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마을기업연합회 신임 이사로 선임된 김하석 동네발전소 대표, 김은수 강북청년자립협동조합 대표, 노정은 도시마을협동조합 대표(왼쪽부터)를 만났다.

국어사전에서 ‘마을’은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을 의미한다. 산업화 이후 마을은 현대인에게 다소 낯선 단어가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골이 아닌 도시에 정착하게 됐고, 여러 집이 모여 살긴 하지만, 이웃과 단절된 채 사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구 1000만의 대도시 서울에서 ‘마을’은 어떤 의미일까. 서울에서 마을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물어보기로 했다. 지난 4월 서울시마을기업연합회(이하 연합회) 신임 이사로 선임된 3명의 대표는 20~30대로, 연합회에서는 처음 청년 출신 이사가 됐다. 전선영 연합회 사무국장은 “다양한 주체의 역할을 확대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권역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던 청년 대표들이 자연스럽게 이사로 뽑혔다”고 설명했다.

연합회는 서울시 안의 마을기업 100여 곳이 모여 개별 기업의 미션 수행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도록 힘쓰는 자발적?자치적 단체다. 2013년 준비 모임을 시작으로 2015년 4월 정식으로 출범했다. 사외이사를 포함한 15명의 이사가 월 1회 정기이사회를 열어 마을기업에 관한 지원, 예산, 입법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3명의 신임 이사는 △강북구를 기반으로 지역의 청년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강북청년자립협동조합’의 김은수 대표 △양천구에서 소상공인과 주민 간의 상생을 이끄는 ‘동네발전소’의 김하석 대표 △강서구 주민들과 소독방역 작업을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도시마을협동조합’의 노정은 대표다. 지난 14일 덕수궁 일대에서 열린 ‘서울 사회적경제 주간 행사’에서 이들을 만나 좌담 형태로 이야기를 나눠봤다.

-먼저 각자 몸담은 마을기업이 하는 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20~30대 젊은 마을기업 대표들이 서울시마을기업연합회 이사가 되면서 청년들의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은수 강북청년자립협동조합은 청년 조합원들이 미술, 음악, 공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아지트를 지향하는 단체예요. 지역의 작은 공간에서 청년 뮤지션들이 모여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다가 자립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해 2016년 마을기업으로 설립했습니다. ‘수유리 콜라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주민 대상으로 음악 교실도 열고, 녹음실과 영상, 음향기기 대여 사업도 합니다. 지역의 축제가 열릴 때는 직접 무대에 서기도 하고요. 

김하석 동네발전소는 2014년 주민 3명이 모여 만든 모임이 2015년 협동조합으로 결성됐습니다. 상권 슬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상공인과 주민의 소통을 늘리고, 골목경제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했습니다. 현재는 주민, 상인, 예술가 등 40여 분의 조합원들이 참여해 동네에 필요한 서비스를 기획합니다. 예술 아카데미를 열어 주민들이 만든 작품으로 마을지도를 만들거나 동네 디자인에 활용하는 식이죠.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확장하는 일을 합니다.

노정은 도시마을협동조합은 10년 넘게 알고 지내던 주민들이 만든 공동체가 2014년 사업체로 발전한 곳입니다. 주로 ‘소독방역’ 서비스를 제공해 주거 환경이나 공공 위생에 기여하고 있어요. 소독방역 외에도 관련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컨설팅도 진행합니다. 특히 환경 위생 아카데미를 열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건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학생 외에도 성인이나 일반 대중을 위한 위생 교육도 준비 중입니다.

-연합회 신임 이사 3명이 ‘청년’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어떤 점이 달라질까요?

세 대표는 "마을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공유하고 비즈니스 감각을 함께 키워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김하석 마을기업 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청년보다는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에요. 청년인 제가 지역 활동을 하면 신선하게 바라보시는 주민들도 많아요. 청년 이사로서 하고 싶은 일은 또 다른 젊은이들에게 사회적경제의 의미와 가치를 나눠서 적극 참여할 수 있게끔 동기부여를 하는 거예요. 특히 동네발전소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와 열정이 무척 크거든요. 그런 점에서 연합회의 다른 청년 이사들과 교류해 비즈니스 감각을 함께 키워가고 싶습니다.

