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전체를 ‘내 집처럼’ 만들려는 별별 재미난 시도



아이들에게도 ‘퇴근 후 편히 놀 집’을…‘별별재미난교실’
일하는 엄마, 아빠들은 방과 후에도 아이들을 돌봐줄 돌봄교실이 있는 학교를 선호합니다. 그런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려 일부러 이사를 가는 부모도 있다죠. 한정된 지원 속에서 주로 저소득층 아이들의 돌봄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초등학생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의 방식’이지요.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방과 후 대부분의 시간을 지역아동센터에서 보내는 아이들은 학교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업이 끝났는데 학교 내 돌봄교실에 남는다는 건, 퇴근 후 갈 곳 없어 사무실에서 쉬는 직장인 처지와 비슷하겠지요.

방과후 돌봄교실 '별별재미난교실'은 가정집을 보금자리로 삼았다. 마치 친구집에 놀러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회적 경제의 방식’은 좀 다릅니다. 먼저 공간. 장위동 돌봄교실은 가정집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다락방엔 손잡이를 달아 아이들 아지트를 만들고 작은 마당은 텃밭 겸 놀이터여서 여름엔 물놀이장으로 변신하지요.

운영방식도 바꿨어요. 아이들과 부모 참여를 늘렸지요. 돌봄교실 이름은 아이들 의견을 받아 ‘별별재미난교실(이하 별별교실)’로 바꿨어요. 운영회의에는 학부모 대표가 참여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교사들과 함께 내립니다. 20여 명의 학부모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공유되는 아이들의 일상을 보면서 소통하곤 합니다. 지난해만 해도 하루 평균 10여명의 아이들이 찾아오던 돌봄교실에는 올해 들어 23~24명이 오고 있어요.

아이들은 재미나서, 부모들은 안심할 수 있어서 별별교실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이 동네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김민정 씨는 11살, 14살 난 두 아이를 이곳에 보내고 있습니다. 김 씨는 이 교실을 ‘나 어렸을 적 추억 같은 걸 만들어주는 곳’이라고 표현했지요.

“아이가 서너 시까지 방과 후 수업을 받은 뒤 태권도 학원에 가기까지 세 시간쯤 시간이 비어요. 저는 일이 저녁 7~8시에 끝나고요. 만약에 이곳이 없었다면 중간에 어딘가 다른 보습학원에 보냈어야 했을 거예요. 보습학원에서 아이들 공부는 시키겠지만 밥 챙겨주고 아이들 행동문제까지 신경써주지는 못하잖아요. 여기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을 이웃 아이로 보고 잘 봐주세요. 아이도 집처럼 편하게 지내고요. 어느 날은 자기가 키웠다면서 상추를 잔뜩 뜯어 왔더라구요. 어떤 날은 마당에서 친구들이랑 고무호스로 물놀이를 하고 왔고요. 나 어렸을 적 생각이 나서 좋았어요.”

자녀 셋 중 두 명을 별별교실에 보내는 하춘희 씨는 “애들이 여길 너무 좋아해서 10분만이라도 들렀다 가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들, 선생님들 만나야 한다고 말이지요. 막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첫째 아이는 엄마한테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별별교실 선생님한테는 털어놓는다고 합니다. 자기 얘길 잘 들어준다면서. “여긴 서로 소통이 정말 잘 되어요. 다른 시설은 상호작용이 여기만큼 활발한 것 같지가 않아요. 아무래도 시간, 공간 제약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일하는 엄마 입장에선 ‘시설 닫을 시간인데’ 하면서 뛰어가지 않아도 되고요. 이곳은 다른 시설보다 유연하고, 자유롭고, 부담이 없어요.”

'별별교실'에서 아이들은 공부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을 갖는다.
하춘희 씨는 별별교실이 다른 시설과 다른 점을 하나 더 귀띔해줬습니다. 이곳은 다른 아동복지시설과 달리 가정소득에 따라 아이를 갈라서 받지 않고 동네주민이라면 누구나 등록 후 필요한 만큼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지요.
“옆집 애 뒷담화 대신 함께 가르칩시다” 장위동 마을학교
별별교실에 재미를 느낀 부모들은 ‘이 지원이 끝나고 나면 어쩌지?’ 고민하며 ‘장위동 마을학교’를 통해 다음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마을학교란, 학교가 아니라 마을에서 이뤄지는 방과 후 학교를 뜻합니다. 일종의 마을학교죠. ‘장위동 마을학교’는 장곡초등학교의 협조로 학부모 참가팀을 모집해 3개 팀 20명의 학부모들이 15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별별교실' 한 편에 자리잡고 있는 수경재배시설에서 작물이 자라고 있다. (사진제공: 성북구마을사회적경제센터)
별별교실 한 귀퉁이의 수경재배-합동조합참여교실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자녀 못잖게 이 공간을 좋아하게 된 김나영 씨는 이 프로그램이 좀더 확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을학교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학교는 그 자신의 삶과 관계망을 바꿨습니다.

“2009년에 이사 왔지만 동네 사람들이라곤 애들 친구 부모들, 우리 또래 사람들밖엔 몰랐어요. 그런데 마을학교에 참여하면서 동네 어르신들을 알게 됐어요. 어르신과 아이가 함께 수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어르신들이 직접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시기도 하거든요.”

