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10년 정도 미술 공부를 하고 돌아오셨죠? 어떤 계기로 떠나게 되신 건가요?

음악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 들어갔는데 소질이 없더라고요. 그때 마침 미술 선생님이 미술부에 들어와 보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미술부 폐지를 막으려 인원을 충원하려고 권하신 걸로 추정하고 있는데 아무튼, 운명의 장난처럼 여러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고, 고등학교 영재 프로그램에도 들어가게 됐어요. 그러면서 처음으로 주변의 인정이란 걸 받아보게 됐고, ‘미술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그런데 그림만 잘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어서 재수를 해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유학을 가보라고 권해주셨어요. 일본, 독일, 프랑스 등등의 선택지가 있었고 실제 유학을 가기 전에 한 번 그 나라에 직접 가보려고 비행기표를 알아보는데, 여행사에서 프랑스 가는 표만 특가에 팔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고르게 된 거예요, 프랑스를. 그곳에서 앰마뉴엘 무쎄라는 친구이자 동료를 만나 콜렉티브 75070을 결성해서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어요. 앰마뉴엘 과는 프랑스 예술학교인 보자르 1학년 때 그래피티를 하고 놀며 만나게 됐어요. 저는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며 아드레날린을 얻으려고 벽에 낙서를 하고 도망가는 철부지였는데, 그 옆의 다른 철부지가 앰마뉴엘 이었던 거죠. 취향이나 좋아하는 게 놀랍도록 비슷하기도 했지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던 제게 앰마뉴엘 은 처음으로 존경심을 준 인물이에요. 지금도 그게 왜인지, 어떤 감정인지 아직도 구체적으로 표현은 못 하겠어요. 다만 내가 아무리 공부를 하고 창작을 해도 이 친구를 따라잡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친구가 입는 옷, 밥 먹는 것, 작업할 때 쓰는 색, 모든 걸 따라 하려고 하면서 ‘너처럼 되고 싶다’고 허심탄회하게 직접 털어놨죠. 그랬더니 이 친구가 ‘아무리 나를 따라한데도 네가 섞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같지만 다르고, 그래서 네가 더 대단해지는 거다’라고 말하는 걸 보고 잡아야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같이 콜렉티브를 구성한 지 벌써 7년이 넘었고, 그동안 쭉 함께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한편 이번 전시 <Ceci n’est pas Oim>은 75070이 아닌 문우림의 이름을 걸고 여는 개인전입니다.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 전시는 75070 전시가 되었을 수도, 문우림 개인전이 되었을 수도, 제 다른 활동명인 André Moon의 개인전이 되었을 수도, 파리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그래피티 크루 CDS의 전시가 되었을 수도 있어요. 모든 걸 다 담고 있는 전시예요. 그래서 스스로는 문우림 개인전이라고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관객에겐 이번 전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 일기장을 보러 오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준비는 앞서 나열한 여러 동료들과 같이 했지만 보여드리는 내용은 인간 문우림이에요. 남들더러 공감하라고 하는 전시라기보다는 제 눈에 예쁜 것들을 모아 둔 전시예요. 일종의 ‘플렉스’ 같은 거죠. 나이키 조던을 사거나 애플 워치를 사면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잖아요? 그것처럼 나한테 소중하고, 중요하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걸 소개하는 거예요. 물론 그걸로 인정과 공감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죠.

조던이나 애플 워치로 예를 들어주셨듯이 소재에서 대중 이미지의 영향이 많이 보입니다. 패션, 전자기기, 기호품 브랜드 등의 이미지들을 자주 작품으로 만드시는데, 이런 것들은 욕망의 대상인가요, 혹은 비판의 대상인가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단정 짓기는 싫어요. 저는 제 눈에 들어온 걸 그대로 표현해요. 인상파 작가들이 그 당시에 자기 눈앞에 있던 사람과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담았듯, 그들이 2023년에 있었으면 저와 같은 것들을 그렸으리라 생각해요. 특별히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통일성이 없다는 말도 듣지만 저는 그걸 즐겨요. 이를테면, 나이키 슈프림 콜라보 모델 중에 정말 예쁜 게 있었는데 당장 그걸 살 돈이 없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그 모델과 비슷한 색깔이랑 슬로건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 게 하나 있거든요. 친구에게 그 그림 팔리면 그 돈으로 운동화 사려고 그렸다고 농담 삼아 얘기할 정도죠.

Ceci n’est pas Oim 전시전경
Ceci n’est pas Oim 전시전경

스포츠도 그중 하나고요?

그렇죠. 인간 문우림이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게 뭔지 생각해보면, 남성 사회에 노출이 많이 되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포츠, 올림픽, 월드컵, 특히 축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하고, 농담을 좋아하고, 밈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해요. 그게 다 작품에 들어가 있는 거죠. 다만 여자를 많이 다루진 않는데 쉽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예요. 그런 이성의 지배가 있어서, 그 지점만 본다면 전 예술을 오래 하진 못할 것 같아요(한국에선).

