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며 최저임금이 상승하자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이 문제로 떠올랐다. ‘국가’는 규정대로 임금을 높여 경비원들의 임금을 늘리라는 입장이지만, ‘시장’은 임금을 올릴 수 없으니 경비원 수를 대폭 줄이라고 한다.

A아파트는 시장의 논리대로 집단 해고 카드를 꺼냈다. 반면 B아파트는 입주민 회의를 통해 해고하지 않는 방향을 고민한다. 각 경비원들의 근무 시간을 조금씩 줄여 일하는 기회는 유지하되, 임금 상승 부담을 줄여보자는 타협안을 도출했다.

23일 온라인에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시민경제연구실 2020 연구 결과 공유회’가 개최됐다. 발표자 및 토론자들은 줌으로 참여했으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민들에게 생중계했다./사진제공=서사경
23일 온라인에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시민경제연구실 2020 연구 결과 공유회’가 개최됐다. 발표자 및 토론자들은 줌으로 참여했으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민들에게 생중계했다./사진제공=서사경

국가나 시장이 아닌 ‘시민’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다. ‘시민경제’란 특정 조직이나 단체가 아닌, 다양한 시민이 자신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집단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향후 서울의 사회적경제는 시민을 중심으로 이들의 일상생활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23일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이하 서사경) 시민경제연구실 2020 연구 결과 공유회’가 온라인을 통해 개최됐다. 서사경은 2020년 진행한 연구 5개의 결과물을 공유하고, 서울시 사회적경제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2019년 설립된 시민경제연구실은 정책기획·학술기초·사회가치 등 분야를 연구해 정책과 사업에 반영하고 있다.

서울 특성 반영, 결과보다 과정 주목한 지표 개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나비프로젝트가 공동연구해 개발한 '서울형 사회적가치' 개념도./자료제공=서사경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나비프로젝트가 공동연구해 개발한 '서울형 사회적가치' 개념도./자료제공=서사경

먼저 방호성 나비프로젝트 대표가 ‘서울형 사회가치지표 개발 및 측정 연구’를 발표했다. 기존에 나온 사회적가치 측정법은 ‘결과’ 지표 중심인데, 이를 ‘과정’ 중심으로 놓고 사회적경제의 핵심 키워드인 사회문제와 서울시라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지표를 개발하는 내용이다. 서울형 사회가치지표는 총 3개 성과 영역으로 구성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가치지표(SVI)를 ‘내부운영성과’로, 이를 심화시켜 ‘미션실천성과’ ‘지역협력성과’로 설정했다. 

방 대표는 “서울형으로 구성된 10개 지표를 통해 특히 서울이라는 지역에서의 차별화한 사회적가치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사회적경제의 고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측정 지표는 변화하는 사회문제에 따라 설계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둘째로 장대철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서울시 정책성과 평가 및 활성화 정책방안 수립 연구’를 소개했다. 서울의 사회적경제는 지난 2011~2019년까지 약 10년간 양적 성장을 이뤘다. 사회적경제 조직 설립부터 고용, 매출액을 비롯해 공공구매, 사회투자기금 등에서도 증가세를 보였다. 향후 10년은 양적 성장을 바탕으로 질적 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장 교수는 “개별 기업의 단기적 성장을 넘어 협업적 연대체의 장기적 성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를 위해 시민 중심으로의 전환이 중요하고, 교육과 경험을 통해 주체성을 갖춘 시민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필요를 채워가는 등 사회적경제가 ‘친구와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양적 성장만큼 시민 체감도 높일 질적 변화 필요

서울시 일반시민과 고관여시민의 사회적경제 체감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항목별로 24%~42%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자료제공=서사경
서울시 일반시민과 고관여시민의 사회적경제 체감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항목별로 24%~42%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자료제공=서사경

셋째로 정선희 이화여대 사회적경제협동과정 겸임교수가 ‘사회적경제 시민체감도 측정 연구’를 발표했다. 서울 사회적경제의 양적 성장과 비교해 질적 성장에 대한 측정이 부재한 상황에서 시민 체감도를 올리기 위한 기초 자료 구축을 위해 연구가 진행됐다. 일반시민 1000명, 사회적경제 사업에 참여한 고관여시민 3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일반시민과 고관여시민 모두 ‘사회적경제가 의미있는 일’이라는데 동의했으나, 관련 활동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질문에서는 30% 이상 차이를 보였다. 정 교수는 “일반시민의 관심을 참여로 이끌 프로그램의 다각화, 시민들의 실생활 필요를 충족시킬 주민 밀착형 정책, 연령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넷째로 조상미 이화여대 사회적경제협동과정 교수는 ‘서울시민의 사회적경제 인식 연구: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은 공동체의식과 시민임파워먼트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설명했다. 위와 같은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시민들은 전공, 기부 및 자원봉사 경험, 성별, 직업 등 개인요인, 자신의 일상생활과 연관됐느냐 여부 등에 따라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다.

조 교수는 “일상생활 접점을 늘리기 위해 지역사회 중심의 생태계 구축, 개인요인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중간지원조직 및 지자체의 역할 정립을 비롯해 대학의 사회책임 수행 및 교육 확대, 초·중·고 기본교육 및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등이 필요 과제다”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시민’ 참여 늘려 일상성 높여야 지속가능하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경제는 조직·경제·생활 등 3개 영역에서 성장했으나, 상대적으로 약한 생활(시민)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자료제공=서사경
한국사회에서 사회적경제는 조직·경제·생활 등 3개 영역에서 성장했으나, 상대적으로 약한 생활(시민)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자료제공=서사경

마지막으로 오단이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사회적기업전공 교수가 ‘시민경제로서 사회적경제 개념 및 가치확산 기초 연구’를 소개했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개념은 조직·경제·생활 등 3개 영역으로 구성돼왔다. 그동안 생산·조직 중심으로 이뤄진 사회적경제의 성장을 ‘시민’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주체들의 활동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모색했다. 

오 교수는 “시민경제는 시민이 중심이 되는 경제로, 시민은 동료와 함께 공동체를 슬기롭게 통치하며 공동선을 이루고자 한다”며 “서울 사회적경제의 정책은 시민들의 참여를 촉진해 공동체의 일상성을 높이고, 누구나 참여하는 시민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끝으로 종합 토론에서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장종익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등이 참여해 논의를 이어갔다. 특히 김 교수는 도입부에서 인용한 아파트 경비원 고용 사례를 들며 “사회적경제란 꼭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함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현상”이라며 “앞으로 시민경제에 관한 연구와 실행을 더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서사경은 이번 공유회에서 나온 내용을 추후 주요 사업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날 행사는 서사경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보기 가능하며, 각 연구의 최종보고서는 이달 말 홈페이지에 게시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조주연 서사경 센터장은 “사회적경제가 우리 사회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공감대와 담론을 만들어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며 “근거 있는 연구 결과와 실행력 있는 정책이 결합했을 때,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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