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경우라도 토지의 사적 이용권이 배제된 상태에서 토지소유자로 하여금 10년 이상을 아무런 보상 없이 수인하도록 하는 것은 공익실현의 관점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과도한 제한으로서 헌법상의 재산권보장에 위배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9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보상 없이 토지소유자들의 토지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듬해 1월, 국회는 문제가 된 도시계획법(現국토계획법)을 개정해 ‘실효(효력 상실)제도’를 도입했다. 쉽게 말해 20년 동안 계획한대로 사업을 수행하지 않으면 해당 계획은 무효라는 의미다.

도시공원일몰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국토계획법상 ‘공원’으로 결정된 ‘시설’을 20년이 지나도록 공원으로 이용하지 않으면, 해당 토지는 더 이상 '공원'으로 묶어 놓을 수 없다. 토지주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개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는 공원 하나를 잃어버린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과정에서 ‘장기미집행 도시공원’들이 사라질(일몰)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시민들이 나섰다. 단체를 조직해 반대행동에 나서는 것은 물론 아예 기금을 조성해 도시공원 매입을 준비하고 있다. 대형 화분에 나무를 심어 아스팔트 위에 설치하거나 한강 나무를 입양하는 등 도심 속 녹지 공간 지키기에도 열심이다. 공공(지자체)이 도시공원을 지키는 게 버거워 보이자 시민들이 십시일반 그 짐을 나눠드는 모습이다.

서울시에 공원이 사라진다? 결국 문제는 막대한 비용!

2020년. 도시계획법(現국토계획법)이 개정되고 약속한 20년이 됐다. 서울시 기준 약 118.5㎢ 면적의 도시공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도심 속 허파로 △도시열섬 완화 △소음감소 △대기정화 △휴식 및 정서 함양 등의 기능을 가졌기에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과 걱정이 컸다.

서울시가 대응에 나서기는 했다. 우선 사유지 중 일부(6.93㎢)는 매입을 했고, 일부(24.5㎢)는 매입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공원'의 지위를 지켜냈다. 보상하지 못해 공원에서 해제된 나머지 사유지(69.2㎢)는 용도구역 중 하나인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해 일몰을 막았다.

하지만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김동언 서울환경연합 도시생태팀장은 “서울시 일몰 대상 토지의 경우, 거의 대부분 (공원으로) 유예하는 방향으로 정리 됐지만 몇 년 안에 매입을 해야 한다”며 “만일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개인 토지주 입장에서는 (사유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고 이것 또한 사회적 비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20년 6월,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국 시민행동 / 출처=환경운동연합
2020년 6월,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국 시민행동 / 출처=환경운동연합

결국 비용이 문제다. 2002년부터 2019년까지 6.93㎢의 사유지를 매입하는 데 약 3조원이 소요됐다. 서울시는 사유지 보상에 약 16조가 추가로 필요하다며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여건상 단독 재원으로 마련⋅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국비지원에 나섰지만 토지보상을 매듭짓기에 아직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국민신탁 활성화...시민들이 도시 숲 지킨다

지자체의 재정적 한계로 도시공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운데 낭보가 전해졌다. 시민들로부터 기금을 모아 도시 숲을 취득하고 보전하는 ‘국민신탁제도’가 활성화 된다는 소식이다. 오늘(19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이하 국민신탁법)’ 덕분이다.

국민신탁은 국민신탁법에 의해 시행되는 제도로 자연환경자산에 대한 민간의 보전 및 관리행위를 말한다. 쉽게 말해 시민(위탁자)이 국민신탁단체(수탁자)에 돈을 맡기면, 해당 단체가 숲(보전재산)을 취득하고 관리하는 제도다. 일반적인 후원이나 기부와 같아 보이지만 신탁단체가 숲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도록 법률이 제한하는 차이점이 있다.

