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출판과 학계 출판은 전혀 다르다. 과학자들은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완성한 논문을 출판사에 기고하고, 출간이 허락되면 출판사에 돈을 낸다. 논문이 많이 읽힌다고 해서 출판사로부터 성과급을 받지 않는다. 저자는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지 않으며, 심지어 출판사에 들어온 논문을 무료로 리뷰해준다. 논문 표지 제작 과정에서는 경쟁도 한다. 논문 커버 이미지를 만드는데 100만원 내외의 비용을 쓰고, 이 이미지가 선정되면 출판사에 추가 비용도 낸다. 책 한권에는 겉표지, 뒤표지 심지어 중간 표지까지 있으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꽤 쏠쏠한 수입원일 거다.

과학 출판사들은 저자뿐 아니라 독자로부터도 돈을 받는다. 독자는 돈을 내야 논문을 읽을 수 있다. 돈을 안 내도 되는 오픈액세스(Open Access) 저널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저자가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더 많아진다. 예를 들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의 경우, 논문 한 편을 내는데 600만원 넘게 내야 한다.

학계 출판 시장에서는 어떻게 출판사가 이 정도로 갑이 될 수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출판사의 네임밸류일 거다. 일반 출판계에서도 출판사가 유명할수록 판매량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돈 많은 출판사는 그만큼 초기 홍보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이 책을 고를 때는 출판사의 지명도 때문에 구매하지는 않는다. 반면, 과학계만큼 출판사의 이름이 중요한 곳은 없다. 논문은 어느 출판사의 어떤 저널에 실렸느냐가 가장 중요한 평가 지수가 된다. 따라서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 저널의 영향력과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가 30이 넘는 저널들을 보유한 출판사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한 경쟁률은 매우 높다.

논문 편수를 늘리려는 경쟁도 만만치 않다. 예전부터 학계에서는 “논문을 내거나 아니면 사라지거나(Publish or Perish)”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임팩트 팩터가 높은) 논문을 (자주) 내면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음”으로 바뀌었다. 학계에서 지나친 논문 실적 경쟁과 개별 학자의 임용 전 실적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과학자 개인 입장에서는 높은 임팩트 팩터 저널에 질 높은 논문을 출간하는 일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꾸준히 많은 논문을 출간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고 가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추세에 과학 출판사들은 자매지를 늘리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렸다.

임팩트 팩터가 높은 논문을 자주 출간해야 하는 과학자들의 고충을 보여주는 이미지./출처=Pedromics 페이스북 페이지
임팩트 팩터가 높은 논문을 자주 출간해야 하는 과학자들의 고충을 보여주는 이미지./출처=Pedromics 페이스북 페이지

이 틈을 타 최근 학계에서는 ‘프레데터(Predator)’라 불리는 저널도 생겼다. 논문 게재 승인율을 높여 출판사가 이득을 취하는 거다. 과학 발전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프레데터와 일반 저널 경계에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MDPI(Multidisciplinary Digital Publishing Institute)’가 있다. 다른 전통 저널들과 같은 선상에 놓기에는 꽤 많은 차이가 있는데, 다른 프레데터 저널보다 논문 게재 승인율이 낮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나뉘어 있다. MDPI를 옹호하는 의견 중 자주 보이는 건 MDPI에 실제 양질의 논문이 많으며, 다른 유명한 저널에도 질 낮은 논문이 게재돼 있는데 왜 MDPI만 유난히 논란이 되냐는 거다. 그러나 MDPI의 정책이 논문의 평균적인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MDPI의 경우 전체 논문 중 17%가 20일 내 최종 게재 승인을, 45%가 30일 내 출간 승인을 받는다. 이렇게 제출-출간 기간이 짧은 데는 장점도 있지만, 피어 리뷰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파올로 크로세토(Paolo Crosetto)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그렇게 많은 논문이 마이너 리비전만 받을 수 있을까?” (논문을 제출하면 리뷰어들의 코멘트에 따라 마이너/메이저 리비전을 해야 한다. 메이저 리비전은 재실험 등 꽤 많은 수정을 요구하는 거고, 마이너 리비전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정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논문을 내거나 아니면 학계에서 사라지거나”라는 말이 통하는 한, 출판계는 이를 바탕으로 최대 이익을 내는 수익구조를 만들 거다. 이런 변화가 과학의 질적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참고

https://paolocrosetto.wordpress.com/2021/04/12/is-mdpi-a-predatory-publ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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