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부터 3일까지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가 서울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다. 세계협동조합대회는 전세계 협동조합인들의 대축제로 1895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1차 대회 이후 이번에 33번째 개최되며 지난해 125주년을 맞은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출범을 기념하고자 열린다. ICA는 1895년 창립된 국제 비영리 민간단체로 전 세계 112개국 318개 협동조합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번 대회에선 '협동조합 정체성에 깊이를 더하다'라는 주제로 4개 포럼이 진행되며, 20개 세부 주제를 놓고 각 나라의 협동조합 관계자들의 논의가 진행된다. 

이러한 세계협동조합대회에 앞서 사전행사로 11월 28일부터 30일까지 워커힐 호텔(아카디아)에서 <ICA 학술컨퍼런스와 국제 법률포럼>이 진행됐다. 학술컨퍼런스는 대회 주제를 연구자들과 실천가들이 토론하는 장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협동조합 정체성, 혁신, 기업가정신, 국제적공약, 유엔지속가능발전목표(SDG) 등으로 이뤄졌다. 국제 협동조합법 포럼은 협동조합 법 관련 국제적 현황을 공유하고 협동조합 정체성과 협동조합법과의 조화를 모색했다. 

필자도 협동조합 연구자로서 학교협동조합 세션에서 발표도 하며 여러 세션을 참관하고 국내외 연구자들과 의견을 나눴다. 이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주제를 이 글을 통해 <이로운넷>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성공회대 장승권 교수가 좌장을 맡아 협동조합 연구에 대한 성찰(과거, 현재 미래)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출처=ICA 학술컨퍼런스 중계 캡처
성공회대 장승권 교수가 좌장을 맡아 협동조합 연구에 대한 성찰(과거, 현재 미래)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출처=ICA 학술컨퍼런스 중계 캡처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과 코로나19 이후 협동조합 연구의 방향에 대한 논의
먼저 협동조합 연구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소개한다. 28일 열린 <협동조합 연구에 대한 성찰(과거, 현재 미래)> 세션에서 캐나다의 소냐 노빅코빅(Sonja Novickovic) 경제학 교수는 기존의 협동조합 연구들이 대부분 자본의 소유를 중심으로 접근한다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시장의 압력, 자본주의 형태와 같은 경영학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경향이 있는데, 협동조합에 대한 연구는 ‘이용자주의’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자신의 소득을 최대화하는 것 못지않게 사업체에 대한 의결권과 통제권에 관심을 두기에 자본 중심이 아닌 조합원들의 필요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경영학 중심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조합 자체의 결사체적 성격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경영학 중심이 아닌 사회학, 인류학과 같은 다양한 학문과의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다고 봤다.

일본의 아키라 쿠리모토(Akira Kurimoto) 호세이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의 협동조합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식량안보, 에너지안보, 양질의 일자리, 의료·사회서비스, 재정서비스에 대해 협동조합이 어떻게 대처할지 공동의 모색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서비스 분야의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금융거래를 하게 되는 등 여러 사회 변화가 생겼다고 봤다. 또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발전(SDGs) 목표 달성에 대해 소비자협동조합, 의료협동조합 등 협동조합의 각 분야별로 어떻게 기여할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협동조합 자본 조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

두 번째로는 협동조합의 중요한 과제에 대한 세션이다. 30일 열린 <협동조합의 자본 필요에 대한 대응>이란 세션에서는 협동조합 자본과 잉여 분배의 문제를 다뤘다. 메리 조키 부구와(Mary Njoki Mbugua) 케냐 협동조합대학 교수는 실증 데이터를 통해 협동조합 자본이 늘어날수록 외부 자금이 많아지고 조합원의 상호성과 통제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필자는 조합원에 대한 배당을 조합출자금으로 다시 전환하는 이른바 ‘회전출자’를 활용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부구와 교수는 케냐의 경우 조합원들이 개인 자산을 벌기 위해 조합 자체를 해산하려는 압력이 생길 수 있다고 답변했다.

