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애 길거리에서 못 보는지 알아? 나처럼 다른 장애인 가족들도 영희 같은 애들 시설로 보냈으니까. 한때 나도 같이 살고 싶었어. 근데 같이 살집 얻으려고 해도 안 되고 일도 할 수 없고. 영희 어쩌면 일반 학교에서 계속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었어. 근데 일반 학교에서는 거부하고 특수학교는 멀고 시내 가까운 데는 특수학교 못 짓게 하고 어쩌라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옥(한지민 배우)'의 언니 '영희' 역할을 맡은 정은혜 배우./출처=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옥(한지민 배우)'의 언니 '영희' 역할을 맡은 정은혜 배우./출처=TVN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 장애인 쌍둥이 언니를 둔 '영옥(한지민 배우)'이 꺼낸 말이다. 인권 컨퍼런스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워 두 번을 반복 재생했다.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달까. 강서구의 아파트 소유권자들이 집값 하락을 이유로 특수학교 반대운동을 하자, 발달장애인 부모님들이 무릎까지 꿇으며 호소했던 2018년의 슬픈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집'에 초점을 두고 영옥의 대사를 보면 또 하나의 이슈가 보인다. 영옥에게는 ‘언니의 독립’이라는 선택지가 없다. 시설에 보내지 않을 경우, 집에서 직접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단 영옥과 영희 뿐만 아니라,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두 가지 이외의 선택지를 상상할 수 없다. 국가는 시설을 통해서만 책임을 졌고, 그것이 싫은 개인은 가족의 틀 안에서 돌봄을 감당해야 했다. 설사 동네에 발달장애인이 살고 있더라도 그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이지, 지역 공동체의 독립주체가 되기 어려웠다. 탈시설 운동이 활발해지고 재가장애인의 비율도 높아졌지만, 한 명의 가구주로서 살아가는 정책, 이른바 ‘지원주택’의 부재는 장애인이 ‘집’의 문턱을 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원주택의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국내에 도입됐기 때문에, 정책 자체가 낯설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지원주택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에 따르면, ‘육체적, 정신적 돌봄이 필요한 주거취약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주거 유지지원 서비스와 함께 공급되는 임대주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조례상 정의가 잘 와닿지 않는다면, 시설이나 자활꿈터같이 관리자가 있는 기존의 거주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임대차계약을 맺고 살아가는 동등한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지원주택의 핵심은 ‘집’과 ‘서비스’의 결합이다. 첫 독립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낯설고 어렵다. 장애가 있거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경우 독립을 위해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더 클 수 있겠지만, 아주 특별하거나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고려해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계했다면,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지원할 수 있는 활동보조사가 있다면, 독립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사회적 약자에게 주택을 공급해왔으며 복지 서비스도 제공해왔다. 두 정책을 연결만 하면 되는 거다.

그러나 행정의 칸막이는 높았고 정치는 무지했다. 부동산 물량 맞추기가 중요했던 주택 관련 부서는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고 성과가 느리게 나타나는 지원주택에 관심이 없었다.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는 주택에 대한 권한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책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입법을 관장하는 정치인을 찾아다녀도 탈시설과 지원주택 독립의 개념조차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공공의 미온적인 반응에도, 지원주택을 향한 활동가들의 노력은 공고한 벽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주거, 장애, 복지 등 멀리 떨어져 있던 각 분야의 주체들이 수년간 호흡을 맞추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서울시를 설득해 수백 세대의 지원주택을 큰 문제 없이 운영하고 있으며, 복지기관과 사회주택 운영사가 업무협약을 맺고 자체 예산으로 민간 차원의 지원주택을 운영하는 소중한 사례도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올해는 지원주택의 역사에서 조금은 특별한 의미의 집을 기대해봐도 좋겠다. 지난 12월 ‘테마형 임대주택’ 1호로 김포 ‘향유의 집’이 선정됐기 때문이다. 향유의 집 전신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으로, 운영기관이었던 석암재단은 횡령 등 비리로 가득한 법인이었고, 그곳에 거주하던 장애인들이 직접 나서 재단의 비리를 폭로한 곳이다. 이후 공익이사가 합류해 탈시설과 함께 시설 폐지까지 이뤘다. 역사적 현장이 탈시설의 다음 목적지인 지원주택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얼마 전 지원주택 세입자가 친구를 불러 너무 신나게 놀다 이웃 주민으로부터 민원을 들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독립 초기, 친구 초대에 미쳐 있었던 나도 겪었던 일이다. 이웃 주민에게 미안하지만, 친구를 마음껏 불러도 되는 집이 생긴 기쁨에 먼저 공감이 갔다. 그리고, 다음 과제도 분명해졌다. 초대받았던 친구가 호스트가 돼 초대할 수 있는 집을 지어보는 것이다. 지인을 부르는 당연한 일상이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집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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