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공유주택 ‘장안생활’. 이곳 1층에는 최근 ‘누룩’이라는 이름의 전통 펍(pub)이 자리 잡았다. 이 펍에서 파는 술은 모두 이곳 ‘장안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다. 바 자리에 앉으면 뒤편에 마련된 막걸리 발효통이 보인다.

장안양조장 막걸리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남양주시에 있는 협동조합 아파트에서 그 역사가 시작했다는 점이다. 손병기 장안양조장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남양주 위스테이별내아파트에서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 그는 “주민들과 의기투합해 2년 동안 전통주 소믈리에 교육을 받았다”며 “아파트 상가에 양조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공간이 다 차서 어렵겠더라. 그래서 이곳 장안생활에서 장안양조장을 개소했다”고 말했다.

손 CTO는 최근까지 위스테이별내아파트 주민으로 이루어진 ‘위스테이별내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지난달 초대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그는 아파트 착공 전부터 여정을 함께 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양조장 운영으로 인생 제3막을 열겠다는 그를 지난 22일 누룩에서 만나 그간의 소회를 들었다.

손병기 전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그는 주식회사 장안양조장 CTO로 인생 3막을 열었다.
손병기 전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그는 주식회사 장안양조장 CTO로 인생 3막을 열었다.

아래는 손 전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Q. '이사장'으로서 손병기의 글은 여럿 읽었는데, '개인'으로서 손병기도 궁금하다. 위스테이별내의 이사장을 역임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대기업에서 IT 관련 업무를 했다. 20년 정도 다녔다. 그러다 2000년대 초에 내게 인생의 전환기가 찾아왔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40대 초에 대장에 폴립을 발견했는데, 제거 과정이 좀 어려웠다.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게 뭘까’ 하는 고민을 진심으로 하기 시작했고, 일만 중요한 게 아니라 10년 단위로 로드맵을 짜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내 나이 50이 되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로드맵을 그렸다. 40대 후반쯤 다니던 회사를 나와 IT 회사를 창업했고, 동시에 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의 공동체 주택을 많이 찾아다녔다.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을 때였다. 홍성, 홍천, 무주, 진안 등에 가니 내가 생각하던 모델들이 많더라. 탐색하고 배우면서 공동체가 뭔지 알게 됐다.

그러다 다니던 교회에 자주 오던 노숙자가 눈에 띄었다. 그때 문득 들었던 생각이, ‘밥이 해결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구나. 이들에게는 주거가 필요하고, 일자리가 해결돼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겠다’였다. 주거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와중에 우연히 위스테이 사업 설명회를 들었다. ‘이 공동체라면 같이 해볼 수 있겠다’ 싶어 합류했다.

Q. 처음이었던 시도인 만큼, 착공하기까지 품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처음 설립준비위원회는 10명도 안됐다. 몇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 때는 다들 생계가 있으니 오전 일찍 회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공덕동 더함 사무실에 매주 모여 3~4시간씩 회의를 진행했다. 다 세어보니 서른번이 넘게 했더라. 지금 또 하라고 하면 못 한다.(웃음)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텐데. 시간도 내야 할 텐데. 법률적인 이슈도 다뤄야 하고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을 텐데.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정말 많았다. 그래도 협동조합의 가치를 지닌 주택을 세운다는 것 자체에 기쁜 마음으로 임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주 목적이 사업 완수였고,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부였다. 그런데 서서히 우선순위가 바뀌더라. 

Q. 우여곡절도 많았겠다. 

건설이라는 사업 자체가 굉장히 변수가 많고 규모도 커서,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시범사업인 만큼, 제도적 정착이 잘 안돼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이 갖는 목적과 가치는 명시돼있는데, 구체적인 게 없어서 난항을 겪었다. ‘협동조합형’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해진 게 거의 없었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은 커뮤니티 활동을 해야 한다. 당연히 조합이 커뮤니티 시설을 운영하리라 생각했는데, 일단 조합원이 내는 커뮤니티 시설 비용을 협동조합이 걷는 게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식으로 제도적 준비가 안돼있다 보니, 기존에 공동주택에서 커뮤니티 시설을 운영하는 방식을 차용해야 했다. 더함이 자회사 ‘스페이스 잇다’를 만든 이유다. 그 전에 사내독립기업(CIC)을 만들 생각도 해봤지만, 이조차도 제도적으로 정비된 바가 없었다.

외부 요인 때문에 생긴 애로사항도 있었다. 공사 당시 근처에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 특수구조대 헬기장이 있었다. 그런데 구조본부 측에서 건설을 보류하라는 연락을 보냈다. 헬리콥터가 뜰 때의 동선과 기중기의 동선이 겹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건설을 보류하면 준공 시기가 늦어지지 않나. 급히 항공 전문가에게 확인해보니, 구조본부 측에서 잘못 알았던 거라 해결할 수 있었다.

