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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호철이 형제는 10년 넘도록 그룹홈에서 살았다. 처음 왔을 때만도 일거수일투족 사회복지사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무리 없이 해낸다. 호철이 형제는 오는 9월 그룹홈을 떠나 협동조합공터가 지은 공유주택(공터2호)으로 이사간다.

대구 광역시 각산동에 위치한 공터2호. 현재 9월 입주를 목표로 내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대구 광역시 각산동에 위치한 공터2호. 현재 9월 입주를 목표로 내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공터2호는 발달장애인 자립 생활의 새로운 주거 모델로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형태다. 1층에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고 2층과 3층은 주거공간이다. 층별로 남녀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총 8명이 살수 있다. 꼭대기 다락방과 옥상은 지역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개방 공간으로 주민행사도 진행하고 바베큐파티도 가능하다.

공터2호 옥상. 빔을 쏘면 비디오 상영도 가능하다
공터2호 옥상. 빔을 쏘면 비디오 상영도 가능하다
다락방과 연결된 옥상 입구. 지붕이 드리워져 햇살을 피하거나 비를 그을 수도 있어 작은 규모의 야외 모임에 안성맞춤이다.
다락방과 연결된 옥상 입구. 지붕이 드리워져 햇살을 피하거나 비를 그을 수도 있어 작은 규모의 야외 모임에 안성맞춤이다.

 

비장애인 룸메이트를 구합니다.

김정화 협동조합공터 이사장은 “입주가 확정된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어느 정도 독립생활이 가능하며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한 분들”이라고 소개했다.

"장애인 입주자들을 늘 곁에서 지켜주고 도와줘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은 활동지원사나 가사도우미분 등이 도와주실 겁니다. 비장애인은 룸메이트(옆방에 사는 사람) 역할만 해주시면 돼요.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예를 들면 갑자기 아프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119든 복지사에게든 연락을 해주시면 돼요.”

김정화 협동조합공터 이사장이 공터2호 공사현장을 방문해 내부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김정화 협동조합공터 이사장이 공터2호 공사현장을 방문해 내부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공유 주택은 총 90평 규모로 층마다 방 4개에 부엌과 거실, 세탁실, 화장실 등 공유 공간이 구비돼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는 25만 원이다. 김 이사장은 “공터 2호의 탄생은 2020년 행정안전부의 지역 자산화사업에 응모해 5억 원을 빌릴 수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요소가 됐지만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손을 잡아준 건 지역주민들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위기 때마다 빛났던 마을공동체 정신

“대구 동구 안심마을에는 2008년부터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협동조합이 생겨났고 상생 협력의 시간을 보낸 지도 어언 10년이 넘습니다. 공터2호를 지으면서 공사비를 마련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되자 입주가 완료되면 보증금을 받아 갚겠다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자는 못 드린다고 했는데 글쎄 2억7000만 원이나 모였어요.”

대구 동구 안심마을공동체 지도. 대구 광역시 동구에 있는 사회적경제조직들과 풀뿌리 주민자치 조직, 사회복지 기관들의 네트워크로 협동과 자치를 통해 모두가 상생하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 이미지 제공 = 협동조합공터
대구 동구 안심마을공동체 지도. 대구 광역시 동구에 있는 사회적경제조직들과 풀뿌리 주민자치 조직, 사회복지 기관들의 네트워크로 협동과 자치를 통해 모두가 상생하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 이미지 제공 = 협동조합공터

협동조합공터는 2013년에 결성된 주택 건물 협동조합이다.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딱 2개의 사업을 진행했다. 사업이 쉽지 않고 진행할 때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뜻이다. 첫 번째 사업은 건물을 신축한 후 임대하는 사업이었다.

“마을공동체 안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공간 마련이 힘들었어요. 특히 복지 기관들의 경우 지원사업을 통해 시설을 보강할 수 있었는데 집주인이 허락하지 않아 무산되곤 했죠. 그때 몇 팀들이 모여 임대료 낼 돈으로 같이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거기서 나오는 임대료로 빚을 갚아나가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팀들 중에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회복지 기관들이 주축이 돼 주택 건물 협동조합을 결성했고 발달장애인 부모와 복지기관 직원들, 안심마을공동체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십시일반 2억여원의 돈을 모아 땅을 샀고 그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리려 했는데 실패했어요. 어떤 금융기관도 주인이 여럿인 협동조합은 책임이 불분명하다며 대출해 줄 수 없다고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시공사 사장님이 전면에 나서줘 이른바 얼굴 신용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죠.”

