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교보문고 / 지은이 팀 잭슨/옮긴이 우석영 & 장석준
사진=교보문고 / 지은이 팀 잭슨/옮긴이 우석영 & 장석준

2019년 말부터 3년이 넘도록 80억 세계 인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코로나 팬데믹은 이제 서서히 잦아드는 느낌이다. 물론 아직 일상으로의 완전한 회복을 점치기는 이르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경계심은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조류 독감에서부터 사스, 메르스를 거쳐 코로나19까지 동물을 중간 숙주로 하는 인수공통 감염병의 주된 경로와 원인은 결국 인간 활동의 결과라는 진단이었다. 

무한성장을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이 비인간 자연 즉 동물들의 서식지를 무분별하게 파괴한 결과 오갈 곳이 없어진 동물들과 인간의 접촉면이 확대되면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감염병이 더 자주 출몰하고, 교통 수단의 발달과 세계화로 인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진단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고, 사람들의 일상이 통제되면서 제반 경제 활동이 위축되자 외신에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뉴스들이 등장했다. 야생 염소들이 웨일스의 홀란두 마을로 내려오고, 애리조나에서는 북미산 멧돼지들이 집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스모그로 시달리던 베이징에 푸른 하늘이 나타나고, 히말라야 산맥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서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산맥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성장이 멈춘 후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를 우리가 언뜻 본 것은 아닐까? 성장이 멈춰도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팬데믹 이전, 사람들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이 공존하는 지구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결코 낙관하지 못했다. 지금도 역시 전망은 비관적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인류사에 등장한 이래 전 지구적으로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된 자본주의는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이윤을 추구하며, 성장의 길로 내달려왔다. 46억 년을 거치며 생성된 화석 연료를 300년도 못 되는 시간 동안 태워가며 만들어진 현재의 문명은 80억으로 늘어난 인류는 물론 비인간 자연에게도 6차 대절멸의 위기를 결과하고 있다.

그런데 일상이 통제되고, 생산이 멈추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인류와 비인간 자연은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이후의 시대를 맞이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지구공동체의 생태계 파괴, 극심한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인류공동체에게 성장 이후의 세계를 향한 대전환과 새로운 번영을 위한 사유의 필요를 역설한다. 

저자인 팀 잭슨(Tim Jackson)은 영국 서리 대학교(University of Surrey)의 지속 가능한 발전 교수이자 ‘지속 가능한 번영 연구 센터(CUSP)’ 센터장으로서 30년이 넘도록 유한한 지구 안에서의 인간의 번영과 도덕적‧경제적‧사회적 면모를 연구해왔다. 그의 대표 저서인 성장 없는 번영(2009/2017)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올해의 책, ‘언허드(UnHerd)’ 선정 10년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전 세계에서 17개 언어로 출간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이던 2021년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포스트 성장시대, 자본주의 이후의 삶. Post Growth: Life after Capitalism이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자본가의 무한한 이윤 추구로 황폐해진 지구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삶을 꿈 꾼다. 당연히 자본주의가 가져온 온갖 폐해, 특히 생태계 파괴와 불평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1970년에서 2002년 사이, 아프리카 국가들은 5,400억 달러를 빌린 후 5,500억 달러를 갚았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3,000억 달러의 빚을 대출 기관들에게 지고 있다. 200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케냐의 왕가리는 이에 분노해 1998년 ‘주빌리(Jubilee) 2000 아프리카’ 캠페인의 공동의장 직을 맡아 약 1,000억 달러의 부채를 탕감한다. 그러나 이것은 승리가 아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빠져나오는 채무 상환, 본국으로의 이익 송금, 자본 이탈 등으로 인한 돈의 양은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돈의 양보다 2.5배 더 많다. “부자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들이 부자나라들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이런 사태는 15세기 후반부터 줄곧 지속돼왔다.”(인류학자 제이슨 히켈, Jason Hickel).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훨씬 이전부터 은행들은 비-금융권 기업들에 대한 대출보다 서로에 대한 대출을 증가시켰다. 온갖 종류의 금융파생상품, 헤지펀드, 담보채무, 신용파산스왑, 서브프라임모기지, 서브프라임보험, 선물시장…… 실물 경제에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금융권은 금융권에 자금을 조달하느라 바빴다. 이 게임에 평가기관들이 공모했다. 규제 기관들은 위법행위를 눈감아주었다. 이 거품은 터져야 했고, 2008년 9월 터져야 할 것이 터졌을 때  세계 경제를 붕괴로부터 구한 것은 오직 대중의 지갑, 즉 납세자들이 낸 세금이었다. 그 구조 방식은 부자들은 구제하고, 빈자들에게는 긴축을 강요했다. 이윤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의 가장 본질적 모습의 하나였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생태계 파괴는 엔트로피, 열역학법칙으로 설명한다. 질서를 창조하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는 사용 과정에서 점점 더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우주는 전보다 조금 더 무질서해진다. 절대로 이길 수 없고, 심지어 비길 수도 없다. 결정적으로 게임에서 나갈 수도 없다. 매년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다보스로 자가용 제트비행기를 타고 몰려드는 자본가와 각국의 정상들, 그곳에서 리프트 대신 헬리콥터를 이용해 산정상으로 올라가 내려오는 헬리스키를 이용하는 슈퍼 리치들, 그들이 이야기하는 녹색성장 역시 성장 이데올로기의 하나에 불과하며, 허위와 기만의 전형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자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역시 암살당한 로버트 F. 케네디가 미국 자본주의의 무한 성장 추구와 부도덕한 전쟁에 반대하는 선거 유세 일화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다분히 시적으로도 읽혀진다. 그레타 툰베리, 로자 룩셈부르크, 엘렌 맥아더, 존 스튜어트 밀, 아리스토텔레스, 루트비히 볼츠만, 린 마굴리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한나 아렌트, 윌리엄 모리스, 왕가리 마타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틱낫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존 로크, 에밀리 디킨슨의 저작과 어록이 다양하게 인용된다. 가히 동서고금, 철학‧정치학‧물리학‧생물학‧문학은 물론 세대와 지역, 종교, 좌우 진영을 넘나든다. 

저자는 자본주의 이후를 사유하는 방법으로 린 마물리스에게서 경쟁이 아닌 공생과 협동의 철학을, 틱낫한을 통해서는 연대와 비폭력 불복종을 가져온다. 베트남 승려 틱낫한의 불교 계율은 울림을 준다. “고통과의 접촉을 피하지 말라. 고통 앞에서 눈 감지 말라.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있을 방도를 찾아라. 그런 방법으로 당신과 남들을 깨워 세상의 고통이라는 현실을 보게 하라.”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경제 성장은 필패다. 이 진리를 알아가는 길 위에, 개인으로서, 또 사회로서의 우리를 다시 세우자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