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시장 및 대기업들은 모든 곳에서 쏟아지는 비판에 사면초가가 되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진 것은 주주가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 때문이므로, 이제는 주주만이 아니라 기업과 관계된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새로운 목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배려하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ESG 투자가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주리라 믿는다”는 블랙록 CEO 래리 핑크가 생각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기업의 목표는 주주가 아니라 이해관계자 이익을 충족시키는데 있다”고 주장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주창자들의 견해가 같은 것인지는 혼란스럽다.

특히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모름지기 이윤, 즉 주주가치 극대화를 해야 한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그럼 이제 자신들의 경영 목표를 무엇으로 바꿔야 하는지 헷갈릴 뿐이다. 그리고 이해관계자와 주주, 또는 이해관계자간 이해 충돌이 발생하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만 크게는 두 개 버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버전은 ‘도구적(instrumental)’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불리는데, 이 버전의 핵심은 기업의 장기적인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서 경영자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잘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 주장은 기업에 참여한 이해관계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기업들이 원래부터 추구하는, 또는 추구해야 하는 바이다. 기업들은 장기 이윤 극대화를 위해 소비자 가치 창출, 우수 인력 확보, 질 좋은 납품 기업 확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불량 제품을 생산하거나 노동력을 착취해 단기적으로 이익을 낸 기업들도 있지만,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실제로, 특히 지난 20-30년 간, 극단적인 주주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단기 실적주의가 득세하였고, 자본시장과 경영자들이 이해관계자 이익을 침해하면서라도 단기 이윤을 극대화하는 사례가 일반화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주주 자본주의의 이상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고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훼손하는 근시안적인 태도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도구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주주 자본주의의 개선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기업의 목표는 여전히 주주가치 극대화이며, 다만 이해관계자를 배려하지 않고는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기존의 주주 자본주의와 다르다.

그에 비해 둘째 버전인 ‘다원적(pluralistic)’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핵심은 이해관계자 이익 그 차체를 기업의 목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기업 경영자는 주주 포함 모든 이해관계자 가치의 합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때 주주가치를 희생하지 않고도 다른 이해관계자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면야 문제가 없지만, 다른 이해관계자 이익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면 주주 이익을 다소 희생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다원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이론이나 실행에 있어서 적지 않은 이슈들이 있다. 첫 번째로 대두하는 실행 상의 이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어떻게 만족시킬까 하는 문제다. 여러 이해관계자 중 누구 이익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것인지, 더욱이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이 충돌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문제는 기업 결정에 큰 부담을 안겨준다.

둘째, 보다 근본적인 이슈로, 다원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주장은 잘못되었고, 따라서 경영자는 고용주의 이익(=이윤 극대화)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주장도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기업이론에서는 분산된 주식을 소유한 주주들을 기업의 소유주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 이론에 따르면 기업은 이해관계자들 간 계약의 집합체인데, 이 계약에서 주주를 제외한 다른 참여자들에게는 미리 정한 금액을 지불하기로 약속하고, 주주는 기업 성과에 따라 나머지 금액을 이윤으로 가지며, 경영자를 임명하고 관리할 권한을 갖는다. 이렇게 볼 때, 주주는 기업의 소유주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잘못이다. 주주는 여전히 이사와 최고경영자를 임명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임명권자인 주주 입장에서 최고경영자가 이윤 극대화를 위해 행동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마지막 이슈는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에서는 당연히 주주 및 주주의 위임을 받은 이사회가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그러나 다원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즉, 기업 목표가 모든 이해관계자 가치의 합을 극대화하는데 있기 때문에, 의사 결정을 주주에게만 맡기면 안 되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예다. 만약 기업 목표가 이해관계자 가치 극대화에 있다면 이러한 견해도 일리가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목표와 지배구조 이슈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두 버전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다른 견해를 펼치고 있지만, 둘 다 ‘자본주의’ 체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다원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주장대로라면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주체인 주식회사라는 형태의 계약이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컨대 특정 이해관계자가 일회적으로 예상치 못한 손실을 보았거나 큰 기여를 한 상황이라면, 물론 주주가 자신의 몫이 줄어드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주주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몫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의사 결정권도 없는 계약을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이런 계약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주주가 있을까? 기업은 주주의 능동적인 역할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결국 이런 계약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그 기업은 깨지는 것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강도가 어느 정도건 기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건 공통적이다. 기업이 장기 이윤을 중시하고, 다른 이해관계자와 기업 성과를 공유하자는 방향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사회와 CEO는 단기 이윤에 집착하지 말고 이해관계자를 배려하고 장기적인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ESG 경영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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