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TV>에서 국정감사까지, 현재진행형인 사회주택의 정치적 갈등 국면은 뜻밖의 이슈 하나를 던졌다. 바로 공공임대주택과 주거공동체 멤버십 사이에서 벌어진 공정성 논란이다. 공동체 활성화를 기치로 둔 사회주택에서 커뮤니티 멤버십 가입(협동조합 조합원 등)이나 참여를 의무화해, 커뮤니티 활동을 하기 싫은 주거약자의 입주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이다. 지난 6년간 추진되던 정책의 맥락을 삭제한 채 정치적으로 ‘공정’을 운운하는 것이 저급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정치가 아닌 주택의 영역에서 보자면, 그동안 미뤄왔던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이제는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기존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라 소득과 자산만을 입주 요건으로 설정했다. 주택난이 심각하고 주거 취약계층의 기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적은 물량의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기 위해 설정한 합리적인 방향이었다. 공급 획일적인 LH의 시스템상, 물리적 공간으로의 집 이외의 편익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시대가 흘러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시선과 정책 기조도 변화가 필요해졌다. 공공임대주택이 물리적인 주택 공급에만 치중하다 보니 입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점차 게토(ghetto)화 되는 정책의 한계가 지속해서 지적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에 다양한 테마를 접목하고 정책의 색깔을 다채롭게 만드는, 이른바 ‘사회주택’이 공급됐다.

지난해 말 문을 연 사회주택 '안암생활.' 지하 공유 공간에 공용서가 ‘휴먼라이브러리’가 들어서있다. 이처럼 공공임대주택에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해 입주민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건 사회주택 정책만의 장점이다.
지난해 말 문을 연 사회주택 '안암생활.' 지하 공유 공간에 공용서가 ‘휴먼라이브러리’가 들어서있다. 이처럼 공공임대주택에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해 입주민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건 사회주택 정책만의 장점이다.

안타깝게도 ‘다채로운 임대주택’으로 개선된 정책은 오늘의 현장에서 딜레마에 직면한다. 공공임대주택을 희망하는 사람의 주된 입주 동기는 ‘저렴한’ 주택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나 우수한 주택 관리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커뮤니티 참여자로 입주를 제한하는 정책이 기존의 주택 물량을 떼어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세훈TV>는 이러한 지점을 악의적으로 이용했다. 사회주택의 협동조합 가입 의무화 시스템이 “일반 시민의 기회를 박탈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단, ‘공정성’을 박탈하는 사회주택이라는 프레임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정책 대상이 될 수 있는 특정인을 커뮤니티 가입에서 배제한다면 기회의 박탈이 맞다. 하지만 사회주택의 커뮤니티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가 주어질 뿐이다. 사회주택이 제공하는 운영 기조와 세부 프로그램은 입주 전 공고문에 안내되고 있으며, 심지어 커뮤니티 프로그램 참여를 의무화하는 주택은 당연히 없다. 세간의 비판과는 달리, 커뮤니티 가입은 ‘안정감’과 ‘네트워크’가 주는 만족도로 이어지고 있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 따르면, 입주자의 ‘커뮤니티 안정감’ 만족도는 5점 척도에서 4점을 상회한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포함되지 않은 공공임대주택과 대비가 명확한 것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복잡다단하다. 작은 정책 하나라도 집행 후의 영향이나 기대효과가 단일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주거복지정책의 목표는 단순히 소득과 자산이 낮은 주거약자의 비용 절감만이 아니다. 주거약자의 주거 상향, 관계와 정착이 필요한 1인 가구 청년, 지역사회 돌봄, 복지, 마을의 네트워크 확보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주택 정책과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을 소득과 자산만으로 제한한다면 수많은 가능성을 배제하게 된다. 비단 사회주택이 아니더라도 ‘창업인’이 입주 가능한 ‘도전숙’이나, 탈시설을 위해 시설퇴소자에 비율을 할당한 ‘발달 장애인 지원주택’ 같은 새로운 정책은 시도조차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제서야 공공임대주택 정책에서 다양한 수요자의 이야기가 모이고 있는데, 정치 현장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심각하게 우려스럽다. 민주적 논의를 통해 정책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시기에, 획일적인 모습의 과거로만은 회귀하지 말아야 한다. 공정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집을 통해 해결 가능한 사회 문제에 대한 방향과 철학과 원칙의 문제이다.

다채로운 임대주택과 주거 취약계층의 기본권 사이에서 주택 정책의 근본적인 취지인 후자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둘지,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풀어갈지,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가령 소득과 자산이 충족되고 적절한 임대료가 책정됐다면, 임대료 이외의 다양한 성과를 위해 일부 주택에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의무화하는 걸 인정하는 합의가 대표적이다. 불필요한 공정 이슈에 천착하지 말고, 소득과 자산만 두고 입주를 원하는 사람은 LH의 주택으로, 다양한 일상의 연계를 원하는 사람은 사회주택의 파스텔 색깔 중에 선택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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