김은수 강북청년자립협동조합이 마을기업으로 활동하기 전에는 앞서 단체를 이끌던 몇 선배에게 의지해 활동을 했거든요. 선배가 빠지고 뮤지션 몇 명만 남다 보니까 기업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연합회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도 네트워크를 넓혀 정보나 노하우를 얻자는 이유였습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예술 하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공모하는데, 그런 정보를 공유받고 적극 참여하고 싶었어요. 이번에 이사가 된 만큼, 반대로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노정은 사실 마을기업은 다른 사회적경제 기업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어요. 구성원들의 연령대도 높고, 기업이라는 인식보다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커서 재정구조가 열악하기도 하고요. 저 역시 작년에 도시마을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게 됐는데, 청년들이 기업의 임원이 되고 주요 보직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가 넘어오는 과정이 필요해요. 청년이 지역과 사람들의 연결고리가 되면, 자생 가능성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같은 연합회 이사 말고도 다양한 사회적경제 기업의 청년 대표들이 모이면 시너지가 날 거라 기대합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마을기업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노정은 도시마을협동조합 대표는 "마을기업은 마을공동체라는 인식을 넘어 하나의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춰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정은 저는 시골이 고향이라 ‘마을’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갖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마을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시골은 한 촌락을 이뤄 살면서 그 안에서 만나는 구성원과 교류를 할 수 있지만, 서울은 꼭 공간적 개념이 아니더라도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새로운 개념의 마을을 이뤄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마을기업은 ‘지역성’과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한 기업이니까 일단 마을에서 자생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도시마을협동조합은 먼저 강서구에서 자리를 확실히 잡은 다음, 타 지역구로의 확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죠.

김은수 노 대표님 말대로 서울에서는 마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해요. 저희는 마을기업에 대한 정확한 의미 파악보다는 지역에서 청년 예술가들이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주민들과 연결돼 서로 소통하며 노는 것 그 자체가 마을기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술가들이 지역 안에서 활동하지 않고 타 지역으로 몰려가는 건 마을 내 인프라가 없거나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강북청년자립협동조합은 지역 주체인 주민들과 예술인들의 요구를 파악해 관련 기반을 만들어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만드는 것이죠.

김하석 꼭 서울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점점 공공, 공동보다는 개인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아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줄수록 관계 단절이 심해지고, 세상 살기가 더 팍팍해지잖아요. 제가 앞서 동네의 골목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주민들이 매장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대기업이나 큰 상권이 조성된 곳으로 다 빠져나가더라고요. 작은 식당들도 좋은 식재료와 가치를 갖고 장사를 하는데, 사람들은 왜 몰라줄까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동네발전소가 지역 소상공인들의 스토리를 발굴해 주민들에게 홍보하는 일을 하게 됐어요. 마을기업은 지역 주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네트워크를 맺도록 다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마을기업을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현 단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김은수 강북청년자립협동조합 대표는 "지역 예술가들이 설 수 있는 인프라와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마을기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은수 저희는 문화예술을 하는 기업으로서 예술인을 배려하지 않는 정책이나 시선이 개선됐으면 해요. 예를 들어 뮤지션들에게 지역에서 하는 축제에 와서 재밌게 놀아달라고 하고, 출연료는 챙겨주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저희가 물론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해왔지만, 지역을 위해 봉사하라는 시선은 바뀌었으면 합니다. 또 지자체에서 어떤 행사를 한다고 했을 때 사회적경제 기업에 용역 기회를 우선적으로 주라고는 하지만, 단지 권고 수준이라서 담당 공무원의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 아쉬워요. 

노정은 마을기업은 ‘마을성’ ‘지역성’도 중요하지만, 기업이기 때문에 철저히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공구매든 일반 시장이든 우리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았을 때 기본적으로 품질이 좋아야 선택받는 건 당연하니까요. 현재 마을기업은 특정 한두 사람의 희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조직원에게 자신의 몫을 하고 의사결정도 참여하라고 요구해서 내부 의견을 먼저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외부에서 아무리 지원을 쏟는다고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거든요. 정부 지원에만 목맬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찾고, 떠먹여 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숟가락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하석 동네발전소도 처음에는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 없이 마을성에 더 무게를 뒀어요. 하지만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필수적이더라고요. 내부 수익 모델과 함께 민관이 협력해 지역이 필요한 걸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마을기업은 주민들이 대다수라 비즈니스 역량이 부족한데, 그런 점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회적경제 영역을 포함해 일반 시장의 스타트업, 벤처기업 등에서 세련된 내용의 교육을 받고 기업 역량을 높일 때라고 봅니다.

김하석 동네발전소 대표는 "같은 서울이라도 지자체나 마을마다 환경이나 이해관계가 각각 달라 '마을기업'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규합하는 게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지역마다 특수한 상황을 로컬 비지니스로 연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살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사진. 전석병 작가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