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병원 의사로 활동하는 의사 선생님들 / 사진=송민수 소셜에디터
장난감 병원 의사로 활동하는 의사 선생님들 / 사진=송민수 소셜에디터

“수술을 해야 하니 수술대를 가지고 나와서 준비 해 주세요.”

“이거 다 우리 환자들인데요. 지금 수술 들어가려고 다 뜯고 있어요.”

권정숙 씨가 수술대와 수술용 도구를 꺼냈다. 바늘과 실, 건전지, 드라이버 등 보통의 수술 장비와는 달랐다. 옆 수술대에 있던 정원 씨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 보면 인형이 다 터지는데, 그 부분을 꿰매서 감추고, 솜이 부족하면 넣어 준다”고 했다. 옆에 있는 가방을 보여주면서는 “왕진 갈 때는 이 가방에 있는 진료 도구를 사용한다”며 웃었다.

어린이날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달 27일. 마을발전소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장난감 병원'을 찾았다. 이날 장난감 병원에서 만난 5명의 의사 선생님들은 가운을 갈아입고 진료를 준비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전동 장난감 파트의 의사 선생님들 / 사진=송민수 소셜에디터 
전동 장난감 파트의 의사 선생님들 / 사진=송민수 소셜에디터 

고장난 장난감을 고쳐주는 ‘장난감 병원’이 시작되기까지

장난감 병원은 상도동에 소재한 상도어울마당 2층 ‘포동포동 놀이터’에 있다. 장난감 병원이 만들어진 건 2015년 상도4동이 도시재생지역으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지역 공간인 상도어울마당을 주민공동이용시설로 활용하게 되자 주민 투표를 거쳐 어린이 놀이터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현재의 실내 놀이터가 탄생했다.

자신을 장난감 병원장이라고 소개한 김영림 활동가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고장나면 마을발전소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님이 주말마다 자원봉사로 장난감을 고쳤다. 자기 것을 고쳐달라는 아이들도 생겼다”고 했다.

“어느정도 장난감을 고칠 수 있게 되니, 어르신들에게 장난감을 고치는 기술을 가르쳐 주면 용돈도 벌고,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르신들을 장난감 병원 의사로 모신다’는 공고를 냈고, 많이 신청해 주셨어요.”

장난감 병원은 총 15명의 노인이 장난감 병원 의사로 함께하며 시작했다. 현재는 30명으로 늘었다. 함께하는 이들은 늘었지만 아무래도 노인이다 보니 (건강상의 이유로)가능할 때만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5~7명 정도다. 어르신들이기에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짧으면 2시간부터 길면 4시간 정도 일하는 것을 권한다.

수리를 맡긴 많은 장난감들은 건전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 사진=송민수 소셜에디터 
수리를 맡긴 많은 장난감들은 건전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 사진=송민수 소셜에디터 

“아이들이 얼마나 기대를 하면서 올까요?”

장난감 병원을 찾는 손님들은 영유아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장난감에 빠진 20~30대 성인들도 어릴 때부터 소중히 다뤄온 장난감을 수리 맡기기도 한다. 김영림 활동가는 “성인이 된 청년들이 색이 바래거나, 바느질이 닳은 애착인형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고 전했다.

“코로나 때문에 접촉이 어려워서 입원 환자(장난감)가 많지는 않지만 한 달 기준 평균 20개 정도의 장난감을 수리하는 것 같아요.”

장난감 병원의 치료는 진료카드를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진료카드는 되도록 장난감의 실제 보호자(어린이)가 작성한다(글씨를 쓰지 못하는 영유아들은 부모님이 대신 써 준다). 진료카드에는 장난감의 이름과 상태가 어떤지 등을 쓴다. 진료카드를 접수하면 진단을 한다. 바로 진료(수리)가 가능하면 금방 처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장난감을 입원 시키고, 완전히 수리하는데 며칠이 소요되는지를 파악해 보호자에게 전달한다.

진단이 끝난 후에는 장난감 무게를 측정한다. 어쩌면 버려졌을지 모르는 고장난 장난감을, 장난감 병원에서 고쳐 사용해 어느정도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절감하는지 측정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작년에 2000kg 정도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이후 전동 장난감과 인형을 구분해 각 파트별 선생님들에게 진료(수리)를 요청한다.