국민신탁운동 활성화 회의 모습 / 출처=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국민신탁운동 활성화 회의 모습 / 출처=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기존 국민신탁법에 따르면 자연환경자산을 취득⋅보전⋅관리할 수 있는 수탁자는 오로지 ‘국민신탁법인’ 한곳 뿐이었다. 하지만 국민신탁법이 개정돼 자연환경자산을 공익적 목적으로 이용⋅수익하고자 하는 비영리법인도 수탁자가 되는 길이 열렸다. 환경부 장관은 업무수행 실적과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탁자가 되길 희망하는 비영리법인을 국민신탁단체로 지정할 수 있다. 자연환경자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시민단체나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도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2006년 법 제정 당시부터 이번 법 개정까지 참여한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는 이미 국민신탁에 가입하려는 일부 기부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김금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무처장은 “국민신탁은 보전재산에 대해 매각⋅교환⋅담보 등의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보전을 희망하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믿고 맡길 수 있다”며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 숲이 탄소흡수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도시공원⋅도시 숲 매입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디든 설치할 수 있는 '이동식 조경수'...IoT 기술 결합도

이동식 나무도 도시공원일몰제 속 떠오르는 대안 중 하나다. 이동식 나무는 잔뿌리가 발달된 나무를 화분에 이식한 상품이다. '심지' 않고 '설치'하는 방식이라 도시 어디서든 나무를 세워 숲으로 만들 수 있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이동식 나무 / 출처=주식회사 헤니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이동식 나무 / 출처=주식회사 헤니

'모바일 플랜터'라는 상품명으로 이동식 나무를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헤니의 박세범 대표는 “가로수급의 큰 나무라도 화분에 이식할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나무를 설치하고 이동할 수 있다”며 “나무 심을 부지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요즘 현실에서 도시 숲을 지키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동식 나무는 아스팔트를 도시공원으로 바꾸기 위해 땅을 구입하고 흙을 다질 필요가 없다. 옥상에 설치해 건물 일부를 숲으로 꾸밀 수도 있다. 광장, 고가차도, 빌딩 로비 등 대부분 공간에서 맞춤형 설치가 가능하다. 나무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도 부족함이 없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는 물론 주변 기온도 2~3도 낮춰준다고 한다.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아서 금방 시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세범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사물인터넷통신(IoT) 기술을 접목해 이동식 나무의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수분⋅영양분⋅온도를 측정할 할 수 있는 관제장치를 화분에 장착하면 장소나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며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물이나 영양분이 부족한 것으로 확인되면 현장으로 가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만들기만 하면 끝?... 공원 입양해 관리하는 시민들

공원을 만드는 것 못지 않게 안정적인 관리도 중요하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거나 쓰레기가 가득한 일부 도시 숲의 모습은 주변 미관을 해치고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 모습을 본 시민들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시 숲을 조성해야 할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지방자치단체는 공원 관리에도 적지 않은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서울시의 2021년 사업비 항목별 지출금액을 살펴보면, 기존 공원을 관리하는 데에만 약 3000억원을 지출했다. 유지관리 비용을 낮추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외에서는 ‘공원 입양’을 통해 유지관리 비용을 시민과 분담하기도 한다. 일본은 1998년부터 어답트(Adopt)제도를 도입했다. 시민과 기업이 합의서를 작성해 공공시설을 양자로 삼아 유지관리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프렌즈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민⋅관 파트너십 제도를 운영 중이다. 미국에서는 특정한 공원을 위해 기부금을 모은 후 공원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에 전달하거나 기본적인 공원관리를 돕는다. 영국에서는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나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한강공원입양현황/출처=(재)서울그린트러스트
한강공원입양현황 / 출처=(재)서울그린트러스트

한국에서도 ‘공원 입양’ 사업이 진행 중이다. (재)서울그린트러스트는 2014년부터 기업과 함께 ‘한강공원입양’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이 후원하면 소속 임직원들이 한강공원 부지에 나무를 심고 직접 관리한다.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이다. 입양기간은 3년(기본)이며 임직원들은 연 4회 이상 현장에 방문해 잡초를 제거하며 물과 비료를 준다. 녹지관리가 처음인 시민들이 많아 방문 전 교육도 진행한다.

입양기간이 끝나면 트리시터(나무보호자)들이 출동한다. 트리시터는 원예학과 및 조경학과 대학생, 시민 정원사 등 나무와 식물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다. 입양기간이 끝나 방치될 위기에 놓인 숲을 가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였다. 2020년 여름장마로 침수피해를 입었던 뚝섬한강공원의 인덱스가든도 이들의 손에 의해 복구됐다. 

2020년 기준, 12곳의 후원기업과 3259명의 임직원이 2만4250주의 나무를 심어 12곳의 공원 입양에 나섰으며 26명의 트리시터들이 입양기간이 끝난 숲을 돌보았다. 이우향 서울그린트러스트 사무국장은 "일상적인 공원 관리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한다. 시민들의 역할은 계절마다 해당 녹지를 조금 더 섬세하게 관리해 식물(나무)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