성공회대의 강도현 연구원와 최우석 교수는 파생 투자 기법을 포함한 금융시장의 수학적 모형인 블랙-숄즈(Black–Scholes model)을 통해서 협동조합의 자기자본 가치를 분석하는 방법을 발표했다. 금융기관에서 협동조합에 대출할 때 활용할 수 있는 평가지표였는데, 협동조합의 경우 일반 기업과 달리 손실을 보더라도 신뢰, 자기책임, 자조라는 가치 등을 바탕으로 협동조합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블랙-숄즈를 통해서 평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였다. 전통적으로 금융에서 쓰는 기법을 협동조합 연구에 적용하는 시도가 독특했고 막연히 금융기관에게 협동조합 대출의 문턱을 낮춰달라는 요구보다 객관적인 접근 방식이어서 유용함이 크다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의 자본 필요에 대한 대응'이란 세션에서 캐냐의 메리 조키 부구와(Mary Njoki Mbugua) 케냐 협동조합대학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사진=주수원 Se교육연구소장
'협동조합의 자본 필요에 대한 대응'이란 세션에서 캐냐의 메리 조키 부구와(Mary Njoki Mbugua) 케냐 협동조합대학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사진=주수원 Se교육연구소장

플랫폼 협동조합, 학교협동조합에 대한 국가별 사례 소개

세 번째로 여러 분야별 독특한 협동조합에 대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28일 열린 <디지털 시대의 활용>이란 세션에서는 플랫폼 경제에 대비한 협동조합의 대응 방안이 모색됐다. 이탈리아의 프란세스카 마티넬리(Francesca Martinelli)  Doc Servizi 연구센터 연구원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전반의 플랫폼 협동조합을 소개했다. 

Doc Servizi는 1990년 베로나에서 설립된 플랫폼 협동조합이다. 음악, 예술, 연극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경제 활동을 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협력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현재 약 6000명의 조합원이 있고 이탈리아에 34개의 지부, 파리에 1개의 지부를 두고 있으며 2019년 기준 약 5800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프란세스카는 핀란드의 음악가와 뮤직프로듀서 중심으로 설립된 릴리스(Lilith) 협동조합, 벨기에의 스마트 협동조합, 네덜란드 기자들을 중심으로 모인 드 쿠퍼래티(De cooperatie) 등을 소개했다. 

미국의 지민선 콜로라도 덴버 교수는 가사서비스 플랫폼 협동조합인 업앤고(Up&Go), 우버에 대항하는 그린택시쿱(Green Taxi Coop) 그리고 작년에 만들어진 딜리버리 쿱(Delivery coop)을 소개했다. 미국도 코로나19로 인해 음식 배달이 증가했는데 우버 이츠(Uber Eats), 도어대시(DOORDASH), 그럽허브(GRUBHUB)와 같은 중계앱의 경우 음식 가격의 30% 이상을 떼가는 등 폭리를 취했다. 

이에 대항해 미국 켄터키주의 렉싱턴시에서는 협동조합 방식의 중개 방법으로 딜러비리 쿱을 만들었다. 이용자는 한 달에 25달러만 내면 추가적인 비용이 없는데 이는 도어대시나 그럽허브를 이용할 때 2번 정도의 배달 비용에 불과하다. 레스토랑도 월 220달러를 내면 추가적인 비용이 없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배달원들은 시간당 평균 20달러를 벌어들인다. 또한 협동조합 차원에서 20%의 이익이 레스토랑과 배달원에게 돌아간다. 현재 400명의 이용자, 7개의 레스토랑이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가사서비스 분야에서 우렁각시라는 앱을 활용한 플랫폼협동조합 라이프매직케어 협동조합이 있다. 유럽처럼 프리랜서들을 모아내는 협동조합이 모색되고 있는데 미국과 유럽의 사례가 주는 시사점이 컸다.