국내 최초 아파트형 협동조합 마을공동체인 ‘위스테이별내’. 사진은 위스테이별내아파트 단지 전경./사진=더함
국내 최초 아파트형 협동조합 마을공동체인 ‘위스테이별내’. 사진은 위스테이별내아파트 단지 전경./사진=더함

Q. 여러 일을 겪고 드디어 완공됐을 때 기쁨이 남달랐겠다. 하드웨어적인 측면 말고도, 주민 간의 소프웨어적 유대는 어떻게 형성했나.

우리는 처음부터 '마을 공동체 아파트'를 지향했기 때문에 입주 3년 전부터 마을에 들어와서 마을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마을 주민들이 협동조합이라는 용어 자체도 이해 못할 때였다. 그래서 착공식을 하면서 마을 주민 300명을 초청해 잔치를 벌였다. 기존에 이 남양주 별내 지역에 살고 계신 분들께 '잘 살아보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같은 인사를 전달하려는 취지였다.

Q. 위스테이에는 '갈등조정위원회'라는 게 있다. 층간소음이나 주차갈등 등 얼굴 붉힐 일이 많은 요즘 아파트 사회에 도입하면 좋을 모델로 보인다. 위스테이에서 이 위원회는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2017년 5월에 이사장으로 선출되고 나서, 조합원 교육을 하며 생긴 고민에서 비롯됐다. 사람이 모이는 순간 수많은 이해관계가 생기고 갈등이 시작될 텐데, 이런 일들을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우리 조합이 어떻게 하면 탄탄한 공동체로 출발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다. 거의 반년 동안 조합원 일부와 스터디한 결과, 2018년부터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FI)과의 협업을 통해 갈등조정 전문가 과정을 160여 시간동안 진행하기로 했다. 조합에서 비용을 다 대준 것도 아니고, 본인 부담분이 있었는데 27명이나 교육에 등록했다. 갈등을 예방하고, 생긴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최종적으로 15명의 조합원이 갈등조정전문가의 자격을 취득하고, 위원이 됐다. 참고로 나는 240시간 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미리 조합원들 모아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고 조합원들의 신뢰도 얻었다.

위원회의 최대 성과 중 하나는 '존중의 약속'이라는 선언문을 만들어 낸 거다. 한 달 동안 각 동 엘리베이터에 포스트잇으로 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주민들이 자유롭게 함께 살아가려면 이웃간의 존중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적는 자리였다. 그걸 정리해 7개 실천 분야를 세우고, 구체적 실천 사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포스터를 제작해 이 선언문을 왜 만들었는지, 층간 소음이나 반려동물 관련 문제, 분리 배출 이슈 등을 어떻게 예방할지 적었다.

일반 아파트 같으면 층간소음 이슈가 생기면 관리사무소나 경찰서에 연락한다. 우리는 갈등조정위원회에 먼저 연락한다. 조정위원들이 나서서 당사자들을 직접 만난다. 어떤 애로 사항이 있는지, 소음이 언제 나고 그로 인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등을 듣는다. 그럼 소음 자체를 없앨 수는 없어도, 두 층 사이에 오해를 없애고 줄여나갈 방법 등을 기록하면서 풀어갈 수 있다. 층간소음 같은 문제는 공동체의 밀도에 따라 그 문제의 무게가 달라진다. 위스테이에서 시작된 갈등조정 과정이 입소문을 타서,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부모들도 자발적으로 교육을 받게 됐다.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공동체교육 현장. 위스테이 조합원(입주자)들은 기본교육과 심화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했다./사진=더함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공동체교육 현장. 위스테이 조합원(입주자)들은 기본교육과 심화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했다./사진=더함

Q. 아파트 공동체의 이사장이라는 직무는 어떤 특징이 있나. 기존 사회에서 익숙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와는 다를 것 같은데.

협동조합에는 이사진, 아파트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있다. 둘다 각 관련법에서 정해놓은 내용이다. 이걸 위스테이에 적용하니 상충하는 면이 있더라. 주민을 대표하는 정체성을 가진 그룹이 2개가 있으면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과 연구를 한 결과, 이사진들이 입주자 대표 회의에 나가 대표자로 당선되도록 노력하고, 입주자 대표 회장은 이사장이 맡을 수 있게 하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두 그룹을 일치시켰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낸 해결책이다. 앞으로 제3, 제4 협동조합형 공동주택이 만들어지려면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Q. 이사장으로 역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새로운 시도가 가득했던 아파트였던 만큼, 외부 손님이 많이 왔고, 아파트 내부 투어를 많이 다녔다. 그때 마주치는 아이들이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하면서 아는 체를 할 때 제일 기뻤다.

