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계의 독립 의지를 담은 태극기가 남원 선원사 불화에서 발견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선원사 주지 운문스님은 최근 명부전에서 기도하던 중 지장시왕도 괘불탱화에서 원형 형태의 태극기 그림을 찾았다.
운문스님은 21일 서울 중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태극기를 발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지난해 11월 초 아침 명부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지장시왕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제6 변성대왕 관모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다"며 "진응스님이 (이 불화를) 증명하고 주도해서 그렸는데 거기에 태극기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이 불화에 그려진 태극기에 대해 "화승이 아닌 독립운동을 하셨던 진응스님이 이를 주도하고 증명했다는 것을 봤을 때 우리 선조인 선배 스님들 특히 진응스님같이 훌륭한 스님들이 일제에 항거하고 우리 민족의 치욕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 불화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게 그렸지만 태극 문양만이 아니라 내 궤까지 분명히 그려진 태극기가 있다. 당시 진응스님이 대놓고 나서지는 못했어도 독립 의지를 갖고 태극기를 불화에 그려 넣었다는 것은 독립운동사의 아주 중요한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된 태극기는 지옥을 관장하는 10대왕 가운데 제6대왕 변성대왕 관모에 가로 8.5㎝×세로3㎝로 어른 손바닥만 하게 그려져 있다. 태극 지름은 2.2cm이다.
태극의 양은 홍색, 음은 뇌녹색으로 채색됐다. 양 태극을 백색이 둘러싸고, 위쪽에 건괘와 리괘, 아래쪽에 곤괘와 감괘를 배치했다.
지장시왕도 하단의 화기에 태극기 제작 시기는 1917년 11월5일에서 17일이다. 당시 주지 기선스님이 당대 최고 학승이자 화엄사 주지 진응스님에게 괘불탱화 제작 전 과정을 증명하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다.
운문스님은 "특히 1917년이라면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자행되던 시기에 그려졌다고 생각하니 더욱 보통의 의미가 아니라 생각됐다"며 "이 태극기의 의미를 바르게 살펴보고, 또 우리 스님들의 대한독립의 의지와 투철한 애국심을 널리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
태극기 전문가 송명호 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전문위원 전문위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불화 중에 태극기가 그려진 것은 처음"이라며 "'항일지장시왕도'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근대문화재로서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송 전 전문위원은 "태극기가 1910년대 후 사용된 독립운동시대 태극기 문양과 같다"며 "태극기가 오늘날 형태로 정착되기 전 단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왕도 아래에 당시 호남불교를 대표하는 진응 스님이 제작과정을 증명한 기록이 남아있는 점도 독립운동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평했다. .
진응스님은 만해 한용운과 독립운동을 벌인 사실이 독립운동사 자료에 확인되고 있다. 화엄사를 본사로 승격시키고 일본 조동종에 맞서 임제종을 설립해 우리 불교를 수호하는 데도 앞장섰다.
송 전 전문위원은 태극기가 그려진 시점에 대해서는 "1910년대 탱화 제작 등 모든 예술 행위가 일제의 검열을 받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려진 것은 아니며, 검열 후 곧바로 눈에 띄지 않도록 작게 제작했다"고 분석했다.
선원사는 송 전 전문위원의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문화재 당국에 태극기 발견을 신고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국가등록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