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팅터스의 콘돔 브랜드 '이브'./출처=인스팅터스.
인스팅터스의 콘돔 브랜드 '이브'./출처=인스팅터스.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

박진아 인스팅터스 대표는 콘돔 브랜드 ‘이브’를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콘돔은 남성 시각에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다. 화려함과 향, 성감을 강조하며 남성의 만족을 보장한다는 식이다. 여성의 신체에서 가장 투과율이 높은 점막에 닿는 것이 콘돔인데 안전한 성분을 쓴 제품은 적었다. 2등급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이 검출되는 사례도 있었다.

박 대표는 문제의식을 갖고, 콘돔 역시 의료기기의 일환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콘돔 성분을 바꾸면 ‘안전하게 사랑하는’ 문화도 정착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인스팅터스는 2015년부터 무해한 원료를 사용한 ‘건강한’ 콘돔 개발에 착수했다. 콘돔 브랜드 ‘이브’는 그렇게 탄생했다. 

‘누구나’의 범주를 넓히기 위해

인스팅터스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브 핑거콘돔’을 판매한다. 핑거콘돔은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의 성관계에 주로 이용된다. 박 대표는 “모든 성적 존재를 조명하고 누구도 배제하고 싶지 않다는 다짐의 결과가 위 제품”이라고 밝혔다. 핑거콘돔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를 위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인스팅터스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핑거콘돔./출처=인스팅터스.
인스팅터스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핑거콘돔./출처=인스팅터스.

“사람들이 재단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각자 타고난 모습대로 존중받기를 바라요”

다양성에 주목한 계기를 묻자 박 대표는 이같이 설명했다. 보편적인 틀이 있고 거기 몸을 맞추는 것이 능사라고 여겨진다. 박 대표는 틀을 거부해도 괜찮은 세상이 되기를 원했다.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이 장점으로 기능하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성적 주체를 조명하고 관련 제품을 만드는 것 역시 이 ‘노력’의 일환인 셈이다. 

박 대표는 노인 대상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성관계가 특정 나이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환기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는 “노인이 ‘섹스’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퍼져 있는데 이를 타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은 우산 같은 것...모든 신체활동이 성이다”

이브 제품 덕분에 인스팅터스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 2019년 매출은 49억원을 기록했다. 인스팅터스는 시야를 넓혀 ‘섹슈얼 헬스케어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중이다. 콘돔 외에 러브젤, 외음부 세정제, 생리컵, 생리 팬티 등을 판매한다. 

“‘섹스’ 문화를 바꾼다고 전체 성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성은 일상이다.”

콘돔 이외에 여타 제품을 개발한 이유를 묻자 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성을 ‘우산’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성이 다양한 신체 활동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월경용품 시장에 진출한 것도 그래서다. 우리나라의 월경용품은 일회용 생리대가 주를 이룬다. 2017년 일부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며 안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여전히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비중이 크다. 박 대표는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리고,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면 (소비자가) 좀 더 건강한 월경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월경용품을 만드는 이유를 설명했다. 

인스팅터스는 월경용품 역시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생리 팬티는 유기농 면으로, 생리컵은 의료용 실리콘으로 제작해 유해성분을 차단했다. 

인스팅터스가 만든 의료용 실리컵 소재 생리컵./출처=인스팅터스.
인스팅터스가 만든 의료용 실리컵 소재 생리컵./출처=인스팅터스.

윤활제를 의료기기로 분류되도록 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윤활제는 신체에 직접 닿음에도 화장품으로 취급돼 검사 절차가 까다롭지 않다. 때문에 유해 물질이 포함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박 대표는 “윤활제가 의료기기로 등극되면 엄격한 안전성을 충족해야 하고, 이는 시장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의 피임권 보장하는 활동 지속

콘돔은 성인 대상 용품으로 분류된다. 술·담배처럼 유해성분이 없는데도 그렇다. 콘돔판매가 미성년자의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오해가 있어서다.

지난 20일 서울시 왕십리에 위치한 '인스팅터스' 사무실에서 박진아 대표를 만났다.
지난 20일 서울시 왕십리에 위치한 '인스팅터스' 사무실에서 박진아 대표를 만났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물건 고시’에 따르면 특수제작 콘돔을 제외한 일반 콘돔은 청소년 역시 구매할 수 있다. 청소년도 성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주체며 콘돔 또한 ‘성인용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여전히 청소년의 성적권리는 문화적으로 제한된다. 미성년은 성에서 격리된 ‘순진한’ 대상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인스팅터스는 2014년 설립 초기부터 청소년의 피임권을 보장하는 활동을 지속했다. 2017년에는 가격을 100원으로 책정하고, 청소년만 이용 가능한 콘돔 자판기를 설치·운영했다. 현재는 콘돔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에게 무료로 콘돔을 보내주는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박 대표는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 행사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나라의 폐쇄적인 성 문화 때문”이라며 “청소년 역시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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