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어느 날 저녁 한식을 좋아하는 일본 친구와 홍콩 번화가에 있는 한국식당에 갔다. 친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주변을 둘러보니, 광둥어, 영어, 일본어, 만다린어, 한국어 등 테이블마다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인종이 밀집한 홍콩에서는 다양한 언어가 한꺼번에 들리는 게 평범한 일상이다.

전세계에 6000여개의 언어가 있다.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수화도 있다. 수화의 종류도 대략 130~300개로 알려진다. 깊은 산 속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끼리 소통하기 위한 휘파람 언어(whistle language)도 70여개다.

이처럼 소통을 하기 위해 수많은 형태의 언어가 존재한다. 그러나,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때, 혹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 부딪힐 때가 있다. 소통되지 않는 사람들과는 ‘공감’하기 위해 수단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삶에 대한 교훈은 음악테라피 시간에 만나는 클라이언트들의 반응을 통해 얻는다.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과 음악테라피가 가능하다고 하면 대부분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각장애인과의 소통 수단은 수화나 글, 그림과 같이 시각적인 것만 가능하다는 편견 탓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주요한 음악테라피 요법은 바로 ‘진동’을 이용한다. 여러 가지 악기를 이용한 진동과, 영화관 진동의자와 같은 원리로 음악 볼륨을 이용한 진동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내면의 감정들을 교류한다.

홍콩의 많은 특수학교에서는 방과 후 활동으로 자폐 학생들을 위한 음악테라피 시간을 운영한다. 자폐 학생들과의 소통은 언어보다는 음악이 큰 효과가 있다. 음악은 시작과 끝이 명확하고, 규칙적인 리듬과 형식이 있으며, 감각을 자극하거나 완화해줄 수 있는 소리의 높낮이와 같은 여러 음악 요소, 다양한 악기가 있기 때문이다. 특수학교에서 진행되는 음악테라피 시간은 그룹으로 진행돼 함께 노래를 불러도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자폐증세 정도에 따라 음악으로도 소통 가능 여부에 차이가 나고 여러 가지 반응에 맞춰서 필요한 요법을 적용해야 한다.

먼저 악기 소리로 주의를 끌면서 노래를 시작한다. 음악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학생들이 하나, 둘씩 늘어간다. 이에 비해 자기만의 언어를 중얼거리며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이럴 때는 부르던 노래를 갑자기 멈추어 시선을 끈 후, 그 학생이 중얼거리던 단어나 의성어로 노래 가사를 바꾸어 불러주면 웃으면서 곧잘 따라 부르는 모습을 종종 본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지만 그들의 언어로 노래를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몇 년 전 한국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홍콩 가수를 추모하며 홍콩노래를 부른 한국 가수의 영상은 지금까지도 홍콩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모든 게 싫다고 늘 화를 내며 소통을 거부하던 고객이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색깔로 음악테라피 공간에 작은 변화를 줬더니 표정이 밝아졌다. 침묵을 존중하며 호흡과 표정 변화에 맞춘 피아노 연주는 그녀의 마음을 여는 데 커다란 영향을 줬다. 헤어지던 날, 말없이 나의 손을 따뜻하게 잡던 모습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언어로 한계를 느낄 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매개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상대방이 좋아하는 색깔, 공간, 냄새, 맛, 음악, 소리, 촉감 등과 같이 작지만 섬세한 관심이 필요한 것들, 나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여 공유해보자. 소소한 것에서 시작된 작은 공감의 몸짓은 언어 소통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또한, 소통 한계의 극복은 좋은 관계의 확장으로 이어져 더불어 사는 삶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