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의 지향

'전쟁없는세상'은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신념에 기초해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활동하는 평화주의자․반군사주의자로 구성된 단체다.

'전쟁없는세상'은 2003년 병역거부자들과 그 후원인들의 모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병역거부 운동의 초창기에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권의 제도적 인정을 촉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의 핵심적 활동인 전쟁거부자 조직 캠페인과 무기박람회 저항 캠페인은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자리잡고 있다.

전쟁거부자 조직 캠페인은 2020년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이후 대체복무자, 완전거부자, 여성병역거부자, 병역거부난민 등 다양한 형태의 전쟁거부자 조직과 대체복무 제도 개선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무기박람회 저항 캠페인은 한국산 무기 수출 모니터링 및 저지 활동, 무기박람회에 맞선 저항행동, 한국 및 세계 군사비 감축을 위한 캠페인 등 무기산업에 저항하는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은 전쟁이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으며, ‘전쟁없는세상’을 위한 투쟁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전쟁을 가능케 하는 일상 속, 사회 구조 속 다양한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20211018_ stop ADEX 직접행동 | 서울 ADEX 중단 촉구 기습시위 (사진 = 아덱스저항행동)
20211018_ stop ADEX 직접행동 | 서울 ADEX 중단 촉구 기습시위 (사진 = 아덱스저항행동)

무기산업이 왜 문제인가?

'전쟁없는세상'은 전쟁을 가능케 하는 구조의 일부로 무기산업에 주목한다. 무기는 유일한 목적이 생명을 살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동차나 휴대전화 같은 여타 상품과 성격을 달리한다.

무기산업의 근본적 문제는 누군가의 죽음과 고통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무기산업을 촉진하는 것처럼 무기산업 역시 전쟁을 촉진한다. 무기산업이 전쟁과 무력 분쟁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이미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기거래는 무력 분쟁의 발발 가능성을 현저히 높인다.

무기는 독재자와 권위주의 국가들이 국내의 민주화 열망을 억압하고 인권 침해를 자행하는 데도 쓰인다. 무기거래는 본질상 불투명하기에 부패를 수반한다. 의료나 교육, 기후위기 대응처럼 더 시급한 곳에 쓰일 자원의 오용을 가져온다. 무기의 개발과 생산, 시험, 사용을 포함한 모든 군사활동은 심각한 수준의 탄소를 배출한다.

전쟁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고, 전쟁수혜활동이 정상적인 사업 활동으로 인정받는 한 전쟁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무기를 사고파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인식이 당연시될 때 전쟁은 비로소 끝날 것이다.

한국산 무기가 실제로 사람을 죽이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은 2018~2022년 세계 7위의 무기 수입국이자 9위의 무기 수출국이다. 한국의 연간 무기 수출액은 2020년 30억 달러에서 2021년 72억 달러로, 2022년에는 다시 172억 달러로 급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을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에 진입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가자지구 분쟁 등으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이때 한국 무기산업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 1년 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72%), 한국항공우주산업(75.1%), LIG넥스원(64.8%), 현대로템(74.8%) 등 국내 주요 방산업체의 주가는 급등했다. 이는 록히드 마틴(47.7%), 레이시온(현 RTX, 24.9%), 노스롭 그루먼(54.1%), 제너럴 다이내믹스(33.2%) 등 세계 주요 방산업체들보다도 훨씬 높은 증가율이다.(2022.12.1. 기준)

무기 수출 정보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도 알 수 없는 기밀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하지만 국내외 언론 보도나 SNS, 현지 활동가의 제보 등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산 무기는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무력 분쟁에 사용되고, 독재자와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데 동원된다.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수출한 총기(SNT모티브, 다산기공), 장갑차(대지정공, 한화), 곡사포(기아현대) 등은 웨스트파푸아 지역의 분리 독립 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데 쓰이고 있다. 한국산 수류탄(한화)과 대전차무기 현궁(LIG넥스원)이 2018년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 연합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사우디로부터 현궁을 노획한 후티 반군은 이를 SNS에 자랑했다. 후티 반군 또한 이렇게 빼앗은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2019년 튀르키예군의 시리아 공격에는 한국산 포탄(풍산)이 사용되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이른바 살상무기만이 아니다. 한국의 이한열 열사, 김주열 열사처럼 튀르키예, 바레인, 스리랑카 등지에서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 사용이 중지된 최루탄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시민 수십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당시 국내 시민단체들은 최루탄 수출 중단 캠페인을 벌여 추가 수출을 막아냈다.

정확히 어떤 무기가 어디에서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유엔 무역 통계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2014년 가자지구를 폭격한 ‘50일 전쟁’ 이후 한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은 오히려 늘었다. 한국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에 탄약을 수출했다. 현 상황의 뿌리가 된 돈바스 전쟁이 일어난 2014년부터 침공 이전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에 무기와 탄약을 수출하기도 했다.

한국 무기산업의 또 다른 큰 문제는 비인도(非人道) 무기에 관한 것이다. 확산탄(집속탄)과 대인지뢰는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성과 분쟁 후에도 남아 지속적인 피해를 입히는 특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지되어 있다.

현재 한국의 확산탄 생산 기업은 풍산, LIG넥스원, 코리아디펜스인더스트리(KDI)가 있고, 대인지뢰 생산 기업은 SNT다이내믹스가 있다. 이들 기업은 확산탄과 대인지뢰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많은 해외 공적 기금과 투자 기관에 의해 투자 제한 대상으로 지정된 상태다.

