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개관한 고양시 높빛도서관...지역 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한다(사진=이로운넷)
올해 4월 개관한 고양시 높빛도서관...지역 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한다(사진=이로운넷)

'긴 글 주의' '세 줄 요약 좀' '맥락맹이냐' '난독증인 듯' 

최근 온라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다. '긴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의 경고 대상이 될 정도로 장문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걸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문맹률(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 비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글보다 사진과 동영상에 익숙해지면서 글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비단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심심한 사과' 논란이 남긴 것

지난해 한 카페가 "예약 과정 중 불편 끼쳐 드린 점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는 공지문을 올렸는데, 이를 '심심하다'로 오해한 일부 누리꾼들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하라"며 반발했다.

'금일(今日)' '사흘' 같은 단어를 모르는 사례까지 더해지며 '젊은 세대의 문해력 수준이 심각하다'는 이슈로 번졌다. 우리나라 실질 문맹률이 75%라는 보도도 이어졌는데, 이는 2001년 조사로 20년이 넘은 수치라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

오히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문해력은 젊을수록 높은 편이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2021년 발표한 '제3차 성인문해능력조사'에 따르면 문해력은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과 가구소득이 낮을수록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층은 한국전쟁과 빈곤 등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젊은 세대'인 18~29세 인구 중 문해력이 '중학생 이하'인 비율은 2014년 12.9%에 비해 2020년 4.7%로 감소했다.

◆한국 청소년, '사실과 의견 구분' 취약

다만 한국 청소년의 '비판적 읽기' 능력은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능력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 학생의 사실과 의견 식별률은 25.6%였는데, OECD 평균인 47%보다 매우 낮다.

한국 학생들은 사기성 전자우편(피싱 메일)을 식별하는 역량 평가에서도 최하위 집단에 속했다. 글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능력에서도 취약점을 보인 것이다.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의 뜻을 모를 수는 있다. 그러나 글의 맥락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일상생활, 교육, 업무, 더 나아가 사회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를 구분하지 못하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읽었다는 착각>의 저자 조병영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책에서 "문해력은 텍스트를 통해 세상을 읽고 쓰는 능력"이라며 "합리적 근거와 논리없이 편향된 글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글이 가진 편향성을 분석하려는 독자의 태도"라고 강조했다.

◆결국 해답은 '독서'…긴 글 읽고 이해하는 힘 길러야

2018년 OECD 학업성취도평가 발표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0년 이후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으로 단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SNS가 주로 극단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며, 이로 인해 긴 글에 집중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문해력 연구자인 아네 망엔 노르웨이 스타방에르대 교수는 '화면으로 정보를 본 사람들은 내용을 더 적게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긴 글을 읽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으로는 뻔하지만 '독서'를 제시했다.

망엔 교수는 "독서는 오랜 시간 한 가지에 집중하는 선형적 방식의 읽기를 훈련시킨다"며 "우리가 긴 글을 읽는 능력'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인지적으로 힘겨운 텍스트를 다루는 지구력 및 능력'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중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비율은 46.9%에 그쳤다.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 성인 절반을 넘는 셈이다.

경기연구원은 지난 3월 출간한 ''미디어 리터러시 제고 방안' 보고서에서 "디지털화가 심화될수록 현실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독서가 요구된다"며 "종이책 독서 같은 아날로그 형식을 적절히 복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