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멸’은 지금 당장 눈앞에 도달한 문제다. 어떻게 하면 사라져가는 지역을 살리고, 떠나간 사람들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을까.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고향사랑 기부금법’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개인이 자기 주소지 이외의 자치단체에 기부하면, 기부자에게 세액공제는 물론 지역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제공하는 등 내용을 담았다. 

지난 9월 28일 열린 공정관광포럼 제9회 월례포럼에서는 한국보다 먼저 지역 소멸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에 나선 일본의 사례가 공유됐다. 지난 제8회 행사에 이어 ‘지역을 살리는 고향사랑기부제’를 주제로, 사가현의 지정기부금 제도를 활용한 고향세 운영 사례와 효고현의 예술문화축제가 어떻게 관광자원 및 고향세로 연결되는지 살펴봤다.

사가현, 신뢰 바탕으로 모금해 지역 과제 해결

9월 28일 열린 공정관광포럼 제9회 월례포럼에서 ‘일본 사가현 고향세 민간단체 협력모델’을 주제로 CSO를 설명하는 이와나가 코조 사가현 현민환경부 부부장(오른쪽 맨 위)의 모습./출처=줌 화면 갈무리
9월 28일 열린 공정관광포럼 제9회 월례포럼에서 ‘일본 사가현 고향세 민간단체 협력모델’을 주제로 CSO를 설명하는 이와나가 코조 사가현 현민환경부 부부장(오른쪽 맨 위)의 모습./출처=줌 화면 갈무리

먼저 이와나가 코조 사가현 현민환경부 부부장이 ‘일본 사가현 고향세 민간단체 협력모델’을 주제로 지정기부금 제도 운영 사례를 발표했다. 일본 규슈 북서부에 위치한 사가현은 인구 80만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여행한 적 없는 현’을 조사하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존재감이 적은 지역으로 손꼽혔지만, 최근 이곳에서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다.

바로 고향세를 활용한 민간단체(NPO)의 활약이 두드러졌기 때문인데, 2021년 기준 104개 단체에서 9억엔(약 90억원)을 모금하는 큰 성과를 냈다. 사가현은 다른 현과 달리 기부자가 응원하고 싶은 NPO를 직접 지정해 기부할 수 있다. NPO뿐만 아니라 시민‧봉사활동 단체, 자치회‧부인회‧노인회 등 다양한 조직을 포괄한 CSO(시민사회조직‧Civil Society Organizations)로 개념을 확대하고, CSO 스스로 고향세 모금에 적극 참여하게 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사가현 정부에서는 A4 한 장 정도의 서류만 내면 누구든 CSO 단체가 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이상 신청을 받아준다. 현 내에서 1년 이상 공익 관련 활동을 하고 정치나 종교 목적이 아니라면 어떤 활동이든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놓았다. 그 결과 타 지역에서 활동하던 NPO 12곳에서 사가현에 사무소를 내고, CSO에 참여하는 104개 단체 중 1000만엔(약 1억원) 이상 모금하는 곳이 20개를 넘어서는 등 성과를 이뤄냈다.

이와나가 부부장은 사가현 주민들의 자치회 ‘카와카미 유대모임’을 소개했다./출처=줌 화면 갈무리
이와나가 부부장은 사가현 주민들의 자치회 ‘카와카미 유대모임’을 소개했다./출처=줌 화면 갈무리

사가현 주민들이 직접 설립한 자치회 ‘카와카미 유대모임’을 주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야마토초 카와카미 지구는 산지라 교통 곤란 구역으로 꼽히는데, 고령자가 많은데 버스가 다니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카와카미 유대모임은 고향세를 통해 모금한 돈으로 자동차를 구입해 노인들이 물건을 사거나 병원에 갈 때 차량을 지원했다. 기부한 사람들을 위한 답례품으로는 지역에서 직접 생산한 귤을 줬다.

이와나가 부부장은 “단 한 단체라도 부정행위나 실수가 발생하면, 다른 CSO 단체는 물론 전체 제도에 신뢰가 깨질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고 강조한다”라며 “원래 목적에 맞지 않게 모금하거나 답례품을 지역 상품이 아닌 물건으로 보내는 것 등을 주의시킨다. 기부자들의 신뢰를 얻고 이를 통해 받은 돈을 지역사회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예술가 키워 청년 정착시키는 효고현

이어 김민주 울프하우스 대표는 ‘지역의 문화관광과 고향사랑기부제’를 주제로 일본 효고현 예술문화관광대학 사례를 소개했다. 2021년 4월 새로 문을 연 학교는 예술문화와 관광의 관점에서 지역 활성화를 배울 수 있는 대학이다. 단순히 예술가를 양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지역에 머물며 효고현의 관광자원이 될 예술작품 및 축제를 개발하도록 한다.

예술문화관광대학은 에도시대 때부터 이어진 기요사키의 전통인 ‘묵객(墨客)’에서 비롯됐다. 과거 많은 문인들이 묵객으로 초대를 받아 온천인 기요사키에 머물렀는데, 마을에 관한 글 한 편을 써내면 숙박료가 무료였다고 한다. 그렇게 써낸 작품들이 마을의 대표작이 되고 100년 이상 사랑을 받게 됐다. 바로 묵객이 현대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개념과 상통하는 것이다.

김민주 울프하우스 대표가 일본 효고현 예술문화관광대학 사례를 소개했다./출처=줌 화면 갈무리
김민주 울프하우스 대표가 일본 효고현 예술문화관광대학 사례를 소개했다./출처=줌 화면 갈무리

이 대학의 학장인 히라타 오리자는 “진학 및 취업을 계기로 수많은 18세 청년들이 마을을 떠난다”며 “그들을 놓치지 않는다는 부분이 아니라, 외지에 나가서 격렬한 시간을 보낸 이들이 돌아가고 싶다고 여기는 마을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에 뿌리를 내린 교육과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럼 사회를 맡은 김대호 공감만세 연구위원은 “지역 소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로 교육과 문화가 무척 중요함을 보여준 사례였다”며 “한국도 여러 대응법을 준비하고, 전문성을 쌓아가야 하는 상황 속에 어떻게 지역 활성화를 할지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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