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 '파라다이스의 지형(Topographia paradise)'(부분), 1675.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 '파라다이스의 지형(Topographia paradise)'(부분), 1675.

커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다. 아프리카의 숲에서 시작한 이 작은 나무의 일대기는 아라비아반도 이슬람교도들의 일상을 장악하고, 삽시간에 전 유럽의 지식인들을 매혹시켰다. 곧이어 시작된 커피의 신대륙 정복 특히 브라질과 미국의 개척은 이 나무를 인류사적 전환으로 이끌었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에 관한 이야기는 지혜의 왕 솔로몬과 콘스탄티노플의 궁정과 런던의 커피 하우스와 브라질의 노예노동과 미국의 서부개척 전체를 아우르지 않을 수 없다. 이 한 그루의 나무를 서술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지리와 역사, 경제와 사회, 종교와 예술을 총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줄리아노 부지아르디니(Giuliano Bugiardini), '아담과 이브(Adam; Eve)'(부분), 1520년경,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줄리아노 부지아르디니(Giuliano Bugiardini), '아담과 이브(Adam; Eve)'(부분), 1520년경,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길고 긴 커피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태초의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우선 창세기의 구절들을 더듬어보자. 물론 창세기에는 커피가 단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처럼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 나무라면 장대한 창세기적 해석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사실 수천 년간 수많은 종교학자의 주석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의 구절에 숨어있는 풍부한 은유와 지혜는 아직도 대부분 가려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득한 천지창조로부터 전해 내려온 간략한 문장들의 생략된 곳을 자유롭게 더듬으며, 신의 의지와 인류의 욕망이 스쳐 지나간 빈터를 밭갈이할 것이다. 그것은 다소 허황되지만 아마도 이후 펼쳐질 커피나무의 역사에 대한 예언적 찬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아담과 이브의 타락(The Downfall of Adam and Eve)', 1508-1512.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아담과 이브의 타락(The Downfall of Adam and Eve)', 1508-1512.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에덴동산은 지상에 펼쳐진 ‘파라다이스(peri = around; dheigh = build)’ 즉 ‘벽으로 둘러진 정원’이었다. 그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상식적으로 서로 다른 두 나무가 같은 곳에 함께 자리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나무가 정중앙에 위치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다소 옆으로 비껴 자리했다는 해석이 전한다. 잘 알려진 바처럼 아담과 이브는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선악과를 따먹게 된다. 선악과는 단순히 선과 악만을 언급한다기보다는, 선으로부터 악에 이르기까지 즉 만물 전체를 아우르는 지적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는 인간이 악마에 홀린 듯 일순간 대단한 지적 능력을 얻게 됨을 의미하며, 그들의 거침없는 지적 탐욕은 필연적으로 파라다이스의 정중앙에 자리한 최고 권위의 생명나무까지 넘보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뿐 아니라 곧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하게 될까 염려한 신은 이 둘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불붙은 칼을 두어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다.

프란츠 외젠 쾰러(Franz Eugen Köhler), '타마린드(Tamarindus indica)', ' 쾰러의 약용식물(Köhler's Medizinal-Pflanzen)', 권 2, 1890, pl. 131.
프란츠 외젠 쾰러(Franz Eugen Köhler), '타마린드(Tamarindus indica)', ' 쾰러의 약용식물(Köhler's Medizinal-Pflanzen)', 권 2, 1890, pl. 131.

 

수천 년간 되뇌어진 이 유명한 창세기의 기술에는 선명한 갈등구조가 자리한다. 이 갈등은 벽으로 둘러진 에덴의 안과 밖을 무대로 하여, 우주적 생명을 수호하는 창조주 신의 절대 지성과, 선악과에 힘입은 피조물 인간의 학습능력이 서로 대립하는 구조이다. 여기서 타락과 추방이라는 구태의연한 종교적 수사를 걷어내고, 인문주의적 입장 즉 이브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자. 우선 창세기에 등장하는 뱀의 얼굴이 종종 이브의 얼굴과 흡사하게 묘사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그간 종교학자들에 의해 뱀이 이브를 안심시키기 위한 간교한 시각적 속임수로 해석되어 왔다. 그렇지만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면, 이 모든 유혹과 타락이 단지 뱀이라는 존재를 빌어 인격화되었을 뿐 본질적으로 이브의 자유의지였음을 보여 준다. 

