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미지 =pexels 제공
반도체 이미지 =pexels 제공

2005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는 ‘상온에서 작동하는 자성 반도체 구현’을 과학 분야의 125가지 미해결 난제 중 하나로 꼽았다. 18년이 지난 현재 자성 반도체는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이영희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장(성균관대 HCR 석좌교수)은 10월 20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IF 56.9)’의 전문가의 목소리(Expert Voices) 코너를 통해 상온 자성 반도체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보는 논평을 게재했다. 전문가의 목소리는 세계 과학계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분야를 선정해,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연구자의 고견을 듣는 코너이다.

전자기기의 소형화에 따라 소자의 집적도가 증가했다. 소자의 크기가 수 나노미터 수준까지 작아지면 단위면적 당 소비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발열로 인해 소자의 성능이 떨어지거나 아예 작동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전자 대신 스핀을 활용하는 기술,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다.

스핀트로닉스의 핵심 구성 요소는 자성체다. 기존 컴퓨터는 하드디스크에 있는 자석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저항 변화로 0과 1의 데이터를 읽는다. 반면, 스핀트로닉스는 자성체 내부 스핀들의 정렬 변화로 저항을 조절한다. 그만큼 스핀트로닉스 구현에 있어 최적의 자성체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성체는 상온에서 스핀 정렬을 유지하고, 전압에 따라 스핀 정렬을 바꿔야 하고(스핀 스위칭), 대면적 소자 제작이 가능할 수 있는 등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기존 반도체에 소량의 자성물질을 주입하는 식으로 스핀트로닉스 소재를 제작해왔다. 하지만 일부 조건을 만족할 뿐, 모든 조건을 충족한 소재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이영희 단장이 이끄는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 연구팀은 해결책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연구들을 잇따라 발표했다. 2020년 연구진은 2차원 반도체 물질인 텅스텐이셀레늄화합물(WSe2)에 자성을 가진 불순물인 바나듐 원자(V)를 주입하여 상온에서 강자성을 나타내는 2차원 자성 반도체 소재를 개발했다(Advanced Science). 올해 8월에는 이 물질을 전압에 따라 스핀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스핀 스위칭 소자로 구현하기도 했다(Nature Electronics).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스핀트로닉스 상용화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았다. 스핀 정렬이 풀리는 큐리 온도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 큐리 온도를 더 높이는 과제, 높은 큐리 온도를 얻기 위한 최적의 불순물 도핑 농도를 결정하는 과제, 스핀이 더 견고히 정렬될 수 있도록 자기 질서를 강화시켜야 하는 과제 등이다.

이영희 단장은 “모든 과학적인 조건을 만족한 소재를 제작한 뒤, 웨이퍼 크기로 대면적 제작까지 성공해야 상용화의 목전에 다다를 수 있다”며 “현재의 연구는 스핀트로닉스 구현을 위한 걸음마 단계 수준이지만, 다양한 연구자들이 협력을 통해 힘을 모은다면 향후 10년 안에 이 도전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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