 참여한다면 한미일 3국의 유사동맹은 유엔사라는 외피를 한 겹 더 두른 정치군사적으로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지배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유엔사 재활성화로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와 군사적 긴장 고조와 대중국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의 군사주권도 ‘불완전하고 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지속될 수 있다. 국가의 구성요소는 흔히 영토, 국민, 주권과 제도라 한다. DMZ가 미군이 통제하는 사실상의 ‘남의 땅’이고 우리 국민이 이 지역 내에서의 활동이 통제될뿐 아니라 이로 인해 대내 정책과 대북 및 대외 군사정책에서의 정부의 정책 결정 자율성이 침해받고 있다.

작통권 환수에 연합사와 유엔사가 2중으로 개입하여 환수 과정과 환수 이후에 복잡한 문제들이 야기되며 이 경우 더 힘이 강한 쪽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군사문제에서 생기는 또 다른 구체적 폐해는 연합훈련에 다국적 유엔군이 참여함으로써 긴장이 심화·확대되는 일이 벌어지고 유엔사의 군사적 기능이 우주전과 사이버전 등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도 증대한다.

전략적 차원에서는 유엔사를 매개로 하여 한반도가 미국 주도의 지역 군사체계에 편입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전시에 18개 회원국(한국과 일본 포함)이 참전하게 되면 사실상의 국제 전쟁이 될 수 있다. 평시에도 미국의 다층적 동맹정책의 군사적 기반을 유엔사가 제공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의 동맹정책은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묶어 한미일 군사동맹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여기에 인도가 참여하는 쿼드(Quad), 미국이 호주와 영국과 함께 결성한 오커스(AUKUS) 등이 나토와 연결되면 그야말로 다중적인 미국 중심의 세계 군사동맹체계가 만들어 진다. 이러한 지역과 세계 군사동맹에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는 한국은 신냉전적 강대국 대결에서 전위대나 돌격대로서 행동하면서 국가이익을 무제한적으로 희생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문장렬(전 국방대 교수, jnmoon@hotmail.com)
문장렬(전 국방대 교수, jnmoon@hotmail.com)

3. 유엔사 문제의 해결 방향

어려운 문제는 근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거기서부터 해결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유엔사 문제는 근본적으로 주권 문제다. 이제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시기의 국가가 아니다. 경제 규모, 민주화, 군사력, 문화능력 등 어느 모로 보나 아직 불완전한 군사주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 어느 나라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국가의 위상과 체면뿐 아니라 국민의 자존감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역대 정부는 군사주권 문제를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북한 위협과 한미동맹 유지와 국민의 대미 의존 여론을 핑계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윤석열 정부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핵위협을 전가의 보도로 여기면서 한미동맹을 맹신하고 일본까지 가세하는 군사동맹체계를 만들려 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음이 충분히 입증되었다. 이를 실천하지 않고 파기하면서 미군의 전략무기에만 매달리는 것이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윤석열대통령 자신도 유엔사 재활성화가 옳은 것으로 확신하고 그 방향으로 앞장서서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10일 윤대통령은 유엔사 간부들을 초청한 간담회에서 “북핵 위협 고도화로 유엔사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종전선언과 유엔사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한다는 색깔론까지 제기했다. 이제 유엔사 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하여 해체를 주장하면 반국가 세력으로 몰리게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 방향은 명확하고 오히려 상식에 속한다. 첫째, 유엔사로부터 기인하는 독립국가의 비정상적인 안보 국방 군사 체계를 바로잡기 위하여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완전하게 환수해 와야 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마태복음 22;21)에게 가야 한다는 말과 같이 한국은 한국군을, 미국은 미국군(주한미군)을 작전통제하는 지휘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연합사체계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해온 방식대로 연합사령관의 국적만 바꿀 것이 아니라 한국군 단독의 작전사령부를 만들고 주한미군과 유엔사는 통합하여 미군 장성이 지휘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필요하면 한미 간 군사협력 체계는 별도로 만들어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유엔사와 관련된 작통권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둘째, 정전체제 관리 권한도 이제 한국이 행사해야 한다. 70년 동안 엄청난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진지한 성찰도 전문적 법률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당연하다고만 생각해 왔다. 한국은 주권 최우위의 국제법 원칙에 따라 우리 영토인 DMZ 관할권을 행사해야 한다. 작통권 환수나 영토의 관할권 문제는 미국과 협상할 대상이 아니다. 통보하고 이해를 구할 문제다. 물론 이러한 민감한 사안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여 한미관계를 가능한 한 적게 훼손하면서 추진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셋째, 유엔사는 향후 주한미군 또는 주일미군과 통합하거나 해체해야 한다. 좁은 한반도에 4성 장군이 지휘하는 작전사령부가 세 개씩 있을 필요가 없다. 원래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이고 수 십년 동안 미군이 단독으로 운영해 온 또 하나의 미군사령부이기에 ‘정위치’하는 것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현실적 대책은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나와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자주’는 당연하지만 국제관계의 현실에서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더욱이 유엔사 문제는 아무리 동맹국이지만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먼저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여 강력히 추진해야 하지만 군사문제인 만큼 군의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민주국가에서 정부와 군의 존재기반이 되는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요컨대 클라우제비츠가 일찍이 총력전 승리를 위한 삼위일체론에서 갈파했듯이 정부와 군대와 국민이 함께 힘을 모으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렵다.

자주 인용되는 중국 전국시대의 법가 사상가 한비자의 경구를 다시 소환해 보자. ‘비위(非違)는 이치를 이기지 못하고, 이치는 법을 이기지 못하며, 법은 권력을 이기지 못하나 권력은 천심 즉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非理法權天)’. ‘유엔 없는 유엔사’가 잘못된 것이라고 이치를 들이대도 국제법 논쟁에서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다. 미국의 막강한 권력 때문이다. 오직 국민이 이것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천심이든 민심이든 마냥 변하기를 기다릴 수 없다. 미국의 힘에 정당히 맞서기 위해서는 이치와 법과 국민의 지지를 모두 동원해야 한다. 평화와 주권을 위해서다. 

* 이 칼럼은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웹진 '正道精進'에도 게재됩니다.

문장렬(전 국방대 교수, jnmoon@hotmail.com)
문장렬(전 국방대 교수, jnmo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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