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고 가정해 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난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인지하기 어렵다. 소리를 지르고, 비상벨을 울려도 긴급 상황을 인지하기 어렵다. 재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2009년~2014년까지 화재사고 발생 시 사상자 중 장애인 사망자 비중이 57.4%로 나타났다. 비장애인 비중인 12.1%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사고 위험이 높을 뿐 아니라 피해를 입는 정도도 비장애인에 비해 심각하다.

소셜벤처 이큐포올(EQ4ALL)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수어 안내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다. 2017년 11월 설립됐고, 2018년 수어 번역 솔루션을 선보였다. 국어 문장을 수어 번역 시스템에 입력하면 이를 아바타가 수어로 표현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지난 2019년 11월에는 수서역 고속철도(SRT)의 열차 및 역사 내 모니터와 청각장애인의 스마트폰으로 응급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문자·수어 안내문으로 보내 알리는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SRT 열차 내 안내방송이 수어와 자막으로 안내되고 있는 모습 / 출처=이큐포올(EQ4ALL)
SRT 열차 내 안내방송이 수어와 자막으로 안내되고 있는 모습 / 출처=이큐포올(EQ4ALL)

이인구 이큐포올 대표는 “일상생활 속에서 청각장애인들이 마주하는 어려움에 집중해 이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기업을 소개했다. <이로운넷>이 지난 2일 이인구 이큐포올 대표를 만났다.

이큐포올, “따뜻한 기술로 동등한 사회를 만든다"

“이큐포올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수어’에요. 저희는 DHH(Deaf and Hard of Hearing) 개인(individual)이라는 표현을 써요. 핸디캡(Handicap)이나 장애(Disability)라는 말은 지양하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담기 위해서예요.”

이큐포올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수어 번역 서비스를 개발하며, 인공지능과 최신 기술을 융합해 포용적 기술을 바탕으로 청각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 ‘따뜻한 기술로 동등한 사회를 만든다’는 미션을 바탕으로 ‘그때는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는 비전을 가졌다. 2명의 농인 직원을 포함해 총 22명의 직원으로 구성됐다.

이인구 대표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것과 달리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인식이나 번역 서비스 등은 제대로 개발돼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수어 번역 솔루션을 개발하게 됐다”며 “AI 기술을 통해 장애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겪고 있는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기술로 해결했어야 하는 일 중 아직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찾은 게 ‘이큐포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이큐포올 사무실에서 이인구 대표를 만났다.
지난 2일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이큐포올 사무실에서 이인구 대표를 만났다.

청각장애인 위한 수어 번역 플랫폼 구축

이큐포올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어 번역 플랫폼을 만든다. 수어 번역은 ‘원문 해설→수어 전문가의 번역 작업→수어 전문가의 모션 블랜딩(동작 삽입)’ 등의 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농인 90%로 구성된 수어 전문가들이 재택으로 수어 번역 작업을 1차적으로 마친다. 전문용어 등 추가 단어가 필요할 경우 모션캡쳐, 애니메이션 매핑(mapping), 애니메이션 수정 작업을 진행한다. 전문용어는 단어를 합성하는 경우가 많아서 최대한 단어를 풀어서 설명한다.

이큐포올의 아바타 수어 번역 서비스 / 출처=이큐포올(EQ4ALL)
이큐포올의 아바타 수어 번역 서비스 / 출처=이큐포올(EQ4ALL)

이인구 대표는 “대개 수어 동작을 만들 때 단어 하나 당 동작 하나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예를 들어 ‘돈을 주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돈’과 ‘주다’ 라는 뜻을 가진 수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돈을 주다’라는 의미를 가진 하나의 수어 동작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수어는 문법을 기반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수어 번역 엔진이 좋아지면 사람이 수정해야 할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엔진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2~3일 안에 책 한 권도 수정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농아동 가족을 위한 수어 교육 플랫폼 개발…아이들의 정서적 고립 방지

이큐포올은 청각장애인들의 생애주기에 맞는 솔루션을 통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족과의 소통 기회 제공 ▲동등한 교육 기회 제공 ▲업무 환경 접근성 제고 ▲생활 편의 접근성 제고 ▲문화향유 접근성 제고 등이다.

지난달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진행하는 '수어 기반 유아동 교육서비스 개발사업'의 주관사로 선정됐다.

농아동의 90% 이상은 청인 가족과 생활한다. 이때 가족이 함께 수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 아이들의 정서적 고립 문제와 발달지연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이큐포올은 농아동 가족을 위한 수어 교육 플랫폼을 개발했다. AI 셋톱박스를 통해 가족이 함께 즐기며 배울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 것.

이큐포올은 수어 교육서비스를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TV 스크린에 제공한다. 웹캠을 통해 수어 인식 시스템을 갖췄다. 셋톱박스 리모컨의 마이크를 통해 수어 사전 검색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농아동 가족의 상호 소통을 지원한다.

이인구 대표는 “이번 사업으로 농아동이 맞서야 하는 첫 번째 장벽을 낮출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며 “수어를 인식해 음성언어로 번역해주는 기술은 농인의 청인과의 커뮤니케이션과 업무 환경의 장벽을 제거할 뿐 아니라 각종 사물인터넷(IoT) 장비들과의 소통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어려움 겪는 청각장애인 지원 위해 고민 이어갈 것

이큐포올은 택시 기사와 승객 간 소통을 돕기 위해 지난달 모빌리티 플랫폼 ‘고요한M’을 운영하는 코액터스와 협약을 맺고 고요한 택시에 이큐포올 아바타 수어 번역 서비스를 탑재했다. 승객용 태블릿 스크린에 아바타 수어 번역 서비스를 제공해 승객이 택시에 탑승해 간단한 수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승객들에게 제공되는 수어 표현에는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등과 같은 간단한 인사말이 있다.

이큐포올은 지난달 '고요한M'을 운영하는 코액터스와 협약을 맺고 고요한 택시에 이큐포올 아바타 수어 번역 서비스를 탑재했다. / 출처=이큐포올(EQ4ALL)
이큐포올은 지난달 '고요한M'을 운영하는 코액터스와 협약을 맺고 고요한 택시에 이큐포올 아바타 수어 번역 서비스를 탑재했다. / 출처=이큐포올(EQ4ALL)

“승객들이 기사님들께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내리는 게 아쉬웠는데, 수어 번역 서비스를 탑재해, 승객들이 택시에서 내리며 수어로 기사님들께 이동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기사님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아요.”

지체장애인 및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설치된 각 지역의 베리어프리 키오스크에 청각장애인의 원활한 사용을 지원하기 위해 아바타 수어 솔루션도 탑재해 제공하고 있다.

또 청각장애인들의 원활한 복약을 위한 지도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은 주로 수어로 소통하기 때문에 한국어 문해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약 봉투에 적혀 있는 정보를 수어로 전달받아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복용하는 약물 등을 수어통역사나 가족들에게 공개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것. 이 대표는 “약 봉투에 적힌 정보를 청각장애인들이 타인의 도움 없이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요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찾아내는 것”

이큐포올 이인구 대표.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이큐포올 이인구 대표.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이 대표는 “‘필요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찾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청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워하는 부분을 기술로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라는 것은 바뀌지 않겠지만, 이큐포올의 목표와 나아갈 방향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뀔 것”이라며 “이큐포올의 첫 프로젝트는 수어였지만, 향후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해 우리가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 안에 묶어서 제공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늘 하는 이야기인데, 젊고 똑똑한 친구들이 소셜벤처에 더 많이 뛰어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저와 같은 기성세대들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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