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현지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를 비롯한 시민들이 철거 명령 철회를 요구했고, 결국 베를린 시는 소녀상 철거 명령을 철회했다.

같은 시기, 서울시 강서구 마을기업 모해교육협동조합(이하 모해교육)은 소녀상의 의미를 독일로 전하기 위한 일을 꾸미고 있었다. 최정희 모해교육협동조합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지극히 사회적경제기업 다운 방식으로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해교육협동조합 최정희 대표.
모해교육협동조합 최정희 대표.

2020년 10월: 코리아협의회에 메일 전송

이번 프로젝트는 강서구에 소재한 한 고등학교 교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지역에 소녀상이 있으니 지역 투어를 해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영일고등학교 이금천 선생님에게 의뢰를 받고 회의를 했어요. 단순하게 국내에서 소녀상의 의미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에 직접 소녀상의 의미를 전달하자는데 의견을 모았어요.”

모해교육은 독일 코리아협의회에 직접 메일을 보내 독일 시민들에게 소녀상의 의미를 알리기 위한 사업에 대해 설명했고, 긍정적인 답신을 받았다. 최정희 대표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나비팔찌와 엽서에 소녀상의 의미를 담아 전달해 독일 시민들에게 알리고싶다는 취지로 코리아협의회에 메일을 보냈다”며 “긍정적인 답신을 받은 뒤 본격적으로 엽서와 팔찌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엽서는 소녀상 등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그림을 삽입했고, 팔찌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나비를 넣었다.

밑그림이 그려진 엽서에 색칠을 하는 학생들./출처=모해교육협동조합
밑그림이 그려진 엽서에 색칠을 하는 학생들./출처=모해교육협동조합

2020년 12월: 참여 학생들, 독일로 보낼 팔찌와 엽서 제작

사업은 영일고등학교(총 13반)와 덕원여고(총 3반) 1학년 학생들이 만들고 그린 작품(팔찌와 엽서)을 독일에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작품을 만들기 전에는 학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직접 만든 작품을 독일에 보낸다는 내용의 수업도 진행했다.

최 대표는 “엽서에는 밑그림을 우리가 그려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색칠할 수 있게 하고, 나비팔찌는 키트처럼 아이들에게 나눠줬다”고 했다. 그는 “전달한 작품을 독일 시민들에게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일부 수정이 많이 필요한 작품을 제외하고, 100여개의 팔찌와 엽서세트가 전달됐다”고 말했다. 나비팔찌에는 소녀상의 의미를 영어로 작성해 동봉했다.

학생들은 서툴지만 정성껏 작품을 만들었다. 최정희 대표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해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의 반응을 전해들었다”며 "다들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학생들에게 엽서와 팔찌 키트를 각각 두 개씩 나눠주며 ‘하나는 가져도 된다’고 말했지만 두 개 다 만들어 보낸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며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밑그림이 그려진 엽서에 색칠을 하는 학생들./출처=모해교육협동조합
밑그림이 그려진 엽서에 색칠을 하는 학생들./출처=모해교육협동조합

2021년 5월: 독일에서 감사함 전하는 동영상 도착

올해 3월, 팔찌와 엽서를 받은 독일 코리아협의회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감사의 표시를 하고싶다고 했고, 5월 동영상으로 고마운 마음을 영상에 담아 보내왔다.

영상을 통해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모해교육이 강서구 고등학생들과 함께 정성어린 엽서와 팔찌를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코로나 때문에 아직 선물을 배포하고 있지 못해 아쉽다. 락다운이 풀리면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선물을 배포하려 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학생들이 만든 나비팔찌와 엽서./출처=모해교육협동조합
학생들이 만든 나비팔찌와 엽서./출처=모해교육협동조합

"사회적경제기업이어서 가능했던 일"

이번 사업은 정부 지원 사업이 아니다. 고등학교 교사와 모해교육이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모해교육 조합원들은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정희 대표는 “우리는 마을기업이니까”라며 웃었다.

“만약 우리가 마을기업이 아니었다면 지역에 관심이 많지 않았겠죠. 협동조합이 아니었다면 실현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고요. 이번 사업은 우리가 사회적경제기업이어서 가능했던 거예요.”

한편 모해교육은 이 외에도 지역교육복지센터와 함께 취약계층 중 경계성 지능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가족지원과 개별지원으로 나눠 진행됐으며, 부모교육을 진행하고, 아동들이 직접 제품을 구매해보기도 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최정희 대표는 “경계성 지능장애 아이들은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없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다. 반면 사회성, 공감·학습능력이 떨어져서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며 경계성지능장애 아이들에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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