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돈화문 맞은편에는 벽돌 외관의 모던한 건물이 있다. 이름은 ‘노스테라스(North Terrace).’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가 10년을 바라보고 만든 '공간'이자 '마을'이다. 작은 숲 같은 1층 카페는 여유롭다. 서가에는 영어책이 여러 권 보인다. 오래돼서 색이 바랜 책도 있고 접힌 자국 하나 없는 책도 있다. 김 대표가 애지중지 아낀 고서들이다.
 

노스테라스 1층 카페. 서가에 꽂힌 책들이 보인다.

이 책들은 외국어로 쓰였지만 한국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의 새를 소개하는 영어책, 한국 전래동화를 독일어로 번역한 책 등 다양하다. 외국인이 쓴 한국 책을 모으는 게 김 대표의 취미다. 노스테라스 빌딩에만 무려 700여 권이 있다고 한다. 특히 요즘에는 고서 모으기에 푹 빠져 있다.

“외국에 나갔을 때, 이방인이 되니 한국 책이 그립더라고요. 오랜 서점을 찾아가 보니 구한말 한국이 처음 서양에 알려질 때 출간된 책들이 많았어요.”
 

김상헌 대표 

김 대표는 아마존 같은 인터넷 온라인 서점에서 고서를 모으기 시작했다. 전문 딜러나 오래된 서점도 찾아다녔다. 모은 책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자국이 남기 때문에 포스트잇도 안 붙인다. 책을 다 읽어봤냐고 묻자 아직도 모으는 단계라 못 읽은 책들도 많다며 웃는다. 최근에 고서 판매 사이트에서 책을 또 주문해서 배송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와 책 구매를 즐겼다. 모은 책을 도서관에 1000권 이상 기증해 표창장을 받은 경력도 있다. 그는 “한때 도서관을 지을까 고민했지만 이미 훌륭한 사람들이 세운 곳이 많아서 나는 ‘한국에 대한 서양 서적’이라는 차별화된 테마로 작은 도서관을 연 것”이라고 말했다.

힘들게 수집한 도서를 왜 카페에 전시할까. 김 대표는 나름의 사회 기여 방안이라고 답한다. “외국인들에게 깊이 있는 한국 소개를 하고 싶었다”며 “서울에 이런 공간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국내 독자들도 책을 통해 과거에 한국이 외부에 어떻게 비쳤는지, 현재는 어떤지 알 수 있다.

김 대표는 당시에 서양 작가들이 왜 이런 책을 썼는지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우리가 모르는 한국’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카페에 들르길 바라는 이유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자료를 알려 외부인이 보는 한국 모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에 관한 외국 서적들. 노스테라스를 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 바실 홀, “10일간의 조선항해기”(Basil Hall, “Account of 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 and the great Loo-Choo island”)=영국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인 바실 홀이 1818년에 출판한 항해기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을 10일간 탐사한 내용과 그림이 담겨 있다. 200년 전 서양인들의 눈에 한국인들이 어떻게 비쳤는지 알 수 있다.

▶ 카를로 로제티, '꼬레아 꼬레아니'(Carlo Rossetti, “Corea e Coreani”)=100년 전 서울 주재 이탈리아 외교관 카를로 로제티가 쓴 견문기다. 대한제국기에 쓰였으며 가장 많은 한국 사진이 있는 서양 고서다. 집안의 일상사를 비롯해 서울 유적들을 비롯해, 황제와 궁정, 한국의 풍물과 문화를 담았다.

▶ 존 로스 “한국, 그 역사와 관습과 풍습”(John Ross, “Corea, Its History, Manners and Customs”)=서양 언어로 기록된 최초의 한국 역사책이다. 제목에 ‘코리아’가 적혀있지만 한국이 한나라의 일부처럼 표현됐다. 김 대표는 저자가 한국을 와보지 않고 쓴 것 같다고 말한다. 인쇄술이 덜 발달한 시기에 쓰인 책인데도 색깔 그림이 몇 개 있어 당시에도 사회적 값어치가 컸으리라 짐작된다.

▶ 홍정우, “춘향전”(홍정우, “Printemps Parfumé”)=홍정우가 1892년에 프랑스어로 최초 번역한 한국 소설이다.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포켓판으로 제작됐다. 홍정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자 김옥균을 살해한 사람이다. 홍종우가 춘향전 번역본을 출간한 후 몇몇 프랑스의 식자들이 조선 문학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 타셴, “애니 레보비츠”(Taschen, “Annie Leibovitz”)=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가 독일의 유명 출판사 타셴과 손잡고 제작한 사진집이다. 외국 연예인들의 사진이 대부분이다. 책의 무게는 35kg, 크기는 세로 70cm에 가로 50cm이며, 가격은 약 300만 원이다. 카페 문 바로 옆에 펼쳐 있다. 김 대표는 이 책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전시한 카페가 노스테라스 뿐일 것이라고 자부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바실 홀의 '10일간의 조선항해기,' 카를로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니,' 홍정우의 '춘향전,' 존 로스의 '한국, 그 역사와 관습과 풍습,' 타셴의 '애니 레보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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