“막상 수리를 맡긴 장난감은 배터리가 없거나, 녹물을 칫솔로 닦아주기만 해도 고쳐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장난감을 치료(수리)하는 과정속에서 아이들이 아빠, 엄마와 소통하는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죠.”

장난감 병원 병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림 활동가./출처=송민수 에디터
장난감 병원 병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림 활동가./출처=송민수 에디터

노인과 아이가 같은 공간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하여

장난감 병원은 노인 돌봄, 일자리, 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장난감 병원을 찾은 아이들과, 의사 선생님으로 활동하는 노인들이 관계를 맺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영림 활동가는 “장난감 병원은 ‘장난감을 수리해 주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기보다 공동체 회복이 먼저였다”고도 했다.

“과거에 모르는 할아버지가 아이를 만졌다며, 아이 엄마가 페트병으로 할아버지를 때렸다는 뉴스를 본 적 있어요. 저는 양쪽 마음이 전부 이해가 되더라고요. 우리 아이를 낯선 사람이 만졌다는 것에 화가 났을 거고, 할아버지는 아이가 너무 예뻐서 만졌다고 하고요. 하지만 만약 이 두 사람이 같은 동네에 사는 주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때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장난감 병원은 아이(장난감 보호자)와 의사가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아이와 노인이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길에서 우연히라도 의사 선생님(노인)을 만나면 반갑게 손을 흔들 수 있도록 말이다. 김 활동가는 “이제는 아이 어머니들도 장난감 병원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더 호의적으로 대한다”며 “심지어 우리에게 등하원 도우미 일을 해줄 수 있는지 요청하기도 하다”고 했다.

인형 파트 의사 선생님이 인형의 터진 부분을 꿰매고 있다./출처=송민수 에디터
인형 파트 의사 선생님이 인형의 터진 부분을 꿰매고 있다./출처=송민수 에디터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아이가 길을 가다가 빨대를 아무 곳에나 버렸어요. 그 빨대가 바다로 흘러 들어갔고, 평화롭게 헤엄치던 거북이 콧구멍에 꽂혔어요. 거북이는 너무 아파했어요. 우리가 거북이 콧구멍에 꽂힌 빨대를 함께 빼줄까?

장난감 병원은 장난감 수리 외에 특별한 인형극을 진행한다. 올해 어린이날에도 수리가 불가능한, 버려진 장난감을 활용해 만든 인형으로 인형극을 할 계획이다.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김 활동가는 “바다를 오염 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버려진 해양 어구들이 많은데, 이 내용을 전달하는게 아이들에게는 어려워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 코에 빨대를 꽂고 발견된 거북이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인형극을 보면서 아이들이 내가 빨대(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거북이가 아플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쓰레기를 버릴 때도 조심할 수 있게 돼요.”

인형극에 사용되는 거북이와 사슴 인형 / 사진=송민수 소셜에디터
인형극에 사용되는 거북이와 사슴 인형 / 사진=송민수 소셜에디터

김 활동가에게 “주민들에게 바라는 것은 없는지” 묻자, “여러 지역에서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장난감 병원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활동가는 “의사 선생님으로 활동하는 어르신들 중에 흑석동, 사당동 등 비교적 먼 거리에서 걸어오시는 분들도 있다”면서 “동네마다 하나씩 우리와 비슷한 형태의 장난감 병원이 있으면, 지역 어르신들이 가까운 곳에서 장난감 병원 의사로서의 삶을 사실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바람을 전했다.

김영림 활동가의 짧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장난감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은 여전히 장난감을 소독, 수리하고 만지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이렇게 고쳐주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저희들도 너무 뿌듯해요.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행복한 일이잖아요. 그리고 요즘 환경 문제가 심한데, 장난감을 살아나게 해서 아이들이 환경과 장난감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게 너무 좋아요.” -4년차 장난감 병원 의사 권금송 씨  

장난감 병원의 치료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 촬영과 편집=송민수 소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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