창세기 속 뱀의 음성을 이브의 독백 혹은 내적 갈등으로 변환하고, 이를 시간적 역순으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2. “너희(이브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3. “너희가(이브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다시 해석하면 이는 곧 1. 어떤 특정한 나무의 과일을 먹은 인간이 신비한 신체적 각성을 얻어 세상을 밝게 보고(voir) 2. 이로써 선악을 아우르는 만물의 이치를 두루 알고(savoir) 3. 이로써 영생에 대한 소유를(avoir) 욕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인간 지성은 생명의 본질을 다루는 수준에 결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나, 에덴으로부터의 추방되었기 때문이라는 훌륭한 변명 정도는 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창세기의 본질은 어느 먼 옛날 인간이 어떤 과일 하나를 입에 넣음으로써 시작된 신경생리학적 각성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과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옆에 위치한 시스티나 경당(Sistine Chapel)은 교황을 선출하는 곳이자, 미켈란젤로 필생의 역작들이 자리한 르네상스 인문주의 예술의 성소이기도 하다. 이 시스티나 경당 천정화에 묘사된 선악과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사과가 아니라 무화과로 묘사되어 있다. 사실 선악과의 형상에 대한 보편적이고 합의된 전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과, 무화과, 포도 혹은 석류라는 일부의 주장을 비롯하여 심지어 바나나, 밀, 버섯이라는 견해도 전한다. 로마 가톨릭 교황도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천재 예술가도 모른다면 이 과일의 진실된 정체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다행스럽게도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에녹서(Book of Enoch)>>에는 선악과의 형상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묘사가 전한다. 이에 따르면 타마린드(Tamarind)와 비슷한 형상에, 포도와 같은 열매가 열리고, 향이 널리 퍼진다고 묘사되어 있다. 혹시 이것은 에티오피아 원산으로서 마치 타마린드 나무처럼 작은 잎들이 좌우 대칭으로 달리고, 작은 포도알 같은 열매들이 뭉쳐서 열리며, 짙은 재스민 향의 꽃이 피는 나무, 즉 커피(Coffea arabica)에 대한 묘사가 아닐까? 커피 문화사 저술가 스튜어트 리 앨런(Stewart Lee Allen)과 안토니 와일드(Antony Wild)의 주장에서처럼 선악과는 진정 커피나무 열매였던 것은 아닐까?

불붙은 칼에 의해 다치기 전에 우리의 방종한 창세기 재해석은 이쯤에서 멈추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더듬거리고 교만한 해석과는 무관하게, 신의 불가지한 정원은 두터운 벽 너머 저편에 태고의 모습 그대로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다. 다만 인류 지성에게 허락된 고인류학 혹은 식물학 지식은 파편적이나마 한때 에티오피아에서 펼쳐진 일대의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카파(Kaffa) 지역에서 커피가 기원하였고, 또한 에티오피아에서 현생 인류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브 아니 ‘루시(Lucy: Australopithecus afarensis)’의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수많은 초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카파 동산에서 벗어나 거친 땅을 개척해나가는 루시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언제까지 다른 유인원처럼 아름다운 숲에서 살 수만은 없는 일. 한때 그저 헐벗은 천둥벌거숭이였던 루시가 생육하고 번창할 그녀의 첫 왕국 에티오피아를 향해 영웅적으로 걸어나간다. 거친 세상과 맞설 삶의 지혜가 필요하거나 혹여 지치고 힘들 때, 우리 루시의 곁에 한 줌의 향기로운 커피가 언제나 함께 했으리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프란츠 외젠 쾰러, '아라비카 커피(Coffea arabica)', '쾰러의 약용식물', 권 2, 1890, pl. 106.
프란츠 외젠 쾰러, '아라비카 커피(Coffea arabica)', '쾰러의 약용식물', 권 2, 1890, p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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