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소셜벤처의 허브인 서울시 성동구 헤이그라운드를 방문했다. 농인 문화예술 예비사회적기업 '핸드스피크'의 연습 현장을 참관하고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핸드스피크는 내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농인 축제 ‘클랑 더이(Clin d’Oeil, 윙크) 2021’에 초청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핸드스피크의 활동에 힘입어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선정됐다.

서울시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핸드스피크 연습 현장을 방문한 황희 문체부 장관./사진=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핸드스피크 연습 현장을 방문한 황희 문체부 장관./사진=문화체육관광부

한국 수어 문화 콘텐츠 제작에 앞장서는 핸드스피크. ‘2020 함께하는 기업 어워드 & CSR 필름페스티벌’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상,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이 주최한 ‘제3회 장애인 일자리창출 공모전’ 대상 등을 수상한 실력자 팀이다. 지난 2월에는 제1회 ‘한국 수어의 날’ 기념식을 맞이해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축하 공연을 했다.

핸드스피크는 내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농 축제 ‘클랑 더이(Clin d’Oeil) 2021’에 초청됐다. 우리나라가 주빈국이다./사진=클랑 더이 홈페이지 캡처
핸드스피크는 내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농 축제 ‘클랑 더이(Clin d’Oeil) 2021’에 초청됐다. 우리나라가 주빈국이다./사진=클랑 더이 홈페이지 캡처

핸드스피크를 이끄는 정정윤 대표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2010년 공연예술분야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는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농인 청소년들에게 연습실을 빌려주고 댄스팀으로 만들었다. 그게 핸드스피크 초기 구성원인 지연이, 혜진이, 희화다. 그 팀의 담당자였던 정 대표는 3명과 언니 동생으로 지내다가 해외 공연에 함께 다녀오고 나서 창업했다. 국내 농인이 문화예술 분야에 더 많이 진출하는데 일조하고 싶어서다.

2018년 3명으로 시작했는데 2년 반 만에 20명으로 늘었다. 수어 뮤지컬부터 수어 뮤직비디오까지, 이들이 만드는 수어 문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청인 중심 예술 사회를 비집고 농인 무대를 만드는 중이다. 핸드스피크를 이끄는 정정윤 대표는 그 공을 인정받아 올해 2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의 첫 펠로우로도 선정됐다. 지난 3월 19일, 정 대표를 서울혁신파크 상상청 핸드스피크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애’ 프레임 걷어야...‘동정’ 말고 ‘인정’의 박수 원한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문화예술업계에 타격이 컸던 한 해다. 핸드스피크는 수어 콘텐츠로 돌파구를 찾았다. 콘텐츠를 유튜브 등 SNS 채널로 배포하면서 해외 팬이 늘었고, 영상 편집 노하우도 생겼다. 다른 기업과의 협력사업도 많이 했다. 정 대표는 “오프라인 공연 매출은 줄어들며 위기가 왔지만, 온라인으로 매우 많은 기회를 발견했다”며 “2020년 한 해 목표로 잡았던 매출을 1분기에 다 달성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전히 ‘인정’보다는 ‘동정’의 박수를 받는 듯하다. 정 대표는 한국에서 장애 예술이 아직도 ‘장애를 극복한 예술’로만 소개되며 비주류 취급을 받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해외는 축제 규모부터 달라요. 2016년에 일본, 2017년에 홍콩으로 지연이, 혜진이, 희화를 따라갔어요. 한국 대표 팀으로 공연에 초청받았거든요. 저희는 넷이 달랑 가방만 들고 갔는데, 일본, 홍콩, 중국 등에서는 농인 아티스트와 함께 오는 스태프 수도 어마어마했어요. 2019년 초대받은 프랑스 농인 예술 축제 클랑 더이는 며칠 동안 이어지면서 록 페스티벌, 박람회, 영화 상영, 연극 등 다양한 행사를 했어요. 그만큼 시장도 크고 많은 장애 예술인들이 참여한다는 거죠. 한국에서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핸드스피크는 농인 아티스트 김지연·이혜진·김희화 씨와 정정윤 대표가 합심해 시작했다./사진=핸드스피크

해외 농인 예술가가 더 실력이 좋아서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정 대표는 “관객 반응을 살폈을 때 한국 팀이 제일 잘했고,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실력도 아니면, 뭐가 문제지?

정 대표가 내린 답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이 비주류 장애 예술로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문제”였다. 농인은 ‘수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일 뿐인데, 사람들은 신기하게 바라본다. 이런 시선 탓에 장애인은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워한다. 한국에서 장애예술 시장이 커지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핸드스피크 아티스트 한 명이 최근 미국에 여행을 다녀와서 들려준 이야긴데요, 커피를 마시려고 커피숍에 들어가서 수어를 썼더니, 직원이 농인이라는 걸 바로 알고 필담을 먼저 시작했대요. 한국에서는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일단 입 모양을 크게 벌리는데 말이죠. 그냥 인식 자체가 달라요.”

지난해 5월 TEDxSeoulSalon 연사로 나선 정정윤 대표./사진=핸드스피크
지난해 5월 TEDxSeoulSalon 연사로 나선 정정윤 대표./사진=핸드스피크

1기 카카오임팩트 펠로우 선정

정 대표는 지난 2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 시즌1 펠로우로 선정됐다. 카카오임팩트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카카오 기업 재단이다.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은 카카오임팩트가 세상을 바꾸는 ‘사회혁신가’라고 판단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제도로, 올해 처음 시작했다.

카카오임팩트는 선정된 펠로우 11명에게 월 200만원의 시드머니를 2년간 지원한다. 혁신가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 활동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 거다. 사용 명세를 증빙하지 않아도 된다. 제출해야 하는 결과물이나 의무사항도 없다.

“어느 날 카카오임팩트 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 제가 후보자에 올랐다는 걸 알게 됐죠. 추가 인터뷰를 했고, 최종 선정되고 나서 알고 보니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가 추천했더라고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핸드스피크 비즈니스 모델이 투자자의 시선에서 봤을 때 부가가치가 높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이 펠로우십은 ‘기업이 아닌 사람에 투자한다’고 하더라고요.”

정정윤 대표는 올해 2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 1기로 선정됐다./출처=카카오임팩트 홈페이지 캡처
정정윤 대표는 올해 2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 1기로 선정됐다./출처=카카오임팩트 홈페이지 캡처

카카오임팩트가 투자한 사람, 정 대표가 우선으로 여기는 건 농인 아티스트들의 ‘주체성’이다. 그는 “콘텐츠 제작 전반을 청인이 하게끔 하고 농인은 ‘참여’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든 농인 아티스트가 중심이 되게 한다”고 설명했다. 농인이 중심을 잡아 "내가 직접 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인터뷰 요청을 받거나 강사로 초청받을 때도 직접 가기보다는 핸드스피크 아티스트를 보낸다.

“더 열심히 활동해서 핸드스피크 전속 아티스트를 100명까지는 늘리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은 여러 이유로 제가 대표를 맡고 있지만, 나중에는 농인 대표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리더가 되는 건 장애와 상관없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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