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 레이들로(Laidlaw) 박사는 1980년 보고서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을 완성했다. 여기서 “협동조합은 미래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 현대경제는 거대정부와 거대기업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조직이 결합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면서 일반 시민에게 남겨진 유일한 대안은 자신의 집단, 특히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이라 강조했다. 또한, 무서울 정도의 기업권력 시대에 협동조합과 같은 방법이야말로 다수의 대중이 법인권(法人權)을 행사하고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될 것 이라고 밝혔다.

불행하게도 전망한 시대는 이미 오래 전 우리 앞에 정확하게 와 버렸다. 전체 기업 수의 1%도 안 되는 대기업은 전체 기업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독차지한다. 돈이 된다면 사업영역도 가리지 않고 확대한다. 노동시장 양극화, 소득 양극화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까지 대기업 감세를 통한 낙수효과 등을 정책으로 내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을 위시로 한 사회적 경제 진영의 과제는 레이들로 박사의 두 번째 전망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유일한 대안이 되도록 하는 것, 다수의 대중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를 실현할 이유와 소명의식, 자신감, 방법이 있는가? 

협동조합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협동조합 정의, 가치, 원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기반으로 한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이래야만 고유성을 지닌 새로운 범주로서 자리하게 될 것이다. ‘대안’과 ‘유일한 수단’의 수준까지 오르기 위한 초석이다. 

개인적 또는 공통의 필요와 염원을 지닌 다양한 이들이 주체적으로 결사해 자본을 모은다. 민주적이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업체(통상 일반 협동조합을 영리사업체로 구분하고 있지만 영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일 뿐 일반 협동조합 역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업체가 본질) 운영 과정을 통해 결사의 목적을 이룬다. 이 안에서 또 다른 목적을 발견해 달성하고, 더 나아가 결사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조차 포용해 함께한다. 또한, 인류가 처한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대응한다. 협동조합이 거대정부와 거대기업을 넘어 고유영역으로 자리잡아온 과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협동조합 역사를 보면 영리목적의 사업운영, 국가 정책으로의 수렴, 비민주적인 운영, 교육훈련 부족,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한 수직계열화 등으로 인해, 존재하지만 고유영역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협동조합이라는 법인을 설립·운영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국가 의도가 반영된 말로 협동조합이 정의되고, 결사는 사라지고 법인과 사업만 앙상하게 남은 게 지금의 현실이다. 

특히, 법인격을 취득해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협동조합 고유 특성을 어디에서 어떻게 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부각되고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조합원의 필요와 염원을 충족을 보여줄 수 있는 사업·예산계획이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마련되고, 이를 위해 조합원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전망이 나와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곳은 없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규칙에 나와 있는 협동조합 사업계획서 양식은 자체가 백지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의 사업계획서는 국가가 정한 기준을 얼마나 달성하겠냐고 묻는 것이지 사업계획은 아니다. 

'소상공인협동조합 A to Z', 소상공인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에 관한 안내서이다.
'소상공인협동조합 A to Z', 소상공인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에 관한 안내서이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발행된 ‘소상공인협동조합 A to Z’(이승일·김상영·주수원·최정환, 착한책가게)는 구체적인 협동조합 운영방법을 현실적으로 일러준 안내서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총 4장으로, 1장에서는 소상공인 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 2장에서는 속초 크래프트유니온 협동조합 등 4개의 소상공인협동조합 사례를 분석했고, 3장에서는 사업계획서 작성방법을, 4장에서는 협동조합 의사결정 방법 등 협동조합 운영에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안내하고 있다. 

물론 전체적인 내용이 정부정책에 의해 탄생한 소상공인(생산자) 협동조합에 국한돼 있고, 정부지원사업 참여를 중심으로 사업계획서 작성 방법 등이 기술돼 있어 모든 종류의 협동조합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함에도 협동조합다운, 공통의 필요를 반영한 사업·예산 계획서 작성, 협동조합 특성을 반영한 비즈니스 모델 도출, 과정에서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노무·회계·세무 등 사업체로서 협동조합 운영에서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안내는 유익하다 할 수 있다. 

“너무 쉽게 접근하면 실패하고, 조직과 사업의 구상에서부터 집행까지 신중한 접근이 협동조합 고유성을 발현시키고 이것이 곧 성공의 지름길이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서는 맺음말을 통해 시장경제와의 차별 점을 중심으로 협동조합 경영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 책이 고유성과 차별성을 지닌 협동조합 경영을 더 깊고 더 넓게 고민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 

법과 제도, 정책, 시장 안에서 우리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정답처럼 여겨지고 있는 게 지금 협동조합 현실이다. 실패한 경험을 되풀이하듯 빠르게 국가와 시장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제 이러한 현실을 넘어 우리의 고유성을 찾는 게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는 길임을 알고 이에 걸맞은 실천이 필요할 때이다. 레이들로 박사의 두 번째 전망, 거대정부와 거대기업 사이에서 일반 시민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 유일한 수단이 되려면 말이다. 그러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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