소재를 고르시는 데 복잡한 과정이나 큰 거리낌이 없으시네요.

소재 면에선 인스타그램 피드가 저를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해요. 돋보기 아이콘을 누르면 알고리즘을 통해서 저에게 맞추어진 이미지들이 광고와 뒤섞여서 뜨잖아요. 거기서 좋아 보이는 것들을 저장하고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작품들을 만드는 거라고도 할 수 있어요.

단순히 좋아요나 저장을 누르는 것과 그걸 작품으로 만드는 건 전혀 다르죠. 어떤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왜 이걸 꼭 해야 하나,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한순간인 것 같아요. 그런 이미지 중에 자기 전에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무심코 찍었다가 핸드폰에 2년 동안 묵혀 놓은 사진… 그렇게 계속 머리에 남는 것들이 있어요. 그걸로 바로 작업을 하는 편이죠.

충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굉장히 충동적이에요. 인간은 동물이잖아요. 식욕, 성욕 등에 이유가 있을까요? 물론 ‘오늘은 만두를 먹겠어’라고 계획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냥 길 가다 떡볶이가 맛있어 보이면 먹어요. 성욕도 마찬가지예요. ‘오늘이 배란일 이니까 관계를 맺어서 다음 달에 아이를 가져야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파크가 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 예술을 해요. 굉장히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에요. ‘이걸 왜 했냐’고 묻는다면 ‘그 순간에 충실했다’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에요.

30대 초반 남성으로서의 자신에게 솔직하게 작품을 만들다 보니 밀레니얼/Z세대나 힙스터 문화의 특징들이 읽히기도 해요. 이런 담론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밀레니얼이 뭔지도 잘 몰라요. 힙한 것도 뭔지 모르겠어요. 다만 제 작품이 ‘힙하다’고만 해석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도 안 되게 동양적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고, 실제로 프랑스에서 ‘흑인이 한 작업일 줄 알았다’면서 저를 직접 보고 당황한 사람도 있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최대한 다양하게 해석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범주에 속하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를 어느 곳에도 완연하게 속해 있지 않은 경계인이라고 생각해요. 경계에선 오히려 모든 이들의 말을 들을 수 있어요. 한 번은 어떤 매거진에서 75070을 포함, 축구를 소재로 작업하는 예술 작가들 특집을 기획해서 ‘풋티스트’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처음엔 재밌었죠. 그런데 이게 점점 유명해지고 큰 브랜드들과 콜라보도 하게 되면서 전시를 할 때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축구 가지고만 작업하는 애들이 아니었네, 라는 반응이 나왔고 수식어가 그런 식으로만 붙어버리니까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막는 거예요. 그때 굉장히 겁이 났어요. 그래서 그런 수식어나 꼬리표가 붙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고 해요. 불확실성이 나를 더 춤추게 하니까.

문우림 작가 작업실
문우림 작가 작업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까요?

예술 그 자체가 돌려도 돌려도 끝나지 않는 연자방아 같다고 생각해요. 그중에 자기 스타일을 찾아서 40년 넘게 똑같은 작업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유연하게 변하는 게 진정한 플럭서스를 담은 예술이지 않을까 해서 저만의 방아를 돌리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추구하는 예술에는 은퇴가 없다고 생각해요.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거죠.

앞서 예술을 오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말과 예술에는 은퇴가 없다는 말을 함께 해주셨어요. 본인은 어느 쪽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두 가지 다예요. 저는 이성으로 스스로를 통제하고 검열하는 면이 있는데, 작업을 할 때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예술을 하는 데 더 알맞다고 생각하거든요. 머리는 본능을 원하는데 입으론 이성을 토해내니까요. 또, 이 미술 작업으로 돈을 벌 수는 없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에 저는 예술을 업으로 오래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느껴요. 하지만 이를테면 나중에 아이가 생겨서 같이 모래성을 쌓을 때 그 친구의 어시스턴트가 되어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 뜻으로 본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죽을 때까지 예술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예술에 좀 더 본능적이지 못하다면 지금으로서 제가 원하는 궁극적인 예술은 할 수 없을거 같아요.

그렇다면 근미래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6-8월에 프랑스로 돌아가려고 해요. 20대 때 10년을 거기서 보냈을 때에 비해서 지금은 뇌가 많이 딱딱해지고 체력도 떨어지고 수용력도 낮아졌다는 걸 느껴요. 그때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제 스스로가 알고 있거든요. 꼭 그 과거를 좇아서 간다기보다는 그걸 끊고 온 시점으로 돌아가서 거기서부터 시작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저는 주임, 선수, 그리고 인간 문우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땐 주임이었고, 수영선수 시절엔 선수로 불렸고, 지금도 집에 가면 ‘우리 문 박사 왔냐’고 하시죠. 그 여러 역할들이 정해지지 않은 채 한 번에 공존하는 게 저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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