죽음의 시장, 무기박람회

무기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기박람회다. 한국에서 열리는 무기박람회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국제치안산업대전(KPEX) 등이 있다. 여기서 육해공 군사무기와 경찰무기가 일반 시민들에게 ‘멋진’ 볼거리로 둔갑된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전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기박람회를 통해 세계에서 온 무기상인과 각국 군 관계자들은 서로 만나 수출 상담을 하고 실제 계약을 맺는다. 올해 ADEX는 1,900건 이상의 비즈니스 미팅을 유치했고, 총 294억 달러의 수주 상담과 60억 달러의 현장 계약 실적을 기록했다.

한화, LIG넥스원, 록히드 마틴, RTX 등 많은 ADEX 참가 기업이 금세기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라 불리는 예멘 내전에 깊이 개입된 사우디와 UAE에 무기를 수출한다. 라파엘, 엘빗 시스템즈 등의 이스라엘 무기 회사는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에서 사용되는 무기를 팔아 수익을 올린다. 이를 “전장에서 검증된” 제품이라 강조하고 마케팅을 하기도 한다.

구매자도 문제다. 무기박람회에는 각국 군대의 무기 획득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방부장관 및 군 수뇌부, 방위사업청장급 인사들이 ‘VIP’로 참여한다. DX KOREA 2022에는 37개 대표단이 ‘VIP’로 초청됐다. 이중 14개 대표단이 전쟁이나 무력 분쟁에 개입된 국가에서 왔고, 9개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국가에서 왔다.

남북 군비 경쟁의 문제

무기 수출은 차치하더라도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상황에서 평화를 지키려면 무기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윤석열 정부는 국방정책 기조로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고 있다. 상대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가 아닌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로 안보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9.11 테러와 최근의 이스라엘-가자지구 분쟁에서 보았듯이 압도적인 힘으로는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

한국의 국방비 지출액은 2022년 기준 464억 달러로 세계 9위다.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의 총 GDP보다도 훨씬 많은 금액을 국방비로 지출해왔다. 한국이 재래식 전력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으니 조선도 핵무기·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 개발에 몰두하는 안보 딜레마가 초래된다.

사드(THAAD)와 F-35 등 한국이 큰돈을 들여 사들이는 첨단 무기체계는 더 공격적인 대북 정책을 부추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많은 무기는 효과적인 억지력이 아니며, 갈등 심화의 원인이 된다. 군비 경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길은 선제적 위협감소 조치를 통한 상호 군축이다. 내가 먼저 선의의 본보기를 보일 때 상대의 선의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사진='전쟁없는 세상' 홈페이지
사진='전쟁없는 세상' 홈페이지

군사적 이분법은 평화를 위한 길이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가자지구 분쟁은 뜨거운 현안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싸고 국내외 시민단체나 진보정당들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다. 무기 지원을 찬성하는 측은 더 큰 악인 러시아가 이기게 둘 수는 없다고 한다. 러시아의 침공이 잘못된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민간인 학살 문제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전쟁의 포성을 멈추어 더 이상의 희생과 파괴를 막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더 많은 국가가 무기를 지원할수록 전쟁은 격화하거나 장기화되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남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즉각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휴전에 합의하여 진정성 있게 평화협상에 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의 오랜 맥락을 제거한 채 이번 분쟁을 표면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최근 발생한 폭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비대칭적이고 첨예한 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혹자는 폭력의 근본적 원인이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에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의 폭력을 비판하는 양비론적 태도가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을 지지한다고 해서 하마스의 폭력까지 용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중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한다는 군사적 이분법을 거부해야 한다. 즉각적인 휴전이 아닌 군사적 승리를 좇는 것의 귀결은 누구도 이길 수 없는 폭력의 악순환이다.

'전쟁없는세상' 아덱스 저항운동 퍼블릭데이
'전쟁없는세상' 아덱스 저항운동 퍼블릭데이

어느 편에도 서기를 거부한 전쟁거부자들

압도적인 힘에 맞서 군사적 저항은 유일한 수단이 아닐 뿐더러 효과적인 수단도 아니다. 전쟁이 한창인데 비폭력 저항이라니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각자의 위치에서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다. 보이콧, 투자철회, 경제제재의 앞 글자를 딴 BDS 운동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과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종식,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권 보장을 목표로 2005년 시작된 전 세계적 비폭력 캠페인이다.

한국의 경우 HD현대의 굴착기가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와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건설에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현대에 이스라엘로의 굴착기 수출 중단을 촉구함으로써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군사적 이분법을 거부한 사람들이 있다. 어느 한쪽 편에 서서 총을 들고 살인에 동참하기를 강요하는 엄청난 압력에도 이를 거부하는 전쟁거부자들이다. 전쟁거부의 형태는 다양하다. 누구는 공개적으로 병역을 거부해 감옥에 가고, 누구는 외국으로 도망쳐 난민 신청을 한다. 후자는 비겁한 병역기피자라는 비난도 듣지만 우리는 굳이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도 이들과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가자지구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전쟁거부자들을 지지하고 이들과 연대하자. 한국에도 전쟁을 피해 온 러시아 병역거부자 난민들이 있다. 전쟁을 떠받치는 징병제라는 거대한 기둥에 전쟁 거부라는 균열이 일어날 때, 국가의 전쟁 동력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다.

※ 위 칼럼은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웹진 《正道精進》에도 공동게재됩니다.

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