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투자는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들에 투자함으로써 높은 투자 수익률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출발점은 기업의 ESG 성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다. 즉, 누가 어떤 분야에서 잘하는지, 또는 못하는지 알아야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ESG 성과를 주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ESG 성과를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할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 표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고, 대부분 기업들은 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GRI)가 제시한 기준을 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지속가능성 회계기준 위원회(SASB)와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의 보고 기준이 투자자 관점에서 유용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 기준들을 함께 반영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처럼 현재로서는 다양한 기준들이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동일한 잣대를 가지고 기업들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가시화된 ESG 정보 공시 국제 표준

그러나 최근 글로벌 표준 제정 움직임이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글로벌 회계기준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은 주요 20개국(G20)과 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OSCO)로부터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ESG 공시 표준을 제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작년 11월 국제 지속가능성 기준 위원회(ISSB, 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 Board)를 설립했다.

ISSB는 지난 3월 31일 ESG 공시기준 초안을 발표했으며, 6월 말까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후 올 연말에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에 발표된 초안은 ‘일반적인 공시 요구 사항(General Requirements)’과 ‘기후 관련 공시기준(Climate-related Disclosure)’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회 및 거버넌스 관련 기준은 추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기후 관련 공시기준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① 지배구조, ② 전략, ③ 리스크 관리, ④ 지표 및 목표의 4개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영역별로 요구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후 관련 물리적 리스크 및 기회, 저탄소 전환에 따른 리스크 및 기회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편 지표 및 목표 영역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가 핵심인데, 스코프(scope) 1, 2, 3 배출량을 모두 공시해야 한다. 스코프 1은 기업이 직접 배출한 온실가스 배출량, 스코프 2는 에너지 사용에 따른 배출량, 스코프 3는 공급망에서의 배출량을 각각 말한다. 스코프 3 배출량도 공시 대상에 포함한 것은 TCFD 기준을 따른 것인데, TCFD가 ”가능하다면(if appropriate)“ 이라는 단서를 붙인것에 비해 ISSB 기준은 예외 없이 스코프 3 배출량을 공시하도록 한 점이 다르다.

그리고 TCFD 기준은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공통 지표만을 제시하고 있는데 비해, ISSB 기준은 산업별 온실가스 배출 정보 공시를 요구하는 SASB 기준도 차용하여 산업별 관련 지표 공시를 요구하고 있다. 즉, SASB 기준에 따라 77개 산업으로 분류하여 각 산업의 특성에 맞는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자동차 업체는 연비나 친환경차 판매 비중, 금융기관은 대출을 제공하거나 투자한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공시해야 한다.

이처럼 ISSB 기준은 기존 기준들을 합친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존 기준들이 기업들의 자발적인 선택 사항이었는데 비해 ISSB 기준은 각국 정부가 채택하는 의무적인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훨씬 강력하다.

ESG 정보 공시 의무화, 빨라지고 확대되는 양상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공시 범위를 확대하는 글로벌 추세도 뚜렷하다.

이 흐름을 주도하는 EU는 2018년부터 ‘비재무보고 지침(NFRD)’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상장 기업 1만 1000여 개가 지속가능경영 관련 공시를 해야 한다. 공시 내용은 환경보호, 사회적 책임과 종업원 처우, 인권, 반부패 및 뇌물, 이사회 다양성 등 다양한 이슈를 포괄한다. 작년 4월에는 NFRD를 개정한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2024년부터는 대상 기업이 거의 5만 개로 확대되고, EU가 정한 공시 기준을 따라야 하며, 공시 내용에 대한 제3자 검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한편 금융기관 대상으로는 작년 3월 좀 더 강한 형태의 규제인 ’지속가능금융 공개 규제(SFDR)‘를 도입하였다. 이는 2018년 발표한 ‘지속가능금융 액션 플랜’ 중 하나로 시행되는 것으로, 그린워싱 방지 및 지속가능금융 활성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SFRD의 적용 대상은 EU 역내 금융 시장 참여자(은행, 연기금, 자산운용사)와 자문사들이며, 기업 단위 뿐 아니라 금융상품 단위로도 공시 의무가 부여된다. 해당 금융기관들은 ESG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18개 정량적 항목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며, 또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주요 부정적 영향을 설명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계획을 밝혀야 한다.

미국은 아직 연방정부 차원에서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제가 없는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기후변화 관련 규제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변화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정 초안을 지난 3월 하순에 발표하였다. SEC 초안에 따르면 미국 상장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함께 기후 관련 리스크와 리스크 관리 과정, 기업이 식별한 기후 관련 리스크가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영업활동과 연결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을 시장에 공시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항목에서는 스코프 1, 2는 물론 일정한 범위 내에서 스코프 3 배출량까지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스코프 3의 경우 스코프 3 배출을 포함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한 기업이나, 스코프 3 배출량 정보가 중요한(material) 기업은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해야 한다.

한국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모든 한국거래소 상장사에게 ESG 공시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올해 말에 국제적인 ISSB 기준이 확정되면 한국 기업들에게도 적용될 텐데, 이 기준을 실제로 적용하는 시점이 2025년 이후라면 이는 글로벌 추세에 크게 뒤지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ESG 정보 공시 의무화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스코프 3까지 공시하는 것도 기업들에게 큰 변화다. 현재 한국 배출권 거래제는 스코프 1, 2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공급망 전체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측정하려면 비용이 들뿐 아니라 정확성을 담보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앞으로 대기업들에게는 스코프 3까지를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포함시키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들은 공급망에 포함된 중소기업들을 압박할 것이고 재무적이나 기술적으로 제대로 준비가 안된 중소기업들은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경제와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제도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대응하는 조치는 잘 안 보이고 문제의 심각성마저도 잘 부각되지 않는 듯하다. 이렇게 태평스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일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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