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짐을 옮기고, 그 사이를 지나니 집 앞에 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전기밥솥, 쓰레기통, 서랍 등 직원들은 모든 제품의 내용물을 확인한 뒤 중요한 물건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며 필요 없는 것을 선별했다. 고장 난 냉장고부터 잘 닫히지 않는 서랍, 여행용 가방 등 사용할 수 없는 불필요한 폐기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남시 소재 한 아파트의 ‘저장 강박 의심 가구 지원 사업’ 현장. 이날 청소를 진행한 전난순 하남크린 대표는 “오늘 아침 8시경부터 시작했는데, 오후 5시 정도면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A할머니 집에서 청소작업을 하고 있는 전난순 대표./출처=경기광역자활센터
A할머니 집에서 청소작업을 하고 있는 전난순 대표./출처=경기광역자활센터

'저장 강박'은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각종 물건을 계속 저장하는 강박장애의 일종이다. 경기도는 ‘저장 강박 의심 가구 지원 사업’을 통해 경기도 내 저장 강박이 의심되는 55세대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물건을 집에 쌓아두는 특성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가구 또는 2톤 이상의 쓰레기를 쌓아두고 있는 가구를 선정해 청소업종의 자활기업이 폐기물 처리, 주거 청소, 소독·방역 등을 진행한다.

이 사업은 저장 강박 의심 가구에게 청소, 방역, 소독 등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관계망 복원에 기여하고 자활기업이 저장 강박 의심 가구의 주거환경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성장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거둔다.

쌓아두고 사용하지 못하는 고장난 제품들을 트럭에 싣고 있다.
집에 쌓아두었던 폐기물들을 트럭에 싣고 있다.

누울 자리가 전부였던 집이 넓고 쾌적해졌다

이날 청소 대상자는 영구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A 할머니 집이다. 전 대표는 “아파트에 노인들이 오가는 작은 일터가 있는데, A 할머니가 놀러 와서 ‘우리 집에 좋은 물건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리하시는 분이 가보니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청소가 시급한 상황. 담당자는 할머니와 친해지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렇게 A 할머니 집 청소가 결정됐다. 본격적으로 청소를 하기 전에는 버릴 물건과 버리지 말아야 할 물건을 논의한다. 전 대표는 “답사하러 와서 할머니가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버리지 말아야 할 물건에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A 할머니의 경우 본인이 공부하는 성경책을 빼면 전부 다 버리라고 했다. 그래서 비교적 수월하게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 청소의 시작이다. 욕실과 베란다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약품과 스팀 처리로 집안에 묵혀있던 쓰레기에서 발생했던 냄새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을 거쳐 6평 가량의 A 할머니 집에서 나온 폐기물로 5톤 트럭이 가득 찼다.

청소가 완료된 A할머니 집./출처=경기광역자활센터
청소가 완료된 A할머니 집./출처=경기광역자활센터

“하기 싫은 일일까요?…사실 마음은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동안 청소업종 일을 하며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은 일을 더욱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전 대표는 "일을 하면 '전문가는 전문가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고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아 보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장강박 가구를 청소하는 일은 마냥 즐겁게 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전난순 대표 역시 “누군가는 이런 일 하기 싫다고 말할 정도로 쉬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하고 싶은 것 같다”는 말을 더했다. 정말 하기 싫었다면 일 자체를 받지 않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걸 내가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이런(저장 강박) 경우는 계속 있을 거니까 우리는 꾸준히 지역사회에 공헌하면서 살려고 해요.”

전난순 하남크린 대표./출처=전난순  
전난순 하남크린 대표./출처=전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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