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1972년 10월 17일(비상계엄 선포와 국회해산)에 민주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다.” 

천주교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을 지낸 지학순 주교가 1974년 7월 23일 발표한 양심선언 중 일부.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공안조작사건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과 관련, 1974년 7월 6일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고 그해 8월 12일 긴급조치 1·4호 위반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는 과정에서 발표한 것이다. 

이보다 한참 앞선 1971년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지학순 주교는 원주교구 원동성당에서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등 1500여명과 함께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특별 미사와 규탄대회’를 열고, 독재정권에 정면으로 저항했다.  

어두운 시절, 그는 교구장의 문장 표어 ‘빛이 되라’와 일치하는 삶을 살며 ‘자유권’을 위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여기에만 천착하지 않고 민중의 ‘생존권’을 위해,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자’라는 사목지침 아래, 가난한 민중의 삶을 개선하려 이들을 조직하고 함께 학습하며 협동조합 활동 등을 전개했다. 

사단법인 지학순 다니엘(대표 박상용 신부)과 원주지역 28개 시민사회단체가 지학순 주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생애와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행사를 오는 9월 1일부터 10월 2일까지 진행한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행사를 위해 ‘지학순 주교 100주년 기념사업 시민사회추진위원회(공동추진위원장 이창복, 한경호, 현각, 정대화, 이계열, 곽호인, 이하 시민사회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시민사회추진위원회는 “성직자를 넘어 지역사회 낮은 곳을 살피며, 교육·복지·문화의 초석을 놓는 일에 헌신한 지학순 주교의 삶과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자는 취지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라고 밝혔다. 

2019년 진행된 선종 26주년 추모미사 장면(사진 : 천주교 원주교구)
2019년 진행된 선종 26주년 추모미사 장면(사진 : 천주교 원주교구)

‘다시, 빛으로’를 주제로 9월 1일 오후 3시 원주문화원 전시실에서 개막식이 열린다. 같은 공간에서 한 달 간 사진·유물 전시회와 미술전을 운영한다. 9월 11일과 12일에는 사회적 경제 조직이 참여하는 ‘생생마켓’과 함께 지학순 순례 윷놀이,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시민 참여 행사가 예정돼 있다. 100주년 기념 화보집과 미술전 도록도 발간한다. 

9월 14일부터 16일까지는 ‘기억 : 지학순 주교와 삶과 활동, 계승 : 살아갈 100년, 기억과 계승의 실천’이라는 주제로 상지대학교 민주관에서 학술대회가 펼쳐진다. 지학순 주교의 삶이 가리키는 오늘의 과제를 모색하는 자리이다. 

한 달 행사는 지학순 주교를 기리는 행진으로 마무리한다. 10월 2일 오전 10시 옛 원주역을 출발해 원동성당까지 걷는다. 전체 행사에 관한 자세한 소식은 홈페이지(fiatlux.or.kr) 또는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지학순(다니엘)’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온라인 참여도 가능하다.

사단법인 지학순 다니엘 대표인 박상용 신부는 “지역사회를 향한 주교님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이렇게 시민사회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뜻 깊은 행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며 “종교를 넘어 모든 지역 주민과 원주 교구민들이 함께 주교님을 기억하고 배워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학순 주교는(1921~1993)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태어났다. 24년 2월 25일 중화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함경남도 덕원신학교와 서울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1952년 12월 15일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노기남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56년 10월에 로마 울바노 대학에 유학, 1959년 6월 30일위 이 대학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 부산 초장동 교회 주임신부 등을 거쳐 1965년 6월 29일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착좌했다. 가톨릭교회의 큰 변혁을 일으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에 한국 주교단 일원으로 참석하기도 한 지 주교는 이후 공의회 정신을 이어받아 1993년 3월 12일 72세 일기로 선종하기까지 ‘문을 열고 세상에 나아가는’ 교회를 실천했다. 그가 신도들과 함께 행한 민주화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 역시 이와 같은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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