신순철 씨는 마을학교에서 전통놀이를 가르칩니다. 그의 수업엔 5세 아이부터 그 아이의 40대 아빠, 동네 어르신까지 모두 와서 고무줄놀이 같은 일제강점기 놀이 대신 참고누놀이 같은 우리 전통놀이를 함께 즐깁니다. 그는 동네에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마을학교에 참여했습니다. “장위동에서만 27년 동안 살았어요. 예전엔 옆집 숟가락 수도 알았지만 지금은 옆집 사람 얼굴도 잘 모르게 되었어요. 문화도 달라져 할머니랑 아이가 같이 있어도 놀진 않아요. 같이 놀 줄 몰라서요. 저는 전통놀이로 주민들이 나이와 관계없이 같이 놀며 소통하는 장이 생기길 바라고 있어요.”

마을학교에서 동네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전통놀이를 배우고있다 (사진제공: 신순철 씨)
동네 아이들을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없이 함께 잘 키울 수 있는 동네. 이것이 마을학교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꿈꾸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려면 ‘참여의 길’이 필요하겠지요. 색채심리치료사인 박귀정 씨는 전문가이자 마을주민으로서 마을 방과 후 학교를 통해 ‘길’이 열리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웃 아이, 제 아이의 친구를 보면 그 아이 엄마만 자기 아이 문제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웃 눈엔 보이는 문제인데요. 하지만 남이 섣불리 그 얘길 해주긴 어렵죠. 마을 방과 후 학교가 활성화되면 교사로 참여한 전문가들이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게 될 거에요.”
“쓰레기 쌓인 공공임대주택 주차장 활용” 성북도시재생협동조합
장위동 등 성북구에서 ‘참여의 길’을 뚫고 있는 사람들은 또 있었습니다. 사회적경제특구 운영주체인 성북구사회적경제특구추진단, 성북지역자활센터, 장위도시재생지원센터 등이 참여해 설립 중인 지역관리기업, ‘성북도시재생협동조합’입니다. 이들은 여러 통로로 주민 참여의 길을 열고 있습니다.

원재철 성북구사회적경제특구추진단 부단장은 “장위동과 같이 단독, 다세대 주택이 많은 도시재생 지역은 주차난이 아주 심합니다. 어쩔 수 없이 불법주차가 빈번한데, 화재라도 나면 소방차 접근이 어려워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라며, “한 면에 보통 1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주차장을 새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지역 내 공공임대주택 등의 유휴 주차공간을 공영주차장으로 개발하면 큰 부담 없이 많은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죠. 주차장 제공자와 이용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정교한 사업 모델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합의점을 찾아나갈 필요도 있구요. 그 일을 바로 우리가 만드려고 하는 지역관리기업, 성북도시재생협동조합에서 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주민의 다양한 참여 속에서 지속적인 도시재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역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수마을 되살리기에 참여했던 박학용 장위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아이가 나고 자라 결혼하고 나이 들어 죽는 과정을 편안하게 함께 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드려면 시설만 갖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두 가지 ‘지속가능성’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수익과 참여의 지속가능성이 그것입니다.

박학용 장위도시재생지원센터장
“우선 지속가능한 수익을 내야 해요. 그러려면 주민들이 주도하고 참여하는 커뮤니티비즈니스가 있어야 합니다. 지역에 기반한 사회적 경제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두 번째는 주민에게 필요한 사업을 만들 수 있는 주민협약, 주민협의체 같은 참여구조가 필요한데, 이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장위동 주민협의체도 전체 주민의 대표성을 갖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원재철 성북구사회적경제특구추진단 부단장은 “단순히 운영 주체를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공공의 방식’이 지니고 있는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지역의 실제 필요에 기반한 제도의 맞춤형 다양화와 혁신이 필요한데, 그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성북구사회적경제특구에서 초등틈새돌봄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단기간에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기는 어렵겠지만, 활용 가능한 제도를 최대한 연계하여 운영한다면 각 제도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 아직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사회적경제특구 사업의 취지가 바로 이런 가능성을 검토하고 시험해보는 것이기에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원재철 성북구사회적경제특구추진단 부단장은 각 지역에서 실제 필요한 사업들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서울시, 3년 간 사회적경제특구 지원…그 후에도 ‘도전’ 지속하려면
서울시엔 성북구를 포함해 10곳의 자치구가 사회적경제 특구로 지정되어 시민이 참여한 지역발전모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5개 자치구 중 40%가 참여한 셈이지요. 서울시 전체가 사회적경제 특구, 즉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지역 발전을 추진하는 날도 올까요?

그런 생각으로 장위동을 돌아보다 의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장위동 사람들의 도전이 사회적경제활동가, 서울시 지원 없이 시작될 수 있었을까요? 서울살이라는 게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생존하는 데에 쓸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말이지요.

우리 동네를 살기 편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솔루션을 고안하고 그걸 추진할 의사결정구조를 만들고 예산을 끌어오는 일까지 해낼 시간을 마련하기란 대부분의 주민들에게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대신 주민이 기획과 관리에는 참여하되 실행은 위임할 수 있는 활동가와 조직이 있다면 어떨까요?

내가 살고 싶은 우리 동네의 모습이 실현되려면 서울시 지원 등 장기적 사회투자자금뿐 아니라 우리 동네에도 성북마을 사회적경제지원센터나 장위도시재생지원센터 같은 전문조직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성북구 마을 사회적경제센터 홈페이지 : sbnet.or.kr

글. 이경숙
사진. 이우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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