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북부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다. 2019년 기준 약 90만 명 인구의 샌프란시스코는 그 몇십 배에 달하는 약 2,62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였으며, 이를 통해 벌어들인 수입은 무려 약 96억 달러(한화 13조원 이상)에 달한다. 또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예술가 인구가 많은 곳으로서(2011-15년 기준, 카운티 기준, 1위 뉴욕 맨해튼), 미국의 예술 문화 활동의 대표적인 중심지이다.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어떻게 하면 예술과 관광을 지역 경제와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시도가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다. 특히 공공벽화는 지역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 단합과 문화적 향유, 나아가 관광객 유치를 통한 경제적 이득이라는 관점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실제 벽화를 중심으로, 미주 지역에서 공공벽화가 지니는 복합적 양상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코이트 타워 공공벽화
코이트 타워 공공벽화

일자리 창출&예술 인프라 확대

1930년대 불어닥친 대공황은 미국 사회를 절망적인 경제 위기에 빠트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연방 정부는 수천 명의 화가를 고용하여 약 2500건 이상의 벽화를 제작하는 공공사업을 시행하였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전망대 코이트 타워(Coit Tower) 에서도 당시 공공미술사업(Public Works of Art Project)의 일환으로 25명의 지역 화가가 협업하여 벽화를 남겼다.

1934년 시작된 이 벽화 프로젝트는 이 지역의 풍광과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공동체적 유대와 불황 극복 의지를 그려내었다. 어려운 시기 샌프란시스코의 화가들은 이를 통해 일거리를 얻었고, 시민들은 예술적 위안과 사회적 연대감을 고취할 수 있었다.

외국인 등 폭넓은 예술지원

이 공공미술사업은 폭넓은 범위에서 예술가들의 생계를 지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예로,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56)의 경우 당시 그저 이름 없는 화가에 불과했으나 이 사업을 통해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 미국 화가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97)의 경우 당시 외국인이었음에도 제한적이나마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지원금은 배관공 수입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미미한 금액이었지만, 미국 전역의 화가들은 이를 통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코이트 타워 공공벽화
코이트 타워 공공벽화

무명화가를 대가로 키워낸 벽화사업

이 공공예술 사업은 후대에 대단히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당시만 해도 대도시의 엘리트 중심으로 진행되던 예술 감상 활동이 미국 전 지역의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대되면서, 이후 미국 문화예술의 저변을 크게 넓힐 수 있었다. 특히 코이트 타워를 비롯하여 미국 곳곳에 자리한 대공황 시기 공공벽화들은 현재 각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괄목할 만한 성과는 이 사업을 통해 키워낸 화가들의 예술적 성공이다. 앞서 언급한 잭슨 폴록 그림 한 점의 최고가는 현재 2억 달러(한화 2855억원), 윌렘 드 쿠닝은 3억 달러(한화 4283억원)로, 세계 최고가 그림 5위와 2위에 각각 랭킹되어 있다. 정부 지원금으로 겨우 연명하던 무명 화가들이 오늘날 세계적 대가가 되어 미국 현대 미술계를 빛내고 있는 것이다.

벽화 관광이 지역경제 살리다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일부 도심 지역의 개발이 정체되거나 낙후되는 경향은 전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벽화예술 활동이 위축된 지역사회의 경제적 가치를 끌어올리고, 소외된 지역주민의 정치 사회적 목소리를 고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캐나다에 위치한 인구 3000여 명의 작은 도시 슈메이너스(Chemainus)의 벽화예술 활동이다. 원래 제재소가 많던 이 지역은 해당 산업이 철수하면서 한때 큰 위기를 맞았으나, 53개소 이상의 벽화를 통해 연간 40만 명 관광객을 유입함으로써 경제적 부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유니온 스퀘어 지역의 상가 건물 벽화 © Max Ehrman
유니온 스퀘어 지역의 상가 건물 벽화 © Max Ehrman

‘어쩌다 벽화’가 관광객 유인

1968년경 미국 서부 지역에서 시작된 치카노(Chicano) 벽화 운동은 낙후된 지역 관광자원화의 주요 성공 사례이다. 이 운동은 차별받던 멕시칸계 미국인들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사회경제적으로는 물론 문화 예술적으로도 소외되었던 이들은 충분한 예술 교육이나 물질적 기반 없이 그들의 벽화 활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낙후된 자신들의 거주 지역 골목길에 싸구려 페인트로 그들의 이상과 울분을 그리면서,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의 미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 결과 매우 독특한 분위기의 벽화 골목이 각지에 등장하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슬럼가, 예술골목으로 변신 성공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인 히스패닉 거주 지역인 미션 디스트릭트(Mission District)는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슬럼화가 지속되고 있다. 다행히도 이 지역은 1970년대 이래 치카노 벽화 운동의 중심지로서 골목 곳곳에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예술적 활력과 관광객 유치에 일조하고 있다. 이 중 클라리온 앨리(Clarion Alley)의 경우 지역 화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벽화가 그려지면서, 지난 30여 년간 무려 900점이 넘는 작품이 소개되었다. 이를 통해 유입되는 관광객만도 연간 20만 명에 달해 지역사회의 사회문화적 활력은 물론 경제적 부흥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유니온 스퀘어 지역의 상가 건물 벽화 © Max Ehrman
유니온 스퀘어 지역의 상가 건물 벽화 © Max Ehrman

