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잘 사용하지 않는 국가 소유 부동산을 향후 5년간 16조원 이상 규모로 매각하기로 했다. 20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공공기관 개혁 방침의 연장선이다. 명분은 좋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매각 대신 부동산의 특성을 살려 좀더 적극적인 활용방안을 고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근 집값이 하락하면서 집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이른바 ‘깡통전세’ 사례가 곳곳에서 보인다. 그에 따라 전세사기에 대한 경고등도 함께 켜졌고, 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세입자가 보증금 보증보험을 들어도, 확정신고를 제때 해도 임대인이 편법을 사용해 전세금을 떼어먹은 사건들이 속속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이른바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이 크게 번졌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전세사기 일벌백계’를 지시하고 경찰청은 전담수사본부까지 설치했다. 각종 SNS에도 ‘전세사기 안 당하는 팁’이라는 주제의 콘텐츠가 매일같이 올라온다.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시간 맞춰 잔금을 치르고 이사하는 것도 일인데, 내가 맡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까지 걱정해야 한다. 보증금이 거의 전 재산 수준인데다가, 안 그래도 먹고 사느라 바쁜 서민들의 부담을 한층 더 늘리는 일이다. 한 발짝 떨어져 보면 금융기관도 아닌 개인에게 억 단위 금액을 맡기는 제도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집 계약을 할 때 낯설어하는 제도로도 꼽힌다.

보증금 떼일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집도 있다. 행복주택이나 역세권 청년주택처럼 정부가 관여하는 임대주택이다. 정부가 임대인이거나, 적어도 민간 임대사업자에게 의무임대기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역세권 청년주택 민간임대 세대의 경우 월세가 상대적으로 비싸긴 하지만, 어차피 시세를 넘지는 않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은 거의 생길 일이 없으므로 ‘심리적 안정의 비용’이라고 여기는 청년들도 많다.

이런 임대주택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직접 공급하거나, 적어도 공공의 눈으로 감시할 수 있는 주택 말이다. 민간 주택 시장을 안정화하는 일도, 주거비를 직접 지원해주는 일도 필요하지만, 주거 안정을 찾는 세입자들을 위해서는 정부가 위험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보증금 떼일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임대주택 확대는 정부가 가진 토지와 건물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꼭 임대주택이 아니더라도, 근처 주민을 위한 쉼터나 공유공간 등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었다. 기자가 정부의 공공 부동산 매각 발표를 듣자마자 아쉬움을 느꼈던 이유다. 매각하지 않으면 9일 발표된 국토부의 올해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이 2만 6000호보다 훨씬 더 많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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