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회적경제 운동을 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평등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가서 이런 얘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 이성과 거대 이론에 대한 회의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어렵긴 해도 우리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함께 토론해야 한다. 물론 나는 실현이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내가 꿈꾸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은 사회 속에서 경제의 의미를 찾고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다.

로치데일협동조합이 위대한 것은 조합원으로부터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품질과 중량을 속여 팔던 상업자본가들에 맞서 시민의 필요를 조직한 데 있으며, 20세기 초반 전 세계에게 제일 큰 기업 중에 하나로 성장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제적 생산과 분배는 사회로부터 분리된 시장에서만 배타적으로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 역전된 사회와 시장의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물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가는 길이 처음부터 거창할 순 없다. 시민들도 처음부터 잘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희망을 말하고 함께 하려면 작은 가능성이라도 계속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시민들이 "아! 이런 것도 사회적경제로 할 수 있구나" 라고 인식하는 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맞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협동조합프랜차이즈 등을 통한 소상공인 문제의 해결, 기후위기 환경문제에 맞서는 소셜벤처, 플랫폼에 맞서는 생활협동 플랫폼협동조합 등, 아직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는 많고 사회 속에 이런 경제 활동을 재착근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맞서 이런 일들이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상상을 동원하여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적경제운동의 본질이다.

하지만 사회적경제가 모든 사회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기에, 가능한 경제를 사회에 재착근하려고 시도하는 세력들과 연대는 필수적이다. 예를들면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돈벌이 경제가 아닌 실체적 경제, 공동체가 요구하는 노동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경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발견하고 공통의 이해와 필요를 가진 사람들의 자조를 통해 협동의 지역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사회의 접착제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이런 생각에 도달한 것은 지난 봄 사회적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여 8차례에 걸쳐 진행한 토론의 결과이다. 합의에 이른 것도 있고 여전히 논쟁 중인 것도 있다. 잘 정리해서 연말에 사회적경제 정체성 선언을 준비하기로 했다.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거듭날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으자는 의미로 사회적경제 정체성 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내게는 여전히 진행 중인 생각을 나누려 한다.

토론 중 ‘사회적경제의 위기를 사회적경제가 과도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면서 제도화’ 되었고, 이제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것’이 되었다는 반성이 있었다. 또 "사회적경제는 왜 혁신성을 양보하고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것이 되었을까?"에 대한 질문이 계속됐다.  

대개 그 시작을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이후 시장중심 경제학 원리를 따르는 경제 및 경영학계와 컨설턴트가 정부의 지원과 함께 사회적경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결정적 국면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나는 이런 식의 진단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런 논리라면 해법은 첫째,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면서 둘째, 사회적경제 내에서 반성이 일어나 사회적경제가 태동했던 시기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로를 통해 사회적경제가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이렇게 되면 강제적, 모방적으로가 아니라 자발적, 합리적으로 제도화의 길을 선택한 의미를 복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성찰해야 할 지점은 사회적경제가 뭔지도 모르는 정부, 정치인, 경제학자, 경영학자, 사회적경제기업가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이론가들의 혁신성, 대중성의 부족이어야 한다. 뼈 아프지만 얼마나 나의 주장에 매력이 없었기에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인지 물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현장이 누군가에게 현혹되어, 정부의 강압에 못 이겨, 아니면 지원만 바라고 사회적경제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무엇을 현실로 구현하여 시민들과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과부적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이후의 국면을 돌아보며 감히 생각해 본다.

왜 사회적경제의 개념과 원칙을 잘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경제기업의 운영에 뛰어난 이론가, 기업가는 출현하지 못했을까? 만약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회적경제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하여 나는 유능한 사회적경제이론가, 사회적경제정책가, 사회적경제기업가의 출현을 소망한다. 나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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