엮은이 비자이 프라샤드 지은이 데보라 베네치알레, 존 로스, 존 벨라미 포스터 옮긴이 심태은, 이재오, 황정은
엮은이 비자이 프라샤드 지은이 데보라 베네치알레, 존 로스, 존 벨라미 포스터 옮긴이 심태은, 이재오, 황정은

현시기 지구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 요소는 기후 붕괴로 대변되는 생명의 위기, 6차 종의 대절멸이다. 무한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의 탐욕이 인간 활동으로 외화된 결과 인류는 물론 비인간 자연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구 온난화를 멈추기 위해 생태적 삶으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지만 그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절망적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절멸 시나리오가 점점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다름 아닌 신냉전의 추구와 강대국 사이의 핵전쟁 가능성이 그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계기로 단순한 위협이 아닌 현실적 가능성으로 대두된 핵전쟁과 그로 인한 핵겨울의 도래에 따른 인류의 절멸이다. 물론 핵전쟁과 핵겨울을 거치고도 살아남는 비인간 자연과 생명체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도 출신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마르크스주의자인 비자이 프라샤드(Vijay Prashad)가 데보라 베네치알레(Deborah Veneziale, 이탈리아 출신 언론인), 존 로스(John Ross, 영국 출신 중국 런민대학교 중앙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 존 벨라미 포스터(미국 출신 「Monthly Review」 편집장)로부터 글을 받아 엮은 이 책은 150쪽에 불과한 핸드북이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무겁다.

‘워싱턴이 벌이는 신냉전과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라는 부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경제적으로 기울어가는 미합중국의 정치가와 자본가, 엘리트들이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다시금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핵전쟁 가능성을 기후 붕괴와 함께 제시한다.  

저자들은 냉전 시기는 물론이고 소련이 붕괴하고 나서 단극체제로 등장한 이후에도 미국이 자행해온 제3세계에서의 전쟁, 한국‧베트남‧이라크‧리비아‧아프카니스탄에서 민중의 존재는 안중에 없었다고 단언한다. 나아가 전쟁이 초래하는 혼란과 학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미국 노동자의 단기적 고통 따위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는 관점이 지배적임을 폭로한다(short-term pain for long-term gain).

1950년 냉전 초기 미국은 세계 GDP의 27.3%를 차지했다. 반면 당시 최대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세계 GDP의 9.6%였다. 미국의 경제 규모는 소련의 3배에 달했고, 1975년이 되어서도 그 규모는 미국 GDP의 44.4%에 불과했다. ‘구냉전’ 내내 미국은 소련에 비해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를 점했다.

통계마다 차이가 있지만 현재 미국의 세계 GDP 점유율은 15~25% 수준이다. 시장환율로 계산하더라도 중국의 GDP는 이미 미국의 74%로 과거 소련과는 비교가 안 된다. 구매력평가지수(PPP, 각국 물가 차이 반영)로 계산하면 미국은 2021년 세계 경제의 16%만을 차지했다. 세계 경제의 84%가 미국의 손에서 벗어나 있으며, 같은 지표로 보면 중국 경제는 이미 미국보다 18%나 더 크다. 2019년에 중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28.7%를 차지한 반면 미국은 16.8%에 머물렀다. 이는 중국의 세계 제조업 생산 점유율이 미국보다 70%나 높다는 의미다. 

미국은 무역전쟁에서도 중국에 참패했다. 2018년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상품 교역국이었으나 교역량은 미국보다 10% 높았다. 2021년이 되자 중국의 상품 교역 규모는 미국보다 31%나 높아졌다. 수출은 더 심하다. 2018년 중국의 수출은 미국보다 58% 더 높았고, 2021년에는 미국보다 91%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미국이 경제적 우세를 잃고 있지만 그들이 우위를 상실하는 경제적 프로세스가 평화롭게 진행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다. 미국은 이를 결코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게 경제적인 패배를 겪고 있는 사실을 군사력과 군사‧정치적 수단을 사용해서 무마하려고 한다. 역설적으로 현재의 세계적 위험은 미국이 아직 군사적 우위를 잃지 않았다는 데서 기인한다. 

참고로 미국의 국방비는 세계 2위에서 10위 국가들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 크다. 2021년 기준 미국은 국방비가 7,405억 달러로, 2위 중국 1,782억달러 ~ 10위 호주 427억 달러를 모두 합한 6,038억 달러보다 더 많다. 대한민국은 480억 달러로 8위에 해당한다(GFP, Global Firepower 필자).

미국은 이러한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독일과 일본을 예속시키고(대한민국 역시 그 그룹에 들어가려고 안달이 나있다), 이들과 연대해 중국과 러시아를 포위하며, 서로를 분리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발발의 원인과 책임을 두고 논란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러시아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나 소련에 속했던 11개 나라를 나토에 가입시켰다. 그리고 바로 러시아의 턱 밑인 우크라이나에서 2014년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권을 유로마이단 쿠테타를 통해 전복시켰으며, 백악관이 선택한 인물이 그 지위를 물려받았다.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의 목표는 근본적 정권교체를 통해 러시아가 자국의 국익을 방어하지 않고 미국에 종속되어 중국을 적대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편한 진실이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과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핵겨울(Nuclear Winter), 즉 절멸을 감수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확전우위(escalation domination)’ 개념을 수립해서 집행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핵무기를 파괴하고 이들 국가를 완전히 타도하여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대군사전략(counterforce)이다.

문제는 미국의 이러한 의도와 전략을 꺾을 수 있는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도로 보수화되어가는 미국 내부는 물론이고, 세계적 차원에서도 반전과 평화, 군축을 이야기 하는 세력이 없지는 않지만 실천력이 과거와 같지 않다.

새해들어서도 계속되는 남과 북의 긴장 고조 행위와 훈련을 빙자한 군사 행동들은 한(조선)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가능성으로만 머물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생태계 파괴와 핵전쟁 발발로 인한 절멸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어떤 답을 준비 중인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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