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20여 년 전 홍콩에 처음 왔던 날을 돌아보면, 두 가지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바로 ‘불빛’과 ‘에스컬레이터’다.

야경의 대명사인 홍콩의 불빛이 주는 화려함은 나의 시각 감지 능력 최대치를 넘는다. 불빛을 볼 때마다 내 귀에는 ‘불빛이 시끄러워’라고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두뇌가 청각 기관으로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홍콩의 에스컬레이터는 다른 도시의 것들보다 속도가 빠르다. 홍콩 영화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도로로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다.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이처럼 ‘낮보다 더 밝은 밤’과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는 쉼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홍콩의 삶을 나타낸다. 강산이 두 번 바뀌도록 낯선 땅에서 지내면서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 없이 살았다.

#서울

홍콩에 정착하고 꽤 시간이 흐른 어느 때다. 서울을 방문했을 때 나는 ‘밤에 어두운 곳이 많다’, “에스컬레이터가 느리다”는 등 투덜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친구는 “서울에 살지 않았던 사람처럼 구네~”라고 핀잔을 줬다. 아마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홍콩의 삶에 익숙해진 거다.

서울 방문을 계기로 ‘내가 얼마나 변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인식하지도 못한 채 변한 모습에는 또 무엇이 있을지, 이렇게 변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주

아주 오랜만에 고향인 제주도를 찾았다.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어릴 적 즐겨 찾던 부둣가에 가보니 풍경은 여전했다. 소박한 불빛을 품은 고깃배들이 멀리서 둥둥 떠다녔다. 밤 바다는 달빛과 어우러져 너울댔다. 밤하늘은 화려한 조명 대신 별빛이 수를 놓은 모습이다.

홍콩의 야경.
홍콩의 야경.

수평선을 찾을 수 없는 밤하늘과 밤바다의 깊은 만남과, 하늘로 솟구친 빌딩 하나 보이지 않는 여백의 미는 힐링의 순간을 제공했다. 변화에 대한 의문과 혼돈 속에 있는 나에게 삶의 축을 재발견하게 한 것이다. 힐링에 대한 감사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제주 밤바다의 바람을 닮은 깊은 호흡으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나와는 다르게 어떤 이는 홍콩의 밤에서, 또 어떤 이는 서울의 밤에서 힐링의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각자 다른 사람이니만큼 힐링 과정과 느낌도 각각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든 내 속에 있는 ‘힐링의 힘’을 찾는 것이다.

요즘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홍콩이든, 서울이든, 제주든 인적이 뜸해졌다. 빛을 잃고 깊은 어둠만 드리워진 길고 긴 밤이 되어버린 듯하다. 사회활동 제약으로 바깥 소음이 줄어든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조용해진 것일까. 우리 내면의 소음은 커지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외부 소음 탓에 듣지 못했던 내면의 소음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소음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내면의 소음을 우리 안에 잠재된 음악성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음악성은 모든 인류 안에 본능처럼 내재한다. 아기들이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흔드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내재한 음악성을 일상생활에서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천재 음악가들에 대한 상대적인 열등감 때문에 음악성 표현을 억제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음악을 듣기만 하는 대중으로 바뀌어버렸다는 견해가 있다.

나는 음악심리테라피 시간을 통해, 이 견해를 뒷받침하는 실제 상황을 자주 접한다. 음악심리요법 중 다양한 악기들을 늘어놓고 상담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연주하는 ‘즉흥연주’가 있다. 음악 지식이 전혀 필요 없으며, 상담자가 원하는 대로 맘껏 연주한다. 이 요법을 통해 전혀 악기를 다뤄보지 않았던 사람도 내면의 소리, 세상의 소리, 침묵마저도 음악으로 탄생시킨다.

‘홍콩의 밤’을 주제로 한 즉흥연주는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닮은 빠른 리듬으로, 낯선 땅에 대한 느낌은 흔하지 않은 악기 소리로 연주할 것이다. ‘서울의 밤’은 나의 변화를 문득 깨닫는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 북소리나, 징 소리가 두드러지게 할 것이다. ‘제주의 밤’은 힐링에 감사하는 내 깊은 호흡과 일치하는 리듬, 고요한 밤바다와 별빛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은은한 악기 소리가 두드러지게 할 것이다. 이러한 상상만으로도 나는 이미 음악을 만들고 있고, 힐링의 순간은 더욱 구체화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는다.

지금 마주한 상황, 느낌 혹은 내면의 상태를 어떤 악기, 어떤 리듬, 어떤 멜로디, 어느 정도의 볼륨으로 표현할지 상상해보자. 상상만으로도 지금 상황이나 자기 마음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힐링이 필요하다면 잠시 눈을 감고 힐링을 경험했던 순간을 떠올리자. 내 안에 내재한 나만의 유일한 음악성으로 힐링 곡을 연주해보자. 그 음악에 맞춰 호흡을 조절해 보자. 힐링 음악의 리듬과 호흡이 일치되는 순간, 내 안에 있는 힐링의 힘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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