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부모님과 할머니와 같이 풍물을 연습하는 모습 / 제공=최수영 활동가
아이들이 부모님과 할머니와 같이 풍물을 연습하는 모습 / 제공=최수영 활동가

눈 내리는 날, 마을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처럼 늦은 시간 학원을 마치고 퇴근하는 부모님을 만나 집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냥 아이들끼리 마을 들판을, 농로를, 마을길을 돌아다닐 뿐이었죠.

나중에 알았습니다. 부모님이 학원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아 아이들은 마을에서 들판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요. 저는 그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렇구나! 아이들이 형편이 좋지 않아서 학원에 다니지 못하고 그냥 마을에서 돌아다니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구나!’

나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렇게 내 마음에 안타까움이 가득할 때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웃이 서로 만나 함께 문제를 해결 한다”, “마을공동체를 통해 마을 문제들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저에게는 꿈같지만 하고 싶은 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2019년 첫 마을공동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아이들의 손에 드럼스틱을 쥐어 주던 날, 무엇 하나 변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기타와 드럼을 배우며 밴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고시마을은 해마다 8월 15일 광복절이 되면 동네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함께 식사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때 마을주민의 동의를 얻어 2020년 제1회 고시마을축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어른들의 바쁜 일들이 끝난 11월 셋째 주 토요일, 마을회관에서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열심히 연습한 풍물놀이, 기타, 드럼 연주, 인형극 공연 3가지를 메인으로 하여 축제를 성황리에 진행하였습니다.

마을회관에서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 중장년, 어르신들이 함께 풍물연습을 하던 어느 저녁, 술에 취한 동네 청년이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다고 버럭 화를 내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그 청년의 어머니를 찾아가서 “풍물연습 때문에 좀 시끄럽지요?” 하면서 어머니 생각이 어떠신지 여쭈어 보니 “나는 아무 상관없소.”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어머니와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니 고시마을로 시집와서 엄한 시집살이를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의 삶을 주제로 ‘혜정댁’이라는 ‘할머니그림책’을 만들었고, 마을축제에서 그림책을 읽어드렸습니다. 마을 할머니들께서는 자신의 삶과 닮아 있는 “혜정댁”이야기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이고~, 그래서~, 하시며 할머니그림책을 참 좋아 하셨습니다.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지고 마을주민들과 공감하는 계기가 된 이후로 청년은 마을회관에서 연습하는 것에 대해 시끄럽다고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이 밖에도 마을 정자에서 풍물 연습 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어르신의 불만과 항의, 마을 앞 굴다리에 터널벽화를 그리며 부득이 불편을 야기했던 것에 대한 항의 등 주민들의 이해와 양해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소통과 배려 등은 공동체 활동에 있어서 반드시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사안들이기에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지난 중복 때는 공동체 회원들이 정성으로 준비한 삼계탕을 마을 어르신들께 대접해드렸습니다. 전에는 ‘마을공동체 회원들만 참여하는 것이냐’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마을주민의 대부분이 나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시고 연신 ‘고맙다, 고생한다’하십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 마을공동체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함평군 대동면 기초생활거점육성사업 지역역량강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대동면 축제로 고시마을축제를 열게 되었습니다. 기타, 드럼 학원 한번 다니지 않은 아이들이 4년을 연습해서 동네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군수님, 교육장님, 많은 어르신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놀랍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동네 어르신들은 ‘고시마을이 우리 마을보다 못살고 작은 마을인데 어찌 이런 걸 다 한다냐?’ 하고 대단해 하셨습니다.

나에게 마을 공동체란 마을이 나아갈 길이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살아갈 미래입니다. 그동안 마을공동체 활동지원 사업을 하면서 고시마을은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어떤 마을사업이라도 뜻을 모아 함께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 젊은세대에 물려줄 마을자산을 보존하고 삶의 터전인 고시마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마을종합계획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자손만대 번창하는 꿈이 넘쳐나는 고시마을을 기대해봅니다.

최수영 함평군 마을활동가
최수영 함평군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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