코로나 위기도 벽화로 활력 찾는 중

벽화를 통한 지역 사회의 부흥은 비단 낙후 지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미국을 강타한 코로나 사태는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주요 관광지역을 황폐화시켰다. 다운타운의 정중앙에 자리한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 지역은 백화점과 호텔이 즐비하여 미션 디스트릭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상업적 번영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 역시 코로나 시기를 맞아 일시적이나마 공동화와 슬럼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상점들이 외벽에 합판을 가설하고 폐점 혹은 임시 폐쇄하면서 주요 거리는 마치 유령도시와도 같은 을씨년스러운 경관이 펼쳐졌다. 이에 지역사회의 예술가들은 이 합판 외벽에 다양한 색채의 벽화를 그림으로써, 경제문화적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엄브렐라 앨리 © Umbrella Alley San Francisco
엄브렐라 앨리 © Umbrella Alley San Francisco

새로운 벽화 예술의 등장

오늘날 온라인 미술과 소셜 미디어가 급성장하면서 예술과 관광의 기본 패러다임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이에 관광과 테크놀로지의 세계적 중심지로서 샌프란시스코는 벽화예술의 잠재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엄브렐라 앨리(Umbrella Alley)의 새로운 벽화 예술 전략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기존 벽화예술과는 차별적으로, 엄브렐라 앨리는 관광 산업 부흥과 상업적 이익 창출에 집중한 사례이다. 우선 이 곳은 샌프란시스코 관광객과 거주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해안 부둣가[Fisherman’s Wharf]와 광장[Ghirardelli Square]을 잇는 위치에 자리한다. 벽화 자체가 관광객을 유인하기보다는 기존 관광명소의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한 예이다.

교통입지 또한 탁월하여,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 종점과 여러 자전거 대여 시설을 바로 이웃하고 있으며, 사실 이 벽화 자체가 세그웨이(1인용 스쿠터) 대여 및 투어 회사[San Francisco Electric Tour Company] 부지의 내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 구역 자체를 관광하고자 하거나 혹은 여타 지역을 관광하기 위한 투어의 시작점에 벽화골목이 자리한 것이다.

엄브렐라 앨리 © Umbrella Alley San Francisco
엄브렐라 앨리 © Umbrella Alley San Francisco

하이브리드 소통 벽화골목

엄브렐라 앨리에서는 벽이라고 하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벽화 골목에는 우산 혹은 풍선 장식을 더해져 평면 벽을 넘어선 입체적 공간 체험이 가능하다. 버스나 나비 모양의 벽화의 경우 관람객이 직접 벽화의 일부분이 되는 인터랙티브 경험도 제공하여 작가와 관객의 예술적 경계도 허물고 있다. 밀레니엄 세대를 겨냥한 온라인으로의 적극적 확장도 시도되었다.

우선 벽화 골목 자체가 구글에 등재되어 있음은 물론, 일부 벽화는 고유의 작품명(Greetings from San Francisco Mural)으로도 개별 검색 가능하다. 작품 전체가 해당 벽화 골목 웹사이트(umbrellaalley.com)에 아카이브되어 있으며, 제작과정을 담은 유튜브 비디오와 작가들의 인스타그램 계정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오프라인과 온라인 장치들은 방문자들에게 작가 및 작품과의 전방위적인 소통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상업관광형 벽화예술로 발달

벽화골목이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에 대한 고민은 이 엄브렐라 앨리에서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엄브렐라 앨리 골목 입구에는 현금인출기가 마련되어 있으며, QR코드를 통해 관광지 투어 웹사이트로 관광객을 인도하고 있다. 또한 공식 입장료는 없으나 모바일 송금앱(Venmo, CashApp)을 통해 방문객 1인당 5달러의 작가 지원용 기부를 안내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전통적인 방식의 미술 판매가 사실상 불가능한 벽화예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벽화 디자인을 응용한 티셔츠 등의 상품을 개발하여 온라인 혹은 현장의 자동판매기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이처럼 예술과 관광을 연계한 기발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새 시대 샌프란시스코의 풍광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 놓을지 앞으로 기대해 보아도 좋을 듯하다.

엄브렐라 앨리 © Umbrella Alley San Francisco
엄브렐라 앨리 © Umbrella Alley San Francisco
엄브렐라 앨리 주변 모습
엄브렐라 앨리 주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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