다음으로 30일 열린 <학교협동조합(School coop)> 세션도 주목할 분야였다. 2013년부터 시작한 학교협동조합은 현재 150여 개에 이르고 17개 시도교육청 중 10개의 교육청에 학교협동조합 활성화 및 지원 및 육성에 관한 조례가 있으며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는 학교협동조합지원센터가 설치됐다. 이날 크로아티아의 다보카 비도빅(Davorka Vidovic) 자그레브 대학교수와 경인고의 홍태숙 교사, 창덕여고의 정미숙 교사 등이 학교협동조합 가치와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크로아티아 사례가 눈에 띄었다. 크로아티아에는 1950년대부터 학교협동조합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최근 15년 사이에는 설립된 학교의 절반 가까운 600여 개에 학교협동조합이 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는 사회주의 이후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이 낮아지고, 특히 청소년들의 낮은 시민의식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학교협동조합이 문제해결에 큰 역할을 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처럼 학교협동조합을 통해 일과 교육이 결합되고, 청소년들은 기업가 정신을 배우며 협동조합 경험을 통해 민주시민 의식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크로아티아는 협동조합법에 학교협동조합 설립근거와 설립절차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올해 ‘학교협동조합 지원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의결된 상황이다. 외국의 사례가 주는 시사점이 있었다. 

세션에 참여한 전국학교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장이수 상임이사는 “외국의 학교협동조합을 말할 때 국내에는 말레이시아, 프랑스, 영국, 스페인 정도만 소개되었는데 크로아티아 학교협동조합을 알게돼 인상적이었고 학교협동조합의 가치와 고민은 나라가 달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한국의 학교협동조합을 외국에도 소개할 수 있어 좋았다"며 소감을 밝혔다. 

'학교협동조합(School coop)' 세션에서 크로아티아의 다보카 비도빅(Davorka Vidovic) 자그레브 대학교수가 온라인으로 참여해 발표하고 있다./ICA 국제 법률포럼 중계 캡처
'학교협동조합(School coop)' 세션에서 크로아티아의 다보카 비도빅(Davorka Vidovic) 자그레브 대학교수가 온라인으로 참여해 발표하고 있다./ICA 국제 법률포럼 중계 캡처

세계인권선언처럼 협동조합법의 보편적 헌장의 필요성 주장

마지막으로 국제 협동조합법 포럼을 소개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 일본 등 여러나라의 협동조합 관련 법 내용과 과제가 소개됐다. 그 중 나이지리아의 리드시티대학의 아지볼라 안쏘니(Ajibola Anthony)의 발표 주제가 흥미로웠다. 아프리카의 경우 제국주의의 영향과 독립 이후의 엘리트 중심 사회로 인해 민간 중심의 협동조합 운동이 쉽지 않은 상황이고 특히 제정된 협동조합법도 협동조합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ICA에서 세계인권선언처럼 협동조합법의 보편적 헌장을 만들 것을 주장했다. 발표자에게 그러한 헌장을 만들더라도 강제력이 없기에 효용성 측면에서 의문이라는 질문과, 각 나라별 특수성으로 인한 문제점은 없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전 세계 협동조합법의 기본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세계인권선언과 같은 일반적인 원칙을 선언하면 협동조합 법의 표준모델이 돼 아프리카를 비롯해 다른 나라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각 나라마다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다르더라도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기본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표준만 만든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들려줬다. 흥미로운 연구주제여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향후에도 교류를 하자고 마무리했다. 

이상으로 필자가 참여했던 세션을 위주로 <ICA 학술컨퍼런스와 국제 법률포럼>의 발표 내용을 소개해봤다. 글에 다 쓰지 못한 외국의 신선하고 흥미로운 협동조합 사례를 들으며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아이쿱을 비롯한 생협,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학교협동조합 등 한국의 다양한 협동조합 사례를 외국에 소개할 수 있어 뜻깊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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