대구시 동구 율하동로 28길에 자리잡은 공터1호. 주택건물협동조합 공터는 이 건물에서 월 400만 원의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구시 동구 율하동로 28길에 자리잡은 공터1호. 주택건물협동조합 공터는 이 건물에서 월 400만 원의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4층 규모의 공터1호에는 현재 장애인 관련 비영리단체 4곳이 입주해있다. 지금은 잘 굴러가고 있지만 초창기만 해도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준공을 받아놓고도 6개월이나 입주가 늦어지기도 했다.

공터1호 설립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 김 이사장은 " 반대의사를 표시한 주민들 대다수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장애인 시설에 대한 막연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 제공=협동조합공터
공터1호 설립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 김 이사장은 " 반대의사를 표시한 주민들 대다수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장애인 시설에 대한 막연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 제공=협동조합공터

“‘장애인 복지시설이 동네에 들어오는 걸 반대한다’라는 플래카드가 수십 장 내걸리고 일부 주민들은 구청을 찾아가 항의했어요. 결국 구청에서 '주민의견을 청취하겠다' 했고 이때 ‘장애인들도 어디선가 교육을 받아야 할 것 아니냐’면서 안심마을공동체 사람들이 적극 나서줬지요. 압도적으로 공터1호를 찬성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

발달장애인 스스로 살고 싶은 집을 꿈꾸다

이때의 경험은 다양한 변화를 불러왔다. 모두가 안될 거라고 도리질을 쳤던 공터1호가 잘 굴러가는 걸 보면서 마을에서 공간이 필요한 협동조합이나 풀뿌리 조직들이 있으면 공터를 찾기 시작했다. 현재 조합원은 84명으로 늘어났고 발달장애인과 인연이 있는 조합원 말고도 지역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졌다.

또 하나의 변화는 발달장애인 내부에서 일어났다. 집이라고 하면 시설, 그룹홈, LH만 알고 있던 발달장애인들 사이에 공유주택이란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혼자 LH 아파트에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이 친구들과 같이 살고 싶다면서 그린 그림. 그는 공터3호를 지어달라고 요청하면서 함께 살고 싶은 친구들 명단과 임대보증금까지 세세하게 적어놓았다./ 제공=협동조합공터
혼자 LH 아파트에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이 친구들과 같이 살고 싶다면서 그린 그림. 그는 공터3호를 지어달라고 요청하면서 함께 살고 싶은 친구들 명단과 임대보증금까지 세세하게 적어놓았다./ 제공=협동조합공터

“발달장애인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공터3호를 지어달라는 요청이 단톡방에 올라왔어요. 발달장애인들 가운데는 독립해서 LH 주택에 혼자 사는 분도 있고, 아직 자립생활주택에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인기 발달장애인들이 제일 행복해 보일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당사자들끼리 어울릴 때였어요. 우리도 마음 통하는 친구들과 있을 때 제일 행복하잖아요.. 백신 접종 때 몇몇 분들은 주사를 맞은 친구가 걱정돼 그 집에 몰려가 함께 밤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이런 동료들끼리의 지지 체계와 관계망들이 그들의 자립 생활을 더 풍성하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기에 공터 3호를 지어달라는 요구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김 이사장은 “결혼한 발달장애인 부부의 경우 결혼 그 자체도 새로운 환경이지만 아기를 낳고 나면 양육의 문제도 있다”면서 “이를 커뮤니티의 힘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집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고민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협동의 방식으로 공간 문제 해결하고파

협동조합공터란 이름에 담긴 '공터'는 협동의 의미와 공익성을 추구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김 이사장은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사는 삶 그리고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집을 꿈꾼다”라고 설명했다.

“혈연 중심의 가족만이 아니라 비혈연 가구들이 모여 집 안에서 또 하나의 가족을 이루며 살길 바래요. 집이 누군가의 자산을 증식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집이었으면 합니다. 이를 어떤 사람은 사회적 부동산이라 하고 지역 자산화, 시민 자산화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솔직히 전 그 개념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개인의 소유 형태로 부동산의 공익성을 추구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협동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입주일을 두어 달 남긴 시점에 공터2호는 2가지 당면 과제가 남아있다. 공유 공간을 채울 가전제품이나 가구 같은 살림살이 장만과 비장애인 입주자 모집이다.

“필요한 살림살이는 목록을 작성해 당장 내일부터 후원을 요청하러 다닐 겁니다. 비장애인 입주자 문제는 이보다 좀 더 어려울 수 있어요. 딱 4명인데 설마 구하지 못하기야 하겠어요? 발달장애인과 함께 지낸다는게 어쩜 다소 불편할 일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장애라는 옷을 한 꺼풀 지워내고 바라보면 그 안에 진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할 거에요. 그런 경험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계속 만나고 부딪혀갈 때 깨닫게 되죠. 내 안에 벽을 허물고 싶은 청년들 누구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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