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최봉익
그림=최봉익

조촐한 우리 집 식탁은 언제부턴가 양파 장아찌가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열흘에 한 번꼴로 양파 겉절이가 곁들여진다. 집사람 왈, "모두가 당신을 위해서" 란다. 나이 들면 철든다고 밥상머리에서 이 말 들으니 집사람이 한량없이 고마울 뿐이다.

양파는 흔히 식탁 위의 불로초라 불릴 정도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치매 예방, 항암, 심혈관질환, 고혈압, 안질환, 불면증, 당뇨, 혈액순환, 면역력 회복 등 무려 54가지 효능이 있다는 내용이 검색창에 있다. 보약으로 상징되는 인삼의 효능은 기껏 6가지인데 반해 이보다 아홉 배나 많은 양파다. 양파의 생김새, 그 형성구조를 살펴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까도 까도, 지극-정성-소통-융합-배려-협력’ 구조다. 늙은이의 생뚱맞은 생각일까. 사람들마다 갖추지 못한 핵심역량을 양파들은 모두가 갖추고 있어 놀랍다.

5월로 접어들어 코로나19 기세가 한풀 꺾이자 미뤄왔던 마을학교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나름대로 거버넌스 운영체제인 마을학교는 2014년에 NGO시민재단,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살기좋은마을만들기네트워크, 도시재생공동체센터, 자치구 중간지원조직 등 다양한 시민조직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간 마을학교는 꾸준히 성장해 왔다. 운영체계나 프로그램 다양성은 진화했으나, 체계적인 교육과정 구성 미비, 일방향 강의식 교육, 자치구센터와 교육내용 중복, 교육대상의 모호함 등이 개선점으로 제기되었다. 마을학교가 마을활동가 역량 강화에는 기여 했지만, 주민의 역량 강화에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운영위원들의 평가다. ‘주민역량’이 곧 ‘마을역량’이고, ‘마을역량’이 곧 ‘지역역량’이라는 등식 성립을 전제할 때, 앞서 제기한 마을학교 교육과정 재구성이 요구된다. 

2015년 다보스포럼은 지구촌 사람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4가지 핵심역량을 제시했다. 주민의 소통능력, 주민의 비판적 사고능력, 주민의 창의능력, 주민의 협업능력이다. 이는 마을학교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한 메시지라고 믿는다.

캐나다 노바스코시아주 안티고니쉬카운티에 있는 셰비어 대학의 사명을 소개하고 싶다. 지역의 성인교육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티고니쉬운동을 탄생시킨 셰비어 대학은 1853년에 설립됐다. 국민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대학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대학이 지식의 탐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학의 정신은 신부이자 철학교수였으며 코디 박사를 이끌어낸 탐긴스 교수의 소신이기도 했다.

당시 캐나다 동부 해안지역은 농업, 어업, 광업에 의존하는 매우 가난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조소의 대상이기도 했다. 탐킨스 교수와 코디 박사는 대학이 상아탑 만이 돼서는 안 되고 지역사회와 어울리면서 지역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선구자들은 초기에 지역에서 일할 대학생들을 애써 가르쳤지만, 대학생들은 지역에 남지 않고 대도시로 떠났다. 이들은 지역주민 교육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처음에는 교수들에게 주민교육을 맡겼다. 교수들은 ‘세익스피어’만을 가르칠 뿐 주민의 실생활 필요 욕구에는 다가가지 못했다.

선구자들은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실용적인 성인교육을 위해 대학이 학생을 찾아가는 교도부를 설립했다. 농어촌 현장을 찾아간 교도부는 지역주민의 생각을 모으는 토의·토론중심의 학습동아리 모임을 전개했다. ‘만인은 철인’이라는 자신감을 키우며 대학과 지역주민을 연결하면서 현장의 요구에 답하는 지역 리더를 양성했다. 당시 지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 주도의 지역개발 방법은 협동조합이었다. 대학과 지역주민이 협력하여 만든 다종 다양한 협동조합운동은 큰 성공을 거뒀고, 농어촌지역의 실질적인 학습운동으로서 안티고니쉬 운동은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됐다.

안티고니쉬 운동은 다음의 6가지 원칙으로 운영했다. 첫째,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둘째, 사회개혁은 주민의 기본역량을 함양하는 교육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셋째, 교육은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경제문제로 시작돼야 한다고 믿는다. 넷째, 주민은 사회구성원이기에 교육은 집단사고 활동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다섯째, 효과적인 사회개혁을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 운동의 궁극적인 비전은 주민들마다 ‘자기 운명의 주인공’으로서 보다 풍요롭고 정신적으로 성취감을 누리는 삶이라고 믿는다.

주민의 역량이 지역의 역량이라는 활사개공(活私開公)의 철학이 담긴 원칙으로 운영되는 셰비어대학의 코디연구소는 세계 대공황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에 영감을 줬다. 특히 한국의 신용협동조합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거듭 말하지만 셰비어대학 코디연구소의 사명은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지역주민이 주도해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방법으로 지역리더 양성,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조직화, 사회혁신, 다양한 지역공동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한다. 또한, 지역문제를 풀어가는 사회적 경제조직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사회 조직들과 긴밀히 협력한다.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동시에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자세를 중요시하며 실천해 나가고 있다. 셰비어대학 코디연구소의 사명은 우리들의 마을학교는 물론 지역의 대학들이 챙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우스갯말로 양파의 원산지가 캐나다가 아니기에 셰비어대학 코디연구소는 오히려 매력점수를 더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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