요즘처럼 아파트 세대 간 소통이 단절된 사회에서, 아이들도 점점 마주치기 어려워지는 사회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뿌듯했다. 우리 아파트에 아이들이 140명 정도 있고, 대부분 서로 아는 사이다. 그러다보니 아파트에 활력이 돌고, 놀이터 등 곳곳에 아이들이 놀고 있다. 가끔 입주민 단체 메신저 방에 "ㅇㅇㅇ(아이 이름) 보신 분 있으면 집으로 보내주세요^^" 라며 가족이 정겹게 아들딸을 찾는 메세지가 올라오곤 한다.

Q. 2028년 10월부터 아파트를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이 인수받기로 계획돼있다. 지난번 사회주택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인수를 위해 법 개정, 금융 등 준비할 게 많다"는 말을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게 필요한가.

공공임대주택은 임대의무기간이 지나면 승인을 받아 분양전환할 수 있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임차인은 우선해 분양 받을 수 있다는 게 법에 정확히 명시돼있다. 그런데 민간임대주택은 분양전환 우선권에 대한 조항이 없다. 위스테이는 민간임대주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만약 청산해서 협동조합이 인수하지 않는다면, 다른 아파트와 다를 게 없다.

위스테이가 협동조합형 공동주택의 형태를 이어가려면, 분양전환 관련 법규에 "단, 협동조합형 아파트는 협동조합이 우선 분양받는다"라는 식의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안 그러면 위스테이 같은 협동조합형 아파트 임대주택은 시범사업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천준호 의원실에서 대표발의한 공익주택 특별법이 통과되면, 우리가 그 테두리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 법의 취지가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고 임차인들이 걱정없이 살 수 있게 하는 주택에 대해 혜택이나 제도지원을 하겠다는 거니 말이다. 이 외에도 이사를 나갈 조합원을 위해 지분권에 대한 연구 등이 필요하다.

금융 면에서는 기금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 지금 위스테이의 지분 중 70%는 정부 몫인데, 이를 사협이 인수해야 한다. 사협의 자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대출받으면 문제 없겠지만, 제 1, 2 금융권보다 공익적 기능을 갖는 기금에서 자금조달하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 조합원들이 추가로 출자한 데 더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금이 일부 투자하면, 협동조합형 민간임대 아파트가 갖는 공익적 가치를 지지하는 금융이 있다는 상징적 의미가 부각되지 않겠나. 

그리고 이런 기금이 조성돼야 앞으로도 대규모 사회주택이 만들어질 수 있다. 캐나다 같은 외국에는 공익주택을 위한 기금이 제도적으로 촘촘하게 조성돼있다. 위스테이별내도 의무임대기간이 끝나면서 배당수익이 발생할 텐데, 미리 공익주택을 위한 기금이 만들어져 그 기금에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

누룩에서 안주를 제조 중인 손 전 이사장.
누룩에서 안주를 제조 중인 손 전 이사장.

Q. 양조장 운영으로 인생 제3막을 열었다. 원래 별내에서 시작한 막걸리 사업으로 알고 있는데, 동대문구에서 법인을 냈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날라.

위스테이별내 착공식을 했을 때 이벤트 업체에 의뢰했는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 어르신을 모시려면 막걸리가 딱인데, 그게 준비되지 않았던 점이다. 옛날에는 마을에 축제나 잔치가 있을 때 늘 막걸리가 있었다. 김치처럼 집집마다 막걸리 레시피가 다를 정도였다. 그 일을 계기로 조합원 몇몇이 '우리가 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2년 동안 15명이 전통주 소믈리에 교육을 받았다. 손님들이 올 때마다 우리가 빚은 술을 내놓으니 '이런 술을 만드는 게 가능하냐', '선물용으로 사고 싶다' 같은 평이 들리더라. 그래서 아파트 상가에 양조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공간이 차서 어려웠다. 그래서 이곳 장안생활로 왔다.

장안양조장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전통문화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게 이사장직을 내려놓고 세운 새로운 10년의 로드맵이다. 상업적이고 자본적인 로드맵으로 풀어내는 게 아니라, 우리 선조의 전통 문화를 다시 개발하고 보급하고 확대해야 한다. 인공 화학재료를 넣지 않은, 정말 정통방식으로 빚은 정통 술을 내놓는 게 첫번째 목적이라면, 두번째는 막걸리에 관련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다. 술에 대한 스토리와 어울리는 안주를 개발해 콘텐츠 비즈니스 사업으로 확대하고 싶다. 자체 누룩 개발, 증류주 개발도 계획 중이다. 펍은 곧 종로5가에도 2호점을 낼 예정이다.

주거 영역에서도 계속 활동할 예정이다. 이미 경기도에서 사회주택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회주택과 마을공동체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비즈니스 영역을 키워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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