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사진=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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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등단 이후 60여 년간 한국 문학을 대표해 온 작가 황석영. 시대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고, 우리의 전통을 드러내는 것에 늘 진심이었던 그의 문학에는 언제나 ‘민중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다.

80세의 노작가 황석영은 이제 문학 여정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민담’을 선택했다. 스스로 자신의 소설을 ‘민담 리얼리즘’이라 일컬었던 황석영 작가가 이제 작품의 모티프나 배경이 아닌 당당한 주인공으로서의 민담집을 펴냈다. "민담이야말로 우리 이야기의 원천이고 K-콘텐츠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석영 작가가 14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 시리즈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14일 소설가 황석영(80)이 '어린이 민담집' 출간 기자 간담회를 열고 "그림 동화와 안데르센 동화보다 우리 민담이 훨씬 인상적인 작품이 많다"며 오래된 이야기 '민담'의 매력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민담은 그야말로 백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이야기가 거침이 없다. 동물이나 도깨비와 소통하는 등 상상력의 비약이 뛰어나다."

그가 민담집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창의력의 발원이 되는 민담을 한 시대의 할아버지로서 어린 손주, 손녀들에게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하는 5권을 시작으로 총 50권, 150개의 민담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낼 예정이다.

 '민담집' 시리즈를 위해 황 작가는 수집한 민담 가운데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만 추려냈다. 그는 "우리 전래 민담을 자필로 정리한 노트 20여권을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며 "그중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나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정치색이 강한 민담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황 작가는 이번 집필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서가 한이 아닌 '신명'임을 깨달았다. 그는 "우리는 슬픔의 상황에서 웃음을 통해 슬픔을 승화하는 단계로 나아갔고 이것이 바로 '신명의 정서"라며 "'오징어 게임'이 신명으로 현실을 그려낸 작품이고 그것이 전 세계에 통했다"고 설명했다.

신명의 정서는 그의 민담집 가운데 3권에 수록된 '해님 달님'에 잘 드러난다. 오누이는 호랑이에게 어머니를 잃고 자기들의 목숨도 위기에 놓였지만 절망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뒷집에 가서 들기름 얻어다 바르고 올라왔지"라며 재치있게 호랑이를 골탕 먹인다. 이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나 복수심에 집중한 '한'의 정서가 아닌 재치와 익살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신명'의 정서다.

"우리의 정체성을 알게 해주는 뿌리는 우리 이야기"라고 강조하는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면서 "우선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다른 문화를 접할 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자기 것을 사랑했을 때 남의 것도 존중할 수 있다. 지금 한류도 이런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했을 때 파급력이 더 커질 것이다"라고 했다.

단순히 민담집 출간에 그치지 않고 웹툰과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 개발도 목표로 하고 있다. 황 작가는 출판그룹 휴먼큐브와 콘텐츠 회사 '푸리미디어'를 설립하고 민담집을 바탕으로 한 여러 형태의 콘텐츠를 공개하고 이를 영어권과 중국어권 등 해외 시장으로 진출시킬 계획이다.

내년까지 민담집 50권을 완성하고 차기작으로는 장편소설 '나무'를 예고했다.

"나무가 화자가 돼 내레이션하는 형식의 명상적인 작품입니다. 얼른 (민담집) 숙제를 끝내고 기운이 남으면 이렇게 2~3편의 장편을 더 집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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