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대산문학상 희곡 부분 수상작 '당선자 없음'의 작가 이양구(오른쪽부터), 소설 부분 수상작 '제주도우다'의 작가 현기영, 시 부분 수상작 '낫이라는 칼'의 작가 김기택이 6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제31회 대산문학상 희곡 부분 수상작 '당선자 없음'의 작가 이양구(오른쪽부터), 소설 부분 수상작 '제주도우다'의 작가 현기영, 시 부분 수상작 '낫이라는 칼'의 작가 김기택이 6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이 상은 현기영에게 준 상이라기보다는 제주의 아픈 역사를 중요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로 인정해주는 상인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소설가 현기영(82)이 역대 최고령 대산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그는 "상을 줘야 할 나이에 상을 받는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다"며 "이 상은 내 문학에 대해서 그래도 열심히 써왔다는 걸 긍정해주는 상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6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대산문화재단은 제3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현 작가의 '제주도우다'(소설 부문)를 비롯해 김기택 시인의 시집 '낫이라는 칼'(시 부문), 이양구 작가의 희곡 '당선자 없음'(희곡 부문), 마티아스 아우구스틴·박경희 번역가의 '고래(Der Wal)' 독역판(번역 부문)을 선정해 발표했다. 부문별로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0만원이 수여된다.

'순이삼춘'에 이어 다시 한번 4·3사건을 다룬 소설 '제주도우다'로 수상한 현 작가는 "내가 태어난 제주도에서의 참혹한 비극이 억압으로 작용해 지금까지 왔다"며 "제주도에 완전히 포박된 것처럼 늦도록 제주도 얘기를 써왔다. 이번 소설이 4·3에 대한 마지막 종지부다. 앞으로는 청년 시간에 숙고했던 순문학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을 쓴다는 게 자신의 내면을 해방시키고 자유로워지는 것인데 등단 후 제주도와 그 역사에 오랜 시간 억압돼 있었습니다. 이 나이에 앞으로 얼마나 문학의 길을 갈지는 모르지만 자연과 자연스러운 인간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시 부문 수상자 김기택(66) 시인과 희곡 부문 수상자 이양구(47) 작가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대해 각기 다른 견해를 냈다.

김 시인은 수상작 '낫이라는 칼'에 대해 "코로나 팬데믹 기간 이전에 쓴 시와 이후에 쓴 시가 반반씩 섞여 있는 시집"이라며 "팬데믹 기간에 고생을 한 분들에게는 송구하지만 한편으로 나에겐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지금 사회는)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 시간에 길들어 있는데 코로나가 그 지루함을 견디고 즐길 수 있는 맷집을 준 것 같다"고 회상했다.

희곡 작가이자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경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기"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 시기에 산과 강을 많이 다녔는데 지도상으로 막혀있는 경계라는 것이 막상 가보면 굉장히 허술하고 뚫려있는 것을 보았다. 경계나 벽처럼 여겨졌던 것이 길이거나 뚫려있는 것을 보고 소통의 가능성을 많이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공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수상작 '당선자 없음'에서도) 검열을 다루지만 코로나 시기에 다른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 검열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를테면 코로나 때문에 극장이 쉽게 폐쇄되고 공연이 중단됐는데 국가 권력에 의해서 생업과 관련되고 자유가 있는 예술이 너무나 쉽게 결정되고 이를 공연 관계자와 관객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제31회 대산문학상 시 부분 수상작 '낫이라는 칼'의 작가 김기택이 6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제31회 대산문학상 시 부분 수상작 '낫이라는 칼'의 작가 김기택이 6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한국 문단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김기택, 현기영 작가가 수상자에 오른 만큼 최근 젊어진 문단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김 시인은 "최근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젊은 작가들이 많이 나와서 상대적으로 내 작품은 독자들이 읽을만한 작품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며 "상을 받아 겉으로는 즐겁지만 안으로는 조금 부끄러움이 있다. 이번 수상이 지금까지 써온 틀에서 벗어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현 작가는 자신이 "과거에 속한 사람"이라면서도 "진지한 문학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젊은 사람의 시가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최근 다양성의 이름으로 중요한 가치관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중구난방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난해한 시나 자신만의 목소리가 아닌 진지한 문학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은 진지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편, 이날 해외 일정으로 간담회에 불참한 마티아스 아우구스티노와 박경희 번역가는 지난해 천명관 작가의 소설 '고래'를 독일어로 번역해 현지에 선보였다.

국내 최대의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은 1992년 재단 설립 이후 올해로 31년간 이어져 온 문학상이다. 시·소설 심사대상작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단행본으로 출간된 문학작품이며 평론은 지난 2년, 번역은 지난 4년간 출간된 작품이다. 시